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법 스님의 화쟁, "보수는 무관심했고 진보는 반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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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도법 스님이 붙잡고 있는 화두는 원효 스님이 주창한 화쟁(和諍)사상이다. 원효의 삶은 파격 그 자체였다. 신라땅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일심(一心)과 화쟁 사상을 전파하며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도법 스님은 현재의 한국 불교가 세상의 갈등을 푸는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현실의 삶과 동떨어져 개인의 깨달음을 구하는 한국불교의 수행방식을 ‘깨달음병’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그 대안으로 불교적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도법 스님은 그것을 ‘현장 수행’이라고 했다. 그 중심에 생명평화와 화쟁을 놓고 있다.
도법 스님은 1999년부터 남원 실상사를 중심으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그는 수경, 명진 등과 함께 불교개혁과 사회참여를 주도했다. 2004년부터 5년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했다. 2008년에는 운하반대를 위한 4대강 100일 순례를 했다. 2011년부터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 본부장도 맡았다.
도법 스님이 이번에 진보와 보수로 갈라진 우리 사회의 상처를 봉합하겠다며 또 전국을 걸었다.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라고 이름 붙였다. 화쟁을 내세워 양 진영의 중재에 나서겠다고 했다. 조계종이 적극 지원했다.
하지만 생명평화순례나, 4대강사업 반대 순례 때보다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현장에서의 반응도 예전만 못했다. 도법 스님은 “보수단체는 대체로 무관심했고, 일부 진보단체는 감정적으로 화쟁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번 화쟁순례에는 생명평화, 4대강 순례의 동반자였던 김민해 목사가 함께 했다. 두 사람의 대담으로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를 결산했다.
※2014년 5월30일자 경향신문 기사
“갈등의 근원은 진영논리, 청산론은 도움 안돼”
ㆍ서울입성 앞둔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 도법 스님·김민해 목사
불교의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길위의 수행자’ 도법 스님(순례단장)과 기독교의 김민해 목사가 이끄는 ‘화쟁코리아 100일 순례단’이 대장정의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순례단은 원효의 화쟁(和諍) 사상으로 한국사회 분열과 갈등의 치유책을 모색하기 위해 지난 3월2일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에서 첫걸음을 뗐다. 그동안 제주 강정마을, 밀양 송전탑, 진주의료원, 군산 미군기지 등 이땅의 대표적인 갈등 현장과 동학운동,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좌우대립, 광주 민주화운동 등 역사의 상처가 있는 곳을 걸어서 찾아다녔다.
수도권 순례를 시작한 지난 16일부터는 순례 중 짬을 내 종교, 정·관계, 경제계, 언론, 사회단체 등을 찾아 우리 시대 화쟁의 길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지난 27일 순례의 마지막 코스인 서울 입성을 앞두고 경향신문을 방문한 도법 스님과 김 목사에게 이번 순례의 성과와 사회통합을 위한 화쟁의 방법론에 대해 들어봤다. 도법 스님은 “모든 반목과 대결의 논쟁(諍)을 화합(和)으로 바꾸는 것이 화쟁사상”이라며 “쉽게 말해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27일 경향신문을 방문한 도법 스님(오른쪽)과 김민해 목사는 사회갈등의 원인은 뿌리깊은 진영논리라고
말했다. | 정지윤 기자
▲ 진실을 가로막는 것이 진영논리… 정직 절실하게 문제를 마주해야
삶을 돈에 맡긴 결과가 ‘세월호’… 국민들 스스로 각성·성찰 해야
국민 통합 위한 ‘야단법석’ 준비
- 도법 스님과 김 목사는 2004년부터 5년간 생명평화 탁발순례, 2008년 운하반대를 위한 4대강 100일 순례도 함께했다. 이번에 떠난 순례에서는 어떤 성과를 얻었나.
도법 스님(이하 도법)=막연하게 생각했던 두 가지가 명료해졌다. 첫번째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갈등과 반목이 확대 재생산되는 근원에는 진영논리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했다. 두번째는 상대진영에 대한 청산론, 척결론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거다. 이 세상은 함께 살도록 돼 있다는 것이 ‘본질적 진실’이다. 이런 전제를 투철하게 인식한다면 편 갈라서 싸워 이기는 방식이 아니라 머리를 맞대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점을 절감했다.
