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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중립(中立)이란?

by 김석종 2014. 8. 22.

 여적-중립(中立)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 집 서재에 백범 김구 선생이 친필로 쓴 ‘允執厥中(윤집궐중)’ 휘호가 걸려 있었다고 한다. ‘진실로 그 한가운데(핵심)를 잡으라’는 뜻이다. 유교 경전 중 하나인 <서경>에 나오는 말이다. 지난 대선 직후 한국 최고의 주역학자라는 대산 김석진옹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자에게 전하고 싶다며 보여준 휘호가 ‘精一執中(정일집중)’이었다. 윤집궐중과 같은 뜻이다. 김옹은 박대통령이 정치적으로 한쪽에 치우칠 가능성이 높다면서 ‘가운데’를 취해야 성공한다고 했다.

 ‘중(中)’은 동양철학의 중심개념이다. 유교에서는 ‘중용(中庸)’, 불교에서는 ‘중도(中道)’로 통용된다. 똑같이 지나치거나, 모자라거나, 치우침이 없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아집과 독선을 버리고, 극단적인 견해나 실천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인이 지켜야 할 으뜸 덕목이다.

 하지만 정치세계에서 중도는 정치적으로 중간적인 입장, 절충주의 ‘회색’ 노선을 말할 때가 더 많다. 유신 시절 신민당 이철승 대표가 ‘중도통합론’을 들고 나왔다가 ‘사꾸라’라는 비난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중립(中立·neutrality)’은 좀더 정치적인 용어다. 사전에서 중립은 ‘어느 편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처신함’으로 풀이된다. 스웨덴처럼 전쟁에서 정치적·외교적으로 중립의 지위를 지키기로 선언하는 나라를 영세중립국이라고 한다. 지난 선거 국면에서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 공무원의 정치중립 의무 위반은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땅에 뜨거운 감동을 안기고 떠난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립을 지켜야 하니 세월호 리본을 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에 “인간적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대답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가 ‘교통사고’라며 매몰차게 ‘중립’을 말하는 사람들은 뜨끔할 만한 말이다.

 그런데 ‘중립’ 운운하며 교황을 안내한 이는 도대체 누구였을까. 사실 그동안 한국 가톨릭 고위직 사제들은 교황과 정반대의 행동을 자주 보였다. 오죽하면 세월호 단식농성에 동참한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 “우리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자 홍길동”이라는 농담을 했을까. “고통 받는 영혼 앞에서 중립은 없다”는 교황의 '돌직구'가 우리의 뒤통수를 후려친다.

 

 

                                                                             경향신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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