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 철 꼼짝 않고 벽만 바라보며 평생의 화두를 뚫어내기 위해 뜨겁게 정진한 스님들이 지난달 14일(음력 정월 대보름) 동안거(冬安居)를 끝내고 걸망을 둘러멨다.
이제 또다시 만행(萬行) 길이다. 어떤 스님은 지리산으로 간다고 했고, 어떤 이는 그냥 운수(雲水)가 되어 세상을 떠돌아볼 작정이라고 했다. 인도에 가서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겠다는 계획을 짠 스님도 있다.
안거란 스님들이 동절기 3개월(음력 10월 보름에서 다음 해 정월 보름까지), 하절기 3개월(음력 4월 보름에서 7월 보름까지)씩 외부 출입을 끊고 한데 모여 참선수행에 몰두하는 것을 말한다. 이날 전국 사찰의 큰 어른인 방장, 조실 스님들은 겨울 석 달간 잠을 잊고 용맹정진한 스님들이 만행길에서도 가르침으로 삼을 만한 해제 법어를 내렸다.
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은 “이번 안거 동안에 부끄러움 없는 수행을 했는지 돌이켜봐야 한다”며 “대오견성으로 공부를 마치기 전에는 바랑을 짊어지고 산문을 나서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라”고 말했다. 진제 스님은 또 “참나 속에 영원한 행복과 정의, 대자유, 평화가 있다”며 “참선수행을 등한시한다면 온갖 분별과 시비 갈등으로 일생을 헛되이 보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 해인총림 방장 법전 스님은 만행을 떠나는 수행납자들에게 “해제 이후에도 ‘자기소리’가 나올 때까지 화두를 항상 참구하면서 만행해야 할 것”이라며 게(偈)를 지어 격려했다. ‘장대에 오르거나 우물을 파는 것이(會上竿 會穿井)/기량은 다르지만 모두가 병통이로다(技不同 總是病).’
충남 예산 수덕사 덕숭총림 방장 설정 스님은 “우리는 구경(究竟)을 성취하여 생사명근(生死命根)이 끊어 질 때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될 것”리라며 “본래부터 밝고, 본래부터 당당하고, 본래부터 지혜로워 만법(萬法)이 일여(一如)하고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그 자리에 도달할 때 까지 정진하자”고 말했다. 경남 하동 쌍계사 쌍계총림 방장 고산 스님은 “무엇이든 쉬지 말고 성찰할 때까지 끊임없이 정진해야 한다”며 “흔들림 없이 선지식(善知識)을 찾아가는데 전념하라”고 당부했다. 올해 조계종의 동안거에는 전국 98개 선원에서 2236명이 수행했다.
5년전(2009년)에는 설악산 백담사 무금선원 동안거 현장을 취재했다. 다음은 당시의 기사.(2009.01.21 경향신문)
혹한 속 ‘깨달음의 향기’ 피어나네…백담사 ‘무금선원’
ㆍ대부분 중년 ‘늦깎이 출가자’
ㆍ하루 12시간 이상 목숨건 정진
아득하게 올려다보이는 설악 영봉은 흰눈에 파묻혔고, 물소리 청청했던 백담계곡은 꽝꽝 얼어붙었다. 수심교(修心橋) 건너 내설악 깊숙이 들어앉은 강원도 인제 백담사 ‘무금선원(無今禪院)’. 만해 한용운 선사의 수행처이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운둔지로만 알려졌던 백담사는 1998년 회주 오현 스님이 무금선원의 문을 열면서 설악산에 선풍(禪風)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무금’은 ‘무고무금(無古無今)’을 줄인 말로 ‘본래 성품은 맑고 고요해서 예도 없고 지금도 없다’는 뜻이다.

조계종립 교육기관인 무금선원 기본선원의 예비 선승들이 좌복 위에 가부좌를 틀고 선정에 들어간 모습(왼쪽). 무문관 문마다 밖에서 걸어 잠근 자물쇠.
무금선원은 행자교육을 마친 조계종 출가자(사미승)들이 안거기간에 선의 기초를 다지는 ‘기본선원’과 법랍(출가한 이후의 햇수)이 높은 스님들이 폐문정진(閉門精進)하는 ‘무문관(無門關)’ 특별선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본선원은 백담사 오른쪽 만해기념관 뒤편에 있다. 조계종 출가자들은 사미계를 받은 뒤 봉암사와 백담사에서 의무적으로 4년 동안 공부를 해야 비구계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11월11일 동안거를 시작한 지 두 달째. 기본선원 하루일과는 새벽 3시 예불로 시작된다.이어 2시간 동안 참선을 하고, 5시부터 108배 참회정진을 한다. 오전 11시에는 나한전 법당에 삼배를 올리고 예불문에 맞춰 장엄한 예불을 드린다. 아침 공양이 끝나면 1시간 동안 운력(運力·노동)을 한다. 하안거 기간에는 농사일을 하지만 요즘은 마당의 눈을 쓸거나 선방 청소를 한다.
선방에서는 하루 12시간 이상씩 참선을 하는 혹독한 수행이 이어진다. 참선 중 조금이라도 자세가 흐트러지면 선감 스님이 사정없이 죽비를 내리며 정진을 독려한다. 또 철마다 반드시 7박8일 동안 잠을 자지 않고 화두를 참구하는 용맹 정진을 해야 한다.
