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정동 ‘하비브 하우스’
서울 중구 정동(貞洞)은 1396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씨의 능인 정릉이 조성되면서 불리게 된 지명이다. 이곳에 1883년 최초의 외국 공관인 미국공사관이 들어섰다. 조선주재 초대 미 특명전권공사로 부임한 푸트가 민계호와 민영교 소유의 사저를 2200달러에 구입했다. 조선에서 서양인에게 매각된 최초의 부동산이라고 한다. 이후 영국, 독일, 러시아 공관이 차례로 들어서면서 정동 일대가 서양의 외교가가 됐다.
이런 정동에는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공사관터, 을사늑약이 맺어졌던 덕수궁 중명전, 한국성공회의 상징인 성공회 서울성당, 독립선언문을 비밀리에 등사했던 정동제일교회 등 기념비적인 근대문화유산이 모여 있다. 근대식 교육기관 배재학당,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 이화여고, 개신교 예배당 정동제일교회는 모두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현재의 주한미대사관저 건물은 ‘하비브 하우스’로 불린다. 관저 신축 당시 국무부 반대를 무릅쓰고 한옥을 고집한 필립 하비브(Philip Habib) 대사를 기리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1976년 5월 완공된 전통 한옥 기와집으로 세계 미국 대사관저 중 최초로 주재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건축가이자 ‘도깨비 박사’로 유명한 민속학자인 조자용이 설계하고 인간문화재 이광규 대목장이 총감독을 맡았다. 상량식 때는 시루떡까지 해놓고 한국식 고사를 지내 화제가 됐다. ‘ㅁ’자 구조의 한옥 관저 안뜰에는 포석정을 재현한 연못이 있다. 내부는 한옥과 서양식을 결합한 형태다. 솟을대문과 격자창, 문고리 등은 한국 최고의 장인들이 만들었다. 아이젠하워와 카터 등 방한한 미국 대통령들이 이곳에서 묵었다.
그동안 거의 공개된 적 없는 하비브 하우스 정원과 구한말 사용되던 옛 미국공사관이 일반에 공개된다고 한다. 서울 중구청이 오는 29~30일 개최하는 ‘정동 야행(夜行)’ 축제를 통해서다. 덕수궁, 성공회서울대성당, 시립미술관, 정동제일교회, 배재학당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등도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늦은 봄날,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흥얼거리며 덕수궁 돌담길 따라 리퍼트 대사가 사는 하비브 하우스를 찾아가는 정동길 시간여행도 괜찮을 것 같다.201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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