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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장수하늘소, 그리고 멸종한 것들이 그립다

by 김석종 2014. 8. 29.

[여적]장수하늘소

이외수 소설 <장수하늘소> 주인공은 희귀곤충을 잡아 일본인에게 밀매하다 붙잡혀 3년 동안 감옥살이를 한다. 출감 후 신선이 되기 위해 구도자의 길을 걷는 동생을 찾아간다. 그리고 거대한 장수바위에 가부좌를 튼 동생의 몸이 순식간에 미이라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그 순간 동생의 무릎에 있던 피라미드 모형 속의 죽은 장수하늘소가 살아난다. 표본실에서 사라진 장수하늘소였다. ‘장수하늘소는 요란한 날개짓 소리로 떠오르더니 금빛 찬란한 모습으로 하늘 저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과거 숲 속에는 사슴벌레(집게벌레), 풍뎅이, 딱정벌레 같은 곤충이 흔했다. 곤충채집이랄 것도 없이 숲은 아이들의 신나는 놀이터였다. 그중에서도 딱정벌레목 하늘소과에 속하는 장수하늘소는 검은색이나 황갈색으로 반질반질 광택이 나는 데다 힘이 세서 인기 최고였다.

 

장수하늘소는 아주 신비롭다. 몸길이 65~108㎜의 장수하늘소는 동아시아에 사는 갑충류 곤충 가운데 가장 큰 곤충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의 하늘소들이 짧게는 1년에서 2년 정도의 유충기를 거쳐 성충이 되지만 장수하늘소는 무려 5~7년 정도의 유충기를 가져야 우화(羽化)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토록 긴 유충기를 거쳐 태어난 장수하늘소는 고작 1~2개월밖에 살지 못한다고 한다. 장수하늘소는 장수하지 않는다.

 

한반도와 중국 동북부, 극동러시아 지역에만 서식하는 국제 희귀종이다. 한반도 중부지방은 이 북방계 곤충이 서식 가능한 최남단 지역에 해당된다. 옛 고구려와 발해 땅에만 사는 것도 신기하다. 국내 곤충 중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돼 있다. 멸종위기종 1급으로 보호되고 있지만 사실상 멸종 선언을 받은 상태였다. 그 많던 장수하늘소는 다 어디로 갔을까. 소설에서처럼 장수하늘소는 일본인들이 가장 탐내는 한국산 곤충이었고, 그것이 멸종의 한 이유가 됐다고도 한다.

 

최근 산림청 국립수목원 광릉 숲에서 장수하늘소 수컷 한 마리가 발견돼 화제가 됐다. 2006년 같은 곳에서 암컷 한 마리를 확인한 이후 8년 만의 경사라고 한다. 한쪽 날개가 상한 장수하늘소가 기력을 다시 찾으면 방생하기로 했단다. 서어나무와 참나무 군락지인 광릉 소리봉은 우리나라에서 장수하늘소의 마지막 서식지였다.

 

사라진 것은 장수하늘소만이 아니다. 광릉숲에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크낙새(천연기념물 제197호)가 살았다. 하지만 1993년 마지막으로 한 쌍이 목격된 뒤 지금까지 종적이 묘연하다. 광릉요강꽃, 광릉물푸레나무, 광릉갈퀴나무가도광릉숲에 서식하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멸종위기종이다.

 

요즘 이 땅에서 늑대, 여우, 표범, 삵, 산양, 수달, 노루, 시라소니, 어름치, 뜸부기, 솔개, 두루미, 종다리, 담비, 물개, 황새, 고니, 독수리, 올빼미, 구렁이, 맹꽁이, 가시고기 등도 아예 사라졌거나 멸종 위기에 처해 보기가 쉽지 않다. 오랜 세월 인간과 친숙했고, 우리와도 친근했던 동물과 식물들이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

 

다음 세대들은 고전문학과 예술작품, 구전동화, 동요, 그리고 대중가요 가사 속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될 것 같다. 그 친구들의 보존을 동물원에 맡겨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 야생성을 모두 잃어버린 박제나 다름없는 동물원의 동물들을 보는 것도 슬프다.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한 멸종위기종이 250종에 달한다고 한다. 학자들은 세계적으로는 하루에 50~100종이 멸종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21세기에 가장 시급한 인류의 과제가 바로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의 위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인구증가, 무분별한 자원 남용, 기후변화, 환경오염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이게 다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국 작가 엘리자베스 콜버트가 쓴 <여섯 번째 대멸종>에 따르면 지난 50억년간 지구는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었다. 저자는 여섯 번째 대멸종은 인간이 원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얼마 전에는 한국에서 현 출산율 추세대로라면 오는 2750년에는 인구가 소멸될 우려가 있다는 충격적인 전망도 나왔다. 장수하늘소가 그리워지는 오늘이다.