무금선원 선방은 외부인 출입이 허용되지 않지만 이날은 선원장 신룡 스님(53)과 선감 대전 스님(57)의 배려로 선방문을 열었다. 예비 선승들이 벽을 향해 두 줄로 앉아 참선 중이었다. 벽에는 각자 맡은 소임을 적은 ‘용상방(龍象榜)’이 붙어있다. 수좌(참선을 주로 하는 스님)의 길을 걷기 위해 ‘화두’ 하나를 들고 참선 중인 예비스님들의 꼿꼿한 자세가 자못 오연했다. 지난 3일 동안거 용맹정진을 끝낸 스님들의 눈빛도 형형했다. 이들이 온몸으로 뿜어내는 정진의 열기가 설악산의 혹한을 녹이고 있었다.
사미승들과 똑같이 생활하며 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대전 스님은 “기본선원은 철저한 수행과 습의를 통해 청규정신을 키우고 번뇌를 버리는 정진을 하는 수좌사관학교”라며 “특히 묵언수행이나 포살(布薩·스스로 저지른 잘못을 참회하는 의식) 등을 통해 출가 초심(初心)을 잃지 않고, 수좌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친다”고 말했다.
무문관은 기본선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삼엄한 수행처다. 기본선원에서 백담사 경내를 가로질러 계곡 위쪽으로 1백50m가량 떨어져 있다. 선원장 신룡 스님의 안내로 침묵 속에 조심조심 무문관을 돌아보았다.
3채의 건물이 ㄷ자 모양으로 늘어선 무문관 안마당은 무서우리만치 깊은 적막에 잠겨 있었다. 스님 10명이 독방마다 한 명씩 들어앉아 있을 텐데도 기척조차 없다. 바깥에서 굳게 걸어잠근 자물쇠와 공양을 넣어주는 쪽문(공양구)에서 바깥세상과 절연하고 목숨 건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는 선승들의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사방이 꽉 막힌 2~3평의 독방 안에는 수세식 좌변기와 간이 샤워기가 설치된 화장실이 딸려 있을 뿐이다.
이번 동안거에 무문관에 든 수좌들은 11명. 법랍 42년의 정송 스님(64), 전 전국수좌회 의장 영진 스님(54), 보문사 주지인 지범 스님(53) 등 법랍 30년 이상, 안거 30차례 이상인 스님들이 절반을 넘는다.
무문관 스님들은 보통 3개월에서 1년, 3년, 6년 등으로 스스로 기간을 정한다. 한번 들어가면 바깥 출입뿐만 아니라 전화와 편지는 물론 독서와 취미생활도 일절 금지된다. ‘일종식’(一種食·한루 한 끼)을 하며 스스로를 침묵과 고독 속에 가두고, 화두와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무문관이 외부와 연결되는 것은 하루 딱 한 번. 오전 11시쯤 기본선원의 사미승들이 공양구를 열고 한 공기의 밥과 국, 세 가지 반찬, 과일 몇조각이나 우유가 전부인 공양을 들여놓는다. 이 짧은 시간이 지나면 문문관은 또다시 깊고 깊은 침묵에 빠져든다.
무문관 수행은 오직 화두밖에는 의지할 것이 없는 지독한 감옥살이인 셈이다. 왜 이런 고행을 자초하는 것일까. 신룡 스님은 황벽선사의 선시로 대답을 대신했다.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를 견디지 않고서야 어찌 코끝을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얻으리요.’
<인터뷰>
“수행자 마음으로 살면 세상 어려움 이겨낼것”무금선원 선원장 신룡스님

“백장선사는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을 강조했습니다. 탐(욕심)·진(성냄)·치(어리석음)를 넘어 자발적인 청빈과 자립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윤리적이고 실천적 통찰입니다.”신룡 스님(사진)은 1999년부터 3년간 무금선원 무문관에서 폐문정진했으며 기본선원을 개원한 2002년부터 선원장을 맡아 선원을 이끌고 있다. 출가 37년 동안 60번 가까이 안거에 든 국내의 대표적인 선승이면서, 입문 수좌들의 선 수행 교육 토대를 만든 수좌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도 안거기간 100일 중 절반(반결제)은 무문관에서 정진하고, 절반은 기본선원 예비 스님들을 지도하고 있다. 무문관 수행자 중 제한된 범위에서나마 유일하게 외부 출입을 할 수 있는 스님이다.
신룡 스님은 이 시대 불교의 역할에 대해 “자본주의와 물질과학문명 때문에 사람들이 명예, 물질, 욕망의 노예로 살게 됐다”며 “인생의 참의미,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찾고 서로를 존중하며 더불어사는 세상을 만들려면 모두가 수행자와 같은 마음으로 자기를 각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맹자는 고통과 궁핍의 담금질이 있어야 크게 쓸 사람이 나온다고 했지요. 어려움 속에서 단련시키는 가풍이 살아있어야 수행자는 큰 깨달음을 얻고 집안에서는 큰 인물이 나옵니다. 삶 자체가 수행이라는 마음으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기를 참답게 벼린다면 세상의 어려움을 능히 이겨낼 수 있어요. 또 한번의 어려움을 이겨내면 그것이 그대로 우리 민족 미래의 힘이 될 것입니다.”
<백담사(인제)=김석종 선임기자, 사진=경향닷컴 이윤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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