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기사 톺아보기>(경향신문 '트래블' 1998년 12월30일자)
일출 일몰 한곳에서 볼수 있는 서천 마량포구
서해에도 새해가 뜬다
충남 서해안 서천 마량포구 마량포구 방파제에서 바라본 일몰.
다음날 같은 자리에서 등만 돌리면 볼 수 있는 해돋이. 서해바다 일출은 동해안보다 부드럽고 서정적이다.
해가 진다, 서해바다에./소란 떨던 갈매기들도 숨죽여 한해를 보낸다./해를 삼키며 바다는 새빨갛게 끓는다./회한과 미련의 찌꺼기까지 용광로처럼 살라버린 뒤 몰려오는 어둠./그 어둠 속엔 아무 것도 없다./서천 마량리 방파제에 서서 그렇게 가슴 다 비우고 돌아서면/거짓말처럼 서해바다에 새해가 뜬다./동백꽃들도 찐득찐득 묻어있던 어둠을 털고/황금빛 새해를 맞는다.
벌써 한 해가 다 저물었습니다. 이 무렵이면 떠오르는 곳이 있습니다. 충남 서천의 마량포구입니다. 경향신문의 ‘매거진X’팀이 발행한 국내 일간지 최초의 본격적인 여행 레저 섹션인 '트래블'은 1998년 12월31일에 ‘서해에도 새해가 뜬다’라는 제목을 달아 이곳을 소개했습니다. 당시 저는 여행 담당기자로 새로운 여행지를 소개하기 위해 전국지도 한 권 들고 사진기자와 함께 전국을 누비고 다녔지요.
마량포구도 그중의 한 곳입니다. 서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소개되면서 이곳은 한바탕 난리가 났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수만명의 여행객이 한 자리에서 해넘이와 해돋이를, 그야말로 ‘서쪽에서 해가 뜨는’ 경이를 보겠다고 몰려든 겁니다. 당시 경향신문 트래블 섹션의 위력이 그 정도였습니다. 경향신문이 처음 기사를 쓸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어촌마을이었던 이곳은 이제 당진 왜목마을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서해안 일출·일몰 명소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기사를 쓴 뒤 2년쯤 지나서 서천군 마량리어촌계에서는 옥돌을 깎아 만든 소박한 감사패를 보내왔습니다. 해뜨는 풍경이 조그맣게 그려진 이 감사패는 지금도 제 책상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선 해마다 연말연시에 맞춰 마량포 해넘이·해돋이 축제를 열고 있지요. 특산물인 마량포 주꾸미도 덩달아 유명해졌습니다.
<그때 그 기사>
서천/글 김석종·사진 권호욱 기자
지친 1998년의 해가 진다. 유자 속처럼 붉디붉은 ‘햇덩이’. 수평선에 맞닿은 구름과 바다를 황금색으로 물들이며 서해바다로 잠겨드는 낙조. 소란하던 갈매기떼도 잠잠하다. 자꾸만 세상 밖으로 등떼미는 것 같은 ‘땅끝’의 시간. 사람들은 지나간 한해 자신의 상처를 핥듯이 지는 해를 본다. 등 굽은 아버지의 뒷모습도 떠올린다. 시간이 멈춘 듯한 노을 속에서 구름과 갯벌, 고깃배가 점점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세밑의 짧고 아름다운 일몰은 아쉬움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다.
우리는 지금 20세기라는 사막을 낙타처럼 건너고 있다. 그러나 ‘묵은 해’의 일몰이 그렇게 절망적이지만 않은 것은 ‘새해’가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밤은 또다른 내일을 향한 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을 위한 준비. 땅끝의 외로움은 밤새 ‘희망’을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 새해는 여전히 눈부시고 싱싱하다. 특히 20세기의 마지막 1999년을 밝히는 첫 태양은.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리 마량포구는 일몰과 일출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갯마을이다. 일몰 속에 한해의 묵은 먼지를 털고 일출처럼 불쑥 머리를 치켜드는 희망을 확인하기에 맞춤한 곳이다. ‘서해에서 해가 뜨는’ 경이가 있기에 해맞이가 더욱 새롭다.
주민들에게는 칠구지로 더 잘 알려져 있는 마량포구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독특한 지형구조 때문이다. 양쪽에 바다를 품고 있어 같은 자리에서 등만 돌리면 아침해, 저녁놀을 볼 수 있다. 충남 당진군 교로리 왜목포구에서도 서해일출을 볼 수 있지만 일몰까지 보려면 산 하나를 걸어 넘어야 한다.
지도에서 보면 해변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서해 땅끝. 비인만을 감싸고 길게 돌아나간 해변은 동쪽에 비인만과 장구만, 금강하구로 이어지는 넓은 바다를 끼고 있다. 바다 너머 전북 군산까지는 육지가 멀기 때문에 건너편의 띄섬과 장구만의 개야도 사이로 떠오르는 일출을 볼 수 있다. 마량 해안 어디서든 일출을 볼 수 있지만 일몰까지 즐기려면 마량리 동백숲의 동백정과 최근 완공된 100m 길이의 방파제를 찾아야 한다. 400년생 아름드리 동백나무 90여그루가 자라는 푸른 동백숲은 요즘 한창 붉은 꽃을 피우고 있다.
마량포구에서 아침 바다 위로 머리를 내미는 둥근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은 7시30분쯤. 한순간 터지는 빛무리. 짧은 시간 땅과 바다를 광휘로 가득 채운다. 사위를 노란 빛으로 물들이며 붉디붉은 동백꽃 한송이가 바다 위로 불쑥 고개를 내미는 듯하다. 그렇게 바다 위로 두둥실 떠오른 해는 어린 비구니의 붉은 얼굴처럼 맑고 수줍다. 이때쯤이면 금강 하구언 갈대밭에서 날아온 고니, 청둥오리 등 철새떼가 해뜨는 바다를 무리지어 선회한다.
쉽지만은 않을 세기말의 마지막 해. 그래도 우리는 새로운 꿈을 다시 꺼내들 수밖에 없다. 새해에는 신새벽 일출에 새긴 다짐 허물지 말기를. 아무리 어려워도 시끄럽게 싸우지 말기를. 현실의 ‘서쪽에서도 해가 뜨기’를. 한무리의 철새떼가 해를 향해 힘차게 비상한다.
<여행길잡이> 금강하구언 철새떼 장관
삽 빌려 맛 잡는 재미도
교통/서울∼안산간 고속도로가 완공돼 서울에서 서부간선도로를 타면 서해안고속도로와 곧장 연결된다. 발안에서 21번 국도를 따라 예산∼보령∼남포.부사방조제∼춘장대∼마량항. 장항선 열차 종착점. 50분마다 열차가 출발한다. 3시간30분 소요.
숙박/마량 근처에 칠갑산여관(0459-952-3883)과 동백산장(952-3020)이 있다. 동백숲과 춘장대해수욕장 근처에 여관.민박 등이 있다.
즐길거리/연도 오력도 주변서 우럭이 잘 낚인다. 마량항 주변의 횟집.여관 등에서 낚싯배를 빌려준다. 20만원선. 겨울바다 풍경이 좋은 춘장대해수욕장서 자동차로 갯벌 위를 달릴 수 있으며 조그맣게 뚫린 구멍에 소금을 넣어 조개류 일종인 맛을 잡을 수 있다. 2,000원에 삽과 소금을 빌려준다. 금강하구언에는 희귀조인 고니와 청둥오리 등 겨울 철새가 무리지어 서식한다. 신성리에는 금강변 10만여평의 하천부지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 있다.
특산물/세모시(한산모시관·950-4226)와 소곡주(951-0290)는 서천의 대표적인 특산물. 서천 동백김(952-5570)도 맛있다. 서천군청 문화공보실(950-4224).
맛집/해변을 따라 칠구지횟집(951-5630·민박), 동화정(952-7535), 보배수산(952-3053), 웅천횟집(952-1040) 등 횟집이 많다. 자연산 광어·우럭·농어 5만∼6만원.
(*당시의 기사와 여행길잡이를 그대로 옮겼습니다. 사진을 찾지 못해 지면을 찍었습니다.)
서면 마량리 어촌계 어부들이 주축이 된 서면개발위원회에서 보내온 감사패. "귀하께서는 마량리 해 돋이를
발굴 홍보함으로써 우리면 마량리가 해 돋이 해 짐이를 동시에 볼 수 있는 새로운 관광명소로 발돋움하여
주민소득증대에 기여하시었기에 면민의 고마운 마음을 이 패에 담아드립니다."
'여행(餘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동에서 꽃을 담다 (0) | 2019.03.27 |
---|---|
봄, 지리산 여행 (0) | 2019.03.12 |
용유도·무의도. 서울에서 1시간, 낭만의 섬·산·바다 (0) | 2014.11.16 |
가을 선운사 내소사 풍경 (0) | 2014.11.14 |
[여행(餘行)]달빛 갑사, 새벽 계룡산 입산기(入山記) (0) | 2014.09.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