 

 

장수하늘소/경향신문 사진

 

※옛날에 썼던 기사입니다.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77)추억속의 곤충과 벌레들

[경향신문]|2001-08-24|31면 |45판 |특집 |기획,연재 |3077자

어린시절의 들녘은 유난히 푸르렀다. 땅 속엔 개미가 집을 짓고, 쏘이면 살이 퉁퉁 부어오르는 벌집도 발에 채일 정도로 많았다.나비, 벌, 매미, 딱정벌레, 풍뎅이, 방개, 거미, 귀뚜라미, 여치, 사마귀, 잠자리, 메뚜기, 사슴벌레, 쇠똥구리, 개똥벌레….

 

그 많고 많은 ‘자연의 친구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는 자연시간에 배우지 않아도, 곤충채집을 다니지 않아도 훤히 알고 있었다. 그것들이 어떻게 태어나 어디에 집 짓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를.

흰나비 노랑나비는 이른봄 이파리보다 먼저 피는 봄꽃들에 하늘하늘 예쁜 날개짓으로 날아들었다. 배추꽃, 장다리꽃밭에서 맨처음 보는 나비가 노랑나비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뜨릴 때 쯤에는 호랑나비를 만날 수 있었다.

 

꽃피는 곳이면 어디나 꿀벌들이 잉잉거렸다. 담장 위의 호박꽃을 들락거리는 호박벌을 잡다가 손가락을 쏘이는 일은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벌에 쏘여 퉁퉁 부은 손가락에 어머니가 된장을 발라주셨던 기억이 새롭다. 자운영꽃 만개한 들판에서 검정 고무신으로 벌을 잡아 빙빙 돌리고 다니기도 했다. 벌침을 뽑아낸 벌을 들고다니며 아이들을 놀래키는 짓도 많이 했다.


정말 무서운 놈은 땅 속에 집을 짓는 *땡삐나 말벌이었다. 잘못해서 땡삐집을 건드렸다가는 벌들이 떼로 무리지어 공격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겐 벌집조차 재미있고 짜릿한 놀이의 대상이었다. 처마밑에 매달린 벌집을 찾아내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친구들과 함께 돌멩이를 던져 벌집을 건드려 놓고 도망치는 위험한 장난을 즐겼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땡삐집을 발견하면 숨어서 지켜보다가 여학생들이 오는 것을 보고 냅다 돌멩이를 던졌다. 성난 벌들이 마치 폭격기 같이 윙윙거리며 여학생들에게 집중포화를 퍼붓는 모습을 보면서 쾌재를 불렀다. 다음날 교무실로 줄줄이 불려들어가 단체기합을 받았지만 그 정도는 언제든지 각오가 되어 있었다. 어른들이 온몸에 비닐을 덮어쓰고 *광솔불로 연기를 피우면서 접근하면 벌들이 멀리 도망쳤다. 이때 벌집을 따내 그 속의 꿀과 애벌레들을 끓여먹었다.

 

여름의 산과 들판은 온갖 생명의 소리로 가득했다. 먼저 여름을 알리는 것은 매미였다. 매미소리는 여름내내 요란했다. 매앰, 맴맴맴, 매앰, 쓰름 쓰름 쓰름…. 땡볕의 그늘을 만들어주는 미루나무와 감나무, 느티나무에서는 날마다 매미들의 합창대회가 열렸다. 아이들은 여름방학 숙제를 하다가도 매미소리를 자장가삼아 낮잠에 빠져들곤 했다.

 

말매미와 참매미는 매음매음 울고 *쓰르라미는 쓰름쓰름 울었다. 특별히 잡을 이유가 없는데도 아이들은 끈질기게 매미사냥에 나섰다. 나무에 살금살금 기어올라가 맨손으로 쉽게 매미를 잡았다. 모기장이나 안이 훤히 보이는 망사로 포충망을 만들기도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사촌의 방학숙제를 해주기 위해 매미채를 들고 돌아다니며 까치발을 서 매미를 겨냥하다보면 하루가 후딱 지나갔다.


매미소리가 잦아드는 저녁이면 마당에 피워 놓은 모깃불에서 연기가 하얗게 피어올랐다. 동네 어른들은 이장댁에 모여 감자며 옥수수를 한솥 가득 쪄내 나누어먹었다. 찌르찌르찌르, 찌르찌르르…. 마당가 울타리 안팎의 풀섶에선 풀벌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하늘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반짝거렸다. 땅에는 반딧불이가 나타났다. 꼬리에 희고 붉고 푸른 색이 혼합된 빛을 내며 땅위를 떼지어 날아다니는 개똥벌레. 도시 아이들에게 처녀귀신이라며 괜스레 겁을 주기도 했던 신기한 불빛. 한때는 ‘형설지공’(螢雪之功)을 흉내낸답시고 반딧불이를 잡아 유리병에 넣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반딧불이들을 잡아서 병에 넣어도 책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지는 않았다.

