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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餘行)

[여행(餘行)]달빛 갑사, 새벽 계룡산 입산기(入山記)

by 김석종 2014. 9. 13.

 

 

 [여행(餘行)]절로 가는 길(2)

 갑사, 청명감 넘치는 계룡산 품에 들다 

  

 

추석 앞두고 고향 근처 갑사에서 하룻밤 지냈습니다. 예로부터 ‘춘마곡 추갑사(春麻谷 秋甲寺)’라 했지요. 봄에는 마곡사 풍광이 수려하고 가을에는 갑사 단풍이 좋다는 말입니다. 가을은 아직 일러서 단풍은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느티나무, 갈참나무, 단풍나무, 회화나무 등 몇백년 묵은 울울한 아름드리 고목들이 푸른 그늘 드리운 갑사 숲은 매혹적입니다. 이런 깊은 숲이 있으므로 계룡산 가는 길은 등산이 아니라 입산(入山)이 되는 겁니다.

 

몇몇 당우가 중창되긴 했어도 갑사는10년 전이나 이제나 단정하고 고담합니다. 산중의 해는 짧아서 삽시간에 어둠이 쏟아집니다. 갑사의 어둠 속을 어슬렁거리며 한참 청명감 넘치는 계곡 물소리를 들었습니다. 홀연 두두두두 두두둥 법고소리 들립니다. 이어 갑사 보물이라는 범종소리 댕~댕~댕~ 이어집니다. 이 북소리 세른 세번, 이 종소리 백 여덟번. 번뇌를 끊어라, 욕심을 버려라 장중하게 울립니다. 지옥, 아귀, 축생, 인간, 하늘, 수라, 그 삼라만상을 다 편안케 하려고 울립니다. 그동안 내 살이는 또 얼마나 소란했던지요. 종소리, 북소리가 마음의 먼지를 털어줍니다. 거칠게 섭렵해온 헛된 말과 욕망이 일시에 죽고 자연과 인생과 정신의 깊은 문답이 깃듭니다.

 

그 사이 계룡산 삼불봉 위로 노란 달이 싱싱하게 떴습니다. 아직은 한쪽이 일그러졌지만 이틀 뒤면 둥글게 커서 한가위 보름달로 뜰 그 달입니다. 그 달빛, 오래오래 바라봅니다. 달빛이 뜨락을 쓸어도 먼지 한 점 일지 않는다는 선시(禪詩)의 분위기를 실감합니다. 달을 가리키는 손만 보고 살아온 세월에서 떠나 이제는 참된 달의 지혜도 좀 바라봐야 될 나이입니다. 참 아늑하고 고요한 산사의 밤입니다. 

 

  


갑사 경내 깊숙히 팔상전에 딸린 객방에 잠자리를 얻었습니다. 석가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와 우리나라 전통 호법신을 묘사한 산중탱화가 모셔진 곳입니다. 가없는 부처님과 호법신의 품 안에서 개운하게 잠들고 새벽 4시 도량석 소리에 가볍게 잠깨었습니다. 아침예불에 참석한 뒤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갑사 절밥 참 맛깔납니다. 노보살님이 충청도 사투리로 "멀국(국물) 더 하셔유" 하는 말도 정겹습니다. 계룡산 묵은 상수리와 도토리를 섞어서 쑨다는데, 좀 딱딱하면서도 맛이 깊습니다.

 

 

 

 

 

갑사를 출발해 홀로 계룡산 산행에 나섰습니다. 갑사계곡 물소리를 따라 용문폭포, 신흥암, 금잔디고개를 지나 삼불봉에 오르는 길입니다. 굳이 말하자면 이 산길로 내 청춘의 발자국이 나 있습니다. 어릴적 보름달빛만으로 밤길을 걸어 갑사에서 동학사까지 넘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계룡산 넘은 기운으로 내가 숱하게 험한 고개를 넘어온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무기가 용이 됐다는 용문폭포는 예로부터 갑사구곡의 하나로 꼽힙니다. 갑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용솟음’인 연유이기도 합니다. 용유소, 이일천, 백룡강, 달문담, 군자대, 명월담, 계룡오암, 용문폭포, 수정봉이 갑사구곡입니다.

 

 

 


산행 초입부터 가파른 금잔디고개 아래까지 계곡물소리가 철철철 따라옵니다. 저질 체력에 벌써부터 다리는 풀리고 숨이 턱턱 막힙니다. 그래도 이른 새벽에 따닥따닥 상수리 익어서 저절로 떨어지는 소리가 선당의 활선구(活禪句) 만큼이나 깨단합니다. 

