해인사2신/열반의 풍경
법전 스님의 퇴설여화(堆雪餘話), 무심한어(無心閑語)
해인사 방장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 11, 12대 종정을 지낸 도림당 법전 스님 영결식과 다비장을 하루 앞둔 26일 해인사를 찾았다. 영결식은 27일 오전 11시 불교 조계종 종단장으로 해인사 구광루 앞마당에서 치러지며 다비식은 해인사 연화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퇴설여화(堆雪餘話)>
말년을 해인사 퇴설당에 머물던 ‘절구통 수좌’ 법전 스님의 입적 전후 일화들을 제자들이 ‘퇴설여화(堆雪餘話)'로 정리했다. 가야산 해인사 퇴설당에 남겨 둔 뒷얘기라는 뜻이다.
법전 스님은 다음과 같은 임종게(臨終偈)를 남겼다. 임종게는 해인사 퇴설당 경상(經床) 서랍 속에 남겨져 있었다고 한다.
산색수성연실상(山色水聲演實相·산빛과 물소리가 그대로 실상을 펼친 것인데)
만구동서서래의(曼求東西西來意·부질없이 사방으로 서래의를 구하려 하는구나)
약인문아서래의(若人問我西來意·만약 어떤 사람이 나에게 서래의를 묻는다면)
암전석녀포아면(巖前石女抱兒眠·바위 앞에 석녀가 아이를 안고 재운다 하리라)
노스님은 가끔 갱지에 좋아하는 선시를 적기도 했다. 해인사 퇴설당 경상(經床) 서랍 속에는 임종게 외에도 몇 장의 친필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1>
해고종견저(海枯終見底·바다는 마르면 마침내 그 바닦을 볼 수 있건만)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사람은 죽어도 그 마음을 알지 못하는구나.)
<2>
아불리여(我不離汝·나는 너를 떠나지 않았고)
여불리아(汝不離我·너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여아미생전(汝我未生前·너와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미심시삼마(未審是甚?·무엇이었는지 모르겠구나.)
<무심한어(無心閑語)>
법전 스님이 창건한 대구 환성산 도림사 무심당에서는 어린 시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길 좋아했다고 한다. 제자들이 이를 무심한어(無心閑語)라고 이름붙여 정리했다. 무심당에서 나눈 한담이란 뜻이다.
노스님은 ‘사람이란 늘 부끄러워 할 줄 알고 염치가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했다고 한다.
언젠가 갑자기 외출준비를 시키자 학인 시자가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었다. 스님은 “부재청산부재암(不在靑山不在庵)”이라고 대답했다. ‘청산에도 없고 암자에도 없다’는 뜻이다. 이런 법담으로 초심자에게 가르침을 준 것이다.
어린 시자는 어느 날 노장이 쌀쌀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 못마땅하여 느닷없이 ‘스님의 지금 마음은 어떠십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내 마음은 얼음장과 같아서 추운 겨울 날 보름달이 떠 있을 때 솔바람이 불어오는 것과 같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한 번은 시자가 “후학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십시요”라고 청했다. 스님은 “내근극념지공(內勤剋念之功)하고, 외홍부쟁지덕(外弘不諍之德)하라”고 했다. ‘안으로는 망념을 이겨내는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밖으로는 남과 다투지 않는 덕을 펼쳐라’는 스님의 좌우명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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