 

풀밭에는 방아깨비 베짱이 여치 사마귀가 살았다. 참나무에는 장수하늘소 사슴벌레 풍뎅이가 있었다. 연못과 논에는 방개가 떠다녔다. 물웅덩이를 맴도는 소금쟁이떼도 있었다.


풍뎅이는 목을 비틀어 바닥에 놓으면 쉴새없이 맴을 돌았다. 그것을 ‘풍뎅이 시집보낸다’고 했다. 손가락에 사마귀가 나면 사마귀를 잡아 뜯어먹게 했지만 효과를 보지는 못했던 것 같다. 여치를 잡으면 여치집에 넣어 처마끝에 매달아두고 키웠다. 여치집은 밀대와 보릿대로 만들었다. 솜씨가 좋을수록 여치집을 높고 멋지게 짜올렸다. 멋을 부린다고 밀대에 물감을 들이기도 했다.

 

잠자리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날아다녔다. 여름에는 몸통이 큰 왕잠자리가 많았다. 냇가에는 하늘색과 형광색, 파랑색이 섞인 듯한 실잠자리가 너울거렸다. 개울가에서 송사리를 잡다가도 실잠자리를 만나면 놀이는 금방 잠자리잡기로 바뀌었다.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정말 고추가 익어가듯 새빨간 고추잠자리들이 땅과 하늘을 수놓았다.


아이들은 잠자리잡기에도 도사들이었다. 가는 철사를 둥그렇게 구부려 대나무나 다른 나무에 매단 다음 처마밑이나 나무에 걸려있는 거미줄을 감으면 잠자리채가 됐다. 거미줄은 나무와 나무사이, 초가지붕과 굴뚝 사이에 지천으로 걸려있었다. 끈끈한 거미줄을 붙인 잠자리채에 일단 잠자리가 붙기만 하면 맥을 못추고 잡혔다.

 

잠자리의 눈 정면에 손가락을 뱅뱅 돌리며 접근해 재빠르게 잡아채는 방법도 있었다. 왕잠자리를 실에 묶어 날려서 다른 왕잠자리를 잡기도 했다. 잠자리들은 서로 꼬리를 마주대고 날아다니며 사랑을 나누었다. 아이들은 이렇게 ‘꿀레붙은’ 놈들을 집중적으로 쫓아다녔다.

 

때없이 얼굴에 걸리던 거미줄. 추수 무렵의 논에는 메뚜기가 이리 저리 튀고, 밤이 되면 반딧불이가 불 밝히던 고향. 섬돌밑의 귀뚜리 소리에 가을을 알아차리던 그 시절은 이제 다 옛이야기가 되었다.
김석종

기자sjkim@kyunghyang.com

 

**그시절 이런말 저런말
*땡삐
땅벌. 땅속에 집을 만든다. ‘땡끼’라고도 했다. 산속에 사는 땅벌은 ‘오빠시’라고 했다. 더 작고 독한 오빠시들은 물 속까지도 따라온다고 했다.
*광솔
소나무의 단단한 부분. 송진이 많아서 불이 잘 붙고 오래 탔다. 밤 천렵 때 광송불을 밝혔고, 겨울에는 불깡통용으로 썼다.
*쓰르라미
쓰름매미. 매미 중에서 제일 컸다. 울지 않는 암컷 매미는 벙어리매미라고 불렀다.
*모깃불
황혼녘 평상이나 멍석 옆에 덜 마른 보릿대, 보리까락, 쑥대 같은 것들을 태워 연기를 피워올렸다. 그래도 모기들은 용케도 살을 찾아 달려들었다.

 

<중국의 골때리는 인작대전(人雀大戰) 이야기>

중국은 1958년 4월 19일 ‘참새 섬멸 총지휘부’를 꾸려 참새 소탕에 나섰다. 베이징 시에선 시민 300만 명이 동시에 빗자루, 몽둥이, 회초리를 들었다. 명사수들도 총출동했다. 인간과 참새의 전쟁 ‘인작대전(人雀大戰)’의 결과 베이징 시에선 참새 8만3천마리가 사살됐다. 그 해에 중국 전역에서 소탕된 참새는 무려 2억1천만 마리였다. 거의 광기 수준이었다. 참새는 멸종 직전까지 몰렸다. “전국의 쥐, 참새, 파리, 모기를 소멸해야 한다”는 마오쩌둥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제사해(除四害) 운동’이었다. 참새가 사라지면서 해충이 들끓었다. 이 운동은 해충을 들끓게 해 쌀 생산량을 되레 급락시키며 3년 대기근의 원인이 됐다. 중국에서 참새가 ‘복권’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김명호 성공회대 교수가 쓴 <중국인 이야기>(한길사) ‘참새소탕전의 추억’에 나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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