김민해 목사(이하 김)=이번 순례는 이념 갈등에 뿌리를 둔 어두운 역사 현장, 현재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현장을 빠짐없이 찾아가는 것이었다. 발품을 팔아서 현장을 찾아가 진보와 보수, 노동과 자본, 개발과 보존이 충돌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갈등의 당사자들이 함께 순례를 하면서 아픔과 대립이 풀어지는 희망을 보기도 했다.
- 화쟁 순례에서 가장 특별했던 곳을 꼽는다면.
김=여순사건 현장인 순천에서 특별한 경험을 했다. 희생자 유가족들이 경찰, 군인들의 현충탑을 참배하고 위령제를 지냈다. 이제는 70, 80대가 된 그분들 이야기를 잊을 수 없다. 내 부모 형제를 죽인 원수들의 넋을 위로해주고 나니 알 수 없는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했다.
도법=송전탑 갈등 현장인 밀양이다. 현장의 공사 담당자들과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바람은 똑같다. 대화로 갈등을 풀고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거다. 그 바람을 더 큰 ‘위의 힘’인 진영 논리나 이해타산 논리가 막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현장 담당자들에 의해 공사가 진척되는 만큼 주민들에게는 원한이 쌓인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진영 깃발을 들면 진실이 파묻혀버린다. 진영 간 대결이 한국사회를 불신과 분노, 증오와 원한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 화쟁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나.
도법=진실은 두 개일 수 없지만 ‘제3의 길’일 수는 있다. 이쪽저쪽의 진영을 떠나 제3의 눈으로 짚어보면 박정희와 김대중, 진보와 보수, 여당과 야당, 남과 북이 모두 장단점, 공과,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나서서 제3의 길을 뚫어내야 한다. 진실을 드러내고 수긍하게 만들고 양보를 이끌어내야 한다. 진실을 가로막고 파묻어버린 진영의 힘을 풀어내는 게 화쟁의 목적이다.
- 부처님오신날인 지난 6일에는 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에서 참회 기도회를 열었다. 세월호 사고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도법=희생자를 절대로 잊지 말고 기억할 것,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고 값지게 할 것, 그것이 세월호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다. 대통령이 희생자 가족과 국민 앞에 무릎 꿇고 “다 내 책임이다. 이제부터 확실한 대책을 마련할 테니 도와달라”고 했으면 대통합의 기회로 전환될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제는 국민들이 천일기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세월호를 화두로 붙잡고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되게 해야 한다. 진실을 분명히 드러내고 공론화시켜서 정책과 제도로 받아내야 한다.
김=내 생명과 삶을 돈에 맡겨버리는 물질만능이 만들어낸 사고다. 국민 스스로가 각성해야 한다. 저마다 저 가슴 아픈 현장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세월호를 성찰해야 한다. 세월호 사고를 근본에 대해 질문하는 기회로 삼는 운동이 일어났으면 한다.
- 그런데 이번 순례는 일반인의 관심이 덜한 것 같다. 왜 그런가.
김=근본적인 질문을 회피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결과라고 본다. 그렇다고 사람을 많이 모으려고 순례를 한 건 아니다.
도법=준비하는 기간이 짧았고 순례를 주도한 불교계의 역량이 부족했다. 보수단체는 대체로 무관심했고, 일부 진보단체는 감정적으로 화쟁에 대한 반감을 보였다. 하지만 이번 순례를 통해 우리 사회가 풀지 않으면 안될 중요 문제를 잘 짚어냈고 드러냈다고 본다. 문제를 피해가거나 얼버무려서는 안되고 절실하고 정직하게 문제를 대하겠다는 마음은 탄탄해졌다. 이제부터 그 일을 하려고 한다.
- 한국사회 화쟁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도법=각계 어른들이 나서서 진영의 ‘삼팔선’을 허물고 양극단을 내려놓고 해원 상생의 길, 진실과 화해의 길, 화쟁과 회통의 길을 찾아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국민통합 시민위원회’를 구성해 ‘대한민국 야단법석’이라는 큰 판을 벌이려고 한다. 거기서 우리 사회 중요 문제들에 대한 사회적 진실을 묻고 드러내면서 소통과 희망의 담론을 만들어내고 공론화하는 작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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