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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나이 차별

by 김석종 2015. 6. 2.

[여적]나이 차별

요즘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서열을 정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나는 82년생인데요.” “나는 빠른 83인데….” 얼마 전 외국인 패널들이 출연하는 ‘비정상회담’에서는 ‘한국식 엄격한 서열문화 필요 여부’를 안건으로 이야기를 나눴다. 터키인 아네스는 “한국에는 기껏해야 5분, 10분 차이인 쌍둥이 간에도 형, 동생이 있는데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문화를 잘 아는 출연자들은 “띠동갑 형님” “막내가 해라” 같은 말을 스스럼없이 쓴다.

한국인은 처음 만나면 자연스레 상대방의 나이를 묻는다.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유교 전통 속에 살아온 우리에게는 여전히 나이가 훈장이고 벼슬이다. 연장자는 어디서든 상석에 앉고 쉽게 말을 놓는다. 반면 연장자에게 반말을 했다가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다. “어디서 반말이야?”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두 20대 여성 연예인의 폭언과 반말 논란이 대표적인 예다. 세 살 어린 후배 연예인의 반말 섞인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한 것이다.

때로는 반말이 하대(下待)가 아니라 친근함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다. ‘당신’은 원래 예사높임체이지만 상대방을 낮잡아 부를 때도 쓴다. 외국인들은 한국어의 이런 미묘한 차이와 나이·계급에 따른 서열문화가 가장 적응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런 서열 의식이 군대식 권위주의의 ‘상명하복’ 개념과 결합돼 한국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일을 숱하게 겪었다.

최근에는 교수가 학생에게 강의와 관련 없이 공개적으로 나이를 물은 것이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고 한다. 모 대학 신학대학원 교수가 강의시간에 50대 여성 학생에게 “나이가 얼마입니까? 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습니까? 심히 걱정됩니다”라고 말한 것이 만학도에게 모욕감을 줬다는 것이다. 해당 교수는 “향후 진로 등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 위한 질문이었다”고 진술했지만, “나잇값도 못한다”는 말로 들렸을 게 뻔하다. 100세 시대에 50대의 공부를 타박한 것도 문제인 데다 연장자의 권위와 체면까지 무시했으니 참 ‘개념 없는’ 교수라는 생각이 든다. 201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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