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국내 첫 ‘선화 제작 분야’ 무형문화재 성각 스님
선서화(禪書畵)는 깨달음의 정신을 그림과 글씨에 담아내는 불교 수묵화다. 경남 남해 망운사 주지이자 부산 원각선원장 성각 스님(63)은 선서화의 대가로 꼽힌다. 그가 5월3일 국내 최초로 ‘선화 제작 분야’ 기능보유자인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됐다. 지난 9일 한려수도의 섬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남해 망운사에서 성각 스님을 만났다.
“선서화는 참선의 한 가지 방편입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정신을 통일해서 일필휘지의 붓놀림으로 무심, 탈속, 고요함, 파격 등 무아정적(無我靜寂)의 경지를 보여주는 예술이지요.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신심일여(身心一如)의 수행이 바탕이 돼야 비로소 작품에 맑고 밝은 선(禪)의 지혜를 담을 수 있습니다.”
남해가 고향인 성각 스님은 1985년 30대 중반의 나이에 ‘늦깎이’로 출가했다. 출가 전에는 만화가로 활동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무협만화 <검풍>과 SF만화 <천상동자>를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선비였던 부친은 만화 그리는 아들을 영 못마땅하게 여겼다. 부친이 어느 날 그를 김해 영구암 화엄 스님에게 데려갔다. 화엄 스님의 선화에 매료돼 몇 년 동안 선필을 익혔고, 출가로 이어졌다고 한다.

성각 스님이 지난 9일 남해 망운사 선화당에서 ‘산(山)’자를 그림처럼 형상화시키는 독특한 운필로 선화를 그리고 있다.
▲ 출가 전 만화가로도 인기
“선서화는 참선의 한 방편”
강의·전시 문화포교 열심
성각 스님은 쌍계사 방장인 고산 스님의 제자로 계를 받았다. 망운산 기슭에 있는 화방사에서 지내다가 1989년 망운암으로 옮겼다. 망운암은 고려시대 진각 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효봉, 경봉, 서암, 월하 스님 등이 수행했다. 하지만 성각 스님이 처음 왔을 때는 다 스러져가는 조그만 암자였다. 그의 20년에 걸친 중창 불사로 망운암은 독립사찰 망운사가 됐다. 스님은 절에서 88세의 노모를 모시고 산다. 화방사 쪽에서 모자가 함께 등짐을 날라가며 허물어진 망운암을 일으켜세웠다. 그는 지금도 참선이나 기도를 게을리하면 꾸중을 하는 어머니를 관세음보살로 여긴다.
스님은 30년간 하루도 붓을 놓은 적이 없다. 날마다 새벽 3시 반에 일어나 예불과 참선으로 마음을 가다듬고 선서화에 정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스님은 ‘산(山)’, 달마상, 동자상, 분타리화(芬陀利華·하얀 연꽃)를 많이 그린다. 특히 굵고 힘찬 붓놀림으로 ‘산(山)’자를 그림처럼 형상화시키는 독특한 운필로 유명하다. 그의 달마상은 익살맞고, 동자승의 얼굴은 환한 미소가 천진난만하다. 얼굴 그림의 선에서는 약간의 만화풍이 느껴지기도 한다.
“선화는 여백을 살리고 생략과 강조를 많이 하므로 만화와 통하는 점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선화의 핵심은 파격의 미에 있습니다. 불화(佛畵)가 성스러운 예배의 대상이라면 선화는 감상을 위한 작품입니다. 고정된 생각의 틀을 깨는 자유자재한 필법에서 선의 깊은 정신세계와 함께 생활 속 선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번에 무형문화재 지정을 계기로 선서화를 통한 문화포교를 더욱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성각 스님의 ‘진여자성’
성각 스님이 무형문화재가 된 것은 선서화의 ‘작품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한다. 부산시 문화재위원들은 “선서화의 체계적인 이론은 물론, 수행 또한 겸비한 선화승”이라고 평가했다. 불교민속학자인 동국대 홍윤식 명예교수는 “달마도에만 집중됐던 선화의 세계를 확장하고 직관에 의한 선화의 본질을 잘 들춰내고 있다”고 평한다.
성각 스님은 2002년 한국전통예술학회와 함께 ‘한·중·일 선예술의 재조명’ 학술대회를 주도했다. 2005년에는 선예술의 이해 방법과 성격, 선사상의 표현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한 <선예술의 이해>(경인문화사)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시집 <어느덧 내 모습 산이 되어>를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1995년부터는 수십차례 선서화 작품 전시회를 열어 주목을 받았다. 전시회 수익금은 모두 재소자, 실직자 자녀, 난치병 환자 등을 돕는 일에 썼다. 이런 활동으로 2008년 옥관문화훈장, 2010년 조계종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그는 자신의 선서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원융무애’(차별이나 대립 없이 두루두루 통하는 상태)라고 했다. 성철 스님의 ‘산은 산, 물은 물’이라는 법어가 자신의 선서화 세계를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다.
“인간의 중생심과 다섯 가지 욕심(재물욕, 색욕, 식욕, 명예욕, 수면욕)이 끊어진 자리의 기쁨을 표현하려 합니다. 거기에 무심(無心), 무애(無碍), 여여(如如)한 정신을 담는 겁니다. 또 하나는 마음도, 만물도, 우주도 모두 원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점에서 선으로 이어지며 하나의 원이 되는 우주의 진리, 부처님이 말씀하신 만다라의 요체를 드러내는 작업이지요.”
성각 스님은 선서화의 대중화를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요즘은 망운사 선화당(禪畵堂)과 부산 원각선원에서 매주 한 차례씩 선서화 강의를 하고 있다. 망운사에서는 30여명, 부산에서는 10여명이 그에게 선서화를 배운다.
“스님뿐만 아니라 모든 이의 세상살이에 선의 기운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붓을 잡지 않더라도 마음의 일필휘지로 산과 달마와 연꽃을 그려보는 겁니다. 참된 자기 자신, 값진 인생이 되기 위해 진정으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뭔지 생각하면 들끓는 마음이 차분해지고 헛된 욕망과 갈등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는 “선서화를 그리거나 감상하면 얼굴이 맑아지고, 탐욕이 사라지고, 싸울 일도 없어져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미래가 밝아진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달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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