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종의 만인보]
영혼의 향기 담아 ‘힐링 커피’ 만드는 ‘커피 중독자’ 마은식
10년 넘게 만나도 늘 말수 적고 점잖기만 한 마은식(48)이 대뜸 핏대를 세우고 나왔다. 별일도 아니었다. 마은식을 ‘1서3박’(1980년대 핸드드립 커피를 전문으로 한 강릉 ‘보헤미안’의 박이추, 은퇴한 박상홍, 그리고 작고한 서정달·박원준을 그렇게 부른다)에 이은 2세대 커피 장인(匠人)으로 꼽더라는 얘기를 했을 뿐이다. 그랬더니 그렇게 부를 만한 고수가 국내에는 한 명도 없다고 딱 못 박는 거였다. ‘1서3박’이니 ‘누구누구 커피’니 하는 게 다 언론이 과대포장한 ‘뻥’이라는 거다. “유명한 직업 커피꾼이라고 쓴다면 또 모를까.”
서울 종로구 부암동, 창의문 옆 북악산길 초입에 있는 ‘클럽 에스프레소’의 주인장. 커피맛 좀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사이에 명성이 뜨르르한 커피 전문가다. 그가 만든 커피를 ‘현자의 커피’라고 치켜세우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그런데도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걸 보면, 마은식은 커피의 고전주의자인 게 분명하다.
왜 있잖은가. “아, 이제 더 이상 커피를 마실 수 없구나.”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했다는 루소, 하루에 커피 50잔씩 마셔댔던 볼테르, 카페인 중독으로 죽은 발자크처럼 그 인생과 예술에 커피 향이 짙게 배어 있는 커피광들 말이다. 국내로는 130년을 거슬러 한국 최초의 커피 애호가라는 고종, 애인 금홍과 함께 다방 ‘제비’를 열었던 시인 이상, 영화배우 복혜숙의 카페 ‘비너스’ 단골손님 윤보선 전 대통령, ‘가을의 기도’의 시인 다형(茶兄) 김현승 같은 이를 꼽는다.
나야 ‘프림’과 설탕을 듬뿍 넣은 ‘다방커피’(펄 시스터즈의 노래 ‘커피 한잔’도 떠오른다), 집에서는 동서식품 맥스웰 하우스 커피면 충분했다. 분위기 그윽한 카페, DJ가 LP판을 틀던 음악다방은 또 얼마나 많이 다녔나. 명동 ‘돌체’, 종로 ‘르네상스’는 못 가봤어도 비 오는 날 대학로의 ‘학림다방’이나 이대 앞 ‘심포니’에서 커피광이었다는 브람스, 바흐, 베토벤의 클래식에 젖기도 했었다. 자판기 커피, 커피 믹스, 캔커피라고 마다한 적 없다.
그런 나까지도 요즘은 한 집 건너 들어선 커피 전문점에서 아메리카노며 케냐, 콜롬비아, 과테말라, 에티오피아, 브라질산 커피를 무시로 마시는 세상이다. 그러니까 바야흐로 커피 르네상스인데, 마은식은 또 냉소적으로 말했다. “그건 커피문화가 아니라 커피의 블랙홀이지.” 요즘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들이 한 세대 전 ‘난다랑’(1970년대 고급 원두커피 전문점으로 커피맛과 분위기가 참 좋았다)만도 못하다는 거다. “진짜 잘 만들어진 커피는 피색깔이다. 커피에 피 같은 인생의 에센스가 들어 있어야 한다.”
마은식은 대학로 카페 ‘정경’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커피라는 신천지를 발견하고 커피광의 세계에 입문했다. 1990년 아예 대학을 중퇴하고 형의 도움을 받아 대학로에 클럽 에스프레소를 열었다. 스물 세살 때다. 그러다가 동생에게 가게를 맡기고 일본으로 가서 3년 동안 커피 공부를 하고 왔다. 2001년에 현재의 부암동 3층짜리 건물로 옮겼다. 당시 부암동은 도심에서 한발 비켜난 서울의 오지였다. 그런데도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줄을 서면서 ‘커피의 오아시스’로 확 떴다.
이 집은 특이하게 ‘커피 상점’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원두나 커피 기구를 함께 판다는 거다. 원두 본래맛을 그대로 파는 가게라는 뜻도 담고 있다. 특출난 뭐가 있는 양 폼잡을 거 없이 원두가 좋으면 커피가 좋다는 얘기다