 

길가에 핀 노란 망태버섯은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계룡산 자연 석벽인 신흥암 천진보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아도화상이 백제땅 계룡산을 지나다가 산중에서 상서로운 빛이 하늘까지 뻗치는 것을 보고 찾아가보니 천진보탑이 있었답니다. 이로써 계룡산 아래 갑사가 개산하게 된 것이라지요. 

 

 

 

 

 

가파른 철계단을 따라 오르는 삼불봉은 계룡산행의 백미입니다. 삼불봉에 서면 계룡산 전체의 산줄기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파도치는 연맥(連脈)의 능선과 운무, 시원한 가을바람. 천황봉 쌀개봉 문필봉 관음봉 연천봉 풍광이 끝내줍니다. 이런 절경이 어려서 계룡산을 떠난 나를 맞아줍니다. 간절했으되 미숙했던 젊은 날의 포부는 계룡산에 그저 흐르는 흰구름이었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이대로 평생 갑사에 틀어박혀 불목하니나 하면서 계룡 청산을 오르내려도 아쉬울 거 하나 없을 듯합니다.

 

 

 

 

 

 

삼불봉에서 내려와 동학사쪽으로 내려가면 남매탑이 있습니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왔던 이상보의 수필 ‘갑사로 가는 길’에 나오는 전설의 남매탑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신라 선덕여왕 원년에 상원대사가 이곳에서 움막을 치고 수도하고 있었답니다. 어느 날  호랑이 아가리에 박힌 가시를 뽑아줬는데, 그 호랑이가 은혜를 갚겠다고 처녀 하나를 물어다 놓고 가버린 겁니다. 스님은 그 처녀를 집에 데려다줬으나 상원 스님에게 반한 처녀가 부부의 인연이 이뤄지기를 소망합니다. 스님은 부부 대신 의남매를 맺어 함께 불도에 힘써서 성불했다고 합니다. 지금 가장 먼 아내가 가장 가까운 오누이인지도 모르지요. 남매탑을 보며 그저 오누이같은 아내가 남은 생의 구원이라고 믿어봅니다.

 

 

애초 남매탑에서 동학사로 내려갈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갑사 주지 화봉 스님과의 약속에 늦어서 서둘러 갑사로 돌아왔습니다. 한번 내려갔다가 다시 삼불봉고개까지 올라오는 길은 두배로 힘들었습니다.

 

 

 

화봉 스님은 불교계에 수행 제대로 한 활달 무애한 수좌라고 일러 준 이는 선불교의 젊은 인재인 박희승 법사입니다. 과연 듣던대로 화봉 스님과의 차담은 자못 깊고 은은했습니다. 스님은 갑사는 기운이 뜨지 않고 양명하다고 말합니다. 갑사에서 자는 잠이 아늑하고 달았던 게 그래서였을 겁니다.

"단풍 들 때는 누가 붓칠하듯 색깔이 순간순간 바뀌는 걸 볼 수 있지요. 내가 운수객으로 명산명찰을 다 다녀봤지만 계룡산 갑사 단풍이 최곱디다."

아무래도 단풍 절정기에 갑사에 다시 와야 할 것 같습니다. 벽에는 스님의 스승의 스승, 속가로 치면 조부격인 노장 화엄스님이 화봉스님에게 내려준 '본래면목(本來面目)' 글씨가 족자로 걸려 있습니다. 스님이 깨달은 경지에서 나타나는 자연 그대로의 심성, 가식이나 인위를 일체 더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갖추고 있는 본 마음이라고 풀이해주지만 중생에게는 너무 어려운 경지입니다.

 

 

 

 

세상에는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엄 스님이 또 대단한 선승이었다고 합니다. 1923년생 화엄스님은 오사카 의전을 졸업하고 범어사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2004년 늦가을 김해 신어산 동림사에서 입적했습니다. 법호는 한산(寒山)입니다. 생전 달마도, 선서화로도 일가를 이뤘다고  합니다. 거침없는 일필휘지의 괴체(怪體)로 불교계에 유명했답니다. 화엄 스님은 열반 15분 전 제자들에게 "나 이제 가야겠다"고 말한 뒤 붓을 들어 임종게를 썼습니다.

 

'칠십칠년 꿈 속의 나그네/꼭두각시 몸을 벗고 어느 곳에 가는고/만일 누가 물어도 말할게 없나니/ 신어산 영봉엔 단풍잎 흩날리도다'

 

그렇게 단숨에 쓰고는 “아이고 추워라. 감장사야! 감도 하나 못팔고 불알만 꽁꽁 얼겠네”라고 말 한 뒤 조용히 열반에 들었답니다. 화봉 스님은 "그때 회오리바람이 일면서 단풍이 흩날리는 모습이 장관이었다"며 "근래에 보기 드문 멋진 열반이셨다"고 전합니다. (언제 이분 이야기를 취재해야겠습니다).

 

화봉 스님은 가끔 깜깜한 새벽에 갑사 지맥의 정점인 계룡산 수정봉이 오로라 형태로 훤하게 빛을 내며 방광(放光)하는 모습을 목격한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신령한 계룡산이고, 갑사입니다. 안 그러면 왜 그렇게 숱한 정감록의 정도령들과 영험 도인들이 계룡산으로 모여들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절을 한바퀴 더 돌아봤습니다. 계룡산의 서쪽, 공주 갑사는 앞서 말한 백제 때 아도화상의 창건설이 전하는 계룡산의 중심사찰입니다. ‘으뜸 갑(甲)’자를 쓴 절 이름처럼 오랜 내력과 매력을 간직한 절입니다. 갑사는 의승군장 영규대사를 배출한 사찰입니다. 영규대사와 의승들은 청주성, 행주산성 등 중요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금산전투에서 조헌의 의병들과 함께 전멸합니다. 갑사에는 영규대사와 서산, 사명대사의 영정을 모신 표충원(表忠院)이 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다시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왜군은 영규대사의 사찰인 갑사는 물론 계룡산의 모든 사찰과 암자를 불태워버리는 것으로 보복을 합니다. 그후 갑사를 재건하는 대대적인 불사를 시작했을 때 소 한마리가 나타나 짐을 날랐다고 합니다. 대적전 가는 길 계곡 옆에 자그마한 탑이 하나 있는데 공우탑입니다. 절에서 불사를 돕던 소가 늙어 죽자 승려들이 은공을 기려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계룡산엔 이런 전설이 숱합니다. 그중 하나가 조선 태조 이성계 이야기입니다. 이성계가 계룡산 기슭 신도안에 도읍을 정하려고 주춧돌을 세웠습니다. 계룡산 산신이 계룡산의 돌 하나, 흙 한 줌 건드리지 말라고 호통을 쳐서 이성계는 신발에 묻은 흙까지 탈탈 털고 떠났답니다.

 


 

보물 제257호인 팔각원당형 갑사 승탑은 현광 스님의 부도라고 전해집니다. 기단의 사자 조각이 매우 입체적이고 화려합니다. 그 위로 꿈틀거리는 구름무늬 조각 위에 천인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승탑 옆에 여름부터 가을까지 백일을 핀다는 배롱나무, 목백일홍도 이젠 지고 있습니다. 알고보면 꽃 한송이 피어서 백일 가는 게 아닙니다. 피었다 지고 피었다 지면서 오래가는 겁니다. 오래 피려면 혼자서는 안된다고 수백년 잘 늙은 갑사 배롱나무가 말해줍니다.

 

목백일홍, 함께 피어서 오래 피는 저 꽃!

 

 

 

통일신라 때 세웠다고 전해지는 훤칠한 철 당간도 볼만합니다. 그 높이가 15m나 됩니다. 원래는 28개의 철통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고종 30년에 벼락을 맞아 꼭대기의 철통 4개가 부러졌다고 합니다. 갑사에 월인석보 판목(보물 제582호)이 있다고 합니다. '세존이 발을 드시니 장딴지에서 다섯가지의 광명이 나서 꽃이 피고 꽃 사이에서 보살이 나오시니….' 월인천강지곡의 한 대목입니다.

 

 

 

 

절앞의 갑사 내력을 전하는 사적비 옆 부도전에는 ‘석종형’ 부도가 참 많습니다. 내꺼? 내 형님들꺼? 이런 우스개 소리를 해가며 유명, 무명의 고승들 사리를 모신 부도를 둘러봅니다. 모르죠. 오래된 과거생에서 나와 어떤 인연이 있었을지도.

 

화봉 스님이 한마디 합니다. “불교는 죽음을 새롭게 하는 종교입니다. 제대로 죽기 위해서, 자연스럽게 몸을 벗고 자유롭게 오고 가기 위해서 수행한다고 봐야죠.” 계룡산 갑사의 단 1박2일 입산으로 참 많은 이문이 남았습니다. 갑사와 계룡산을 실컷 보고 온 이번 추석은 계룡산을 비추는 한가위 보름달, '슈퍼문' 만큼이나 몸과 정신의 주머니가 두둑하고 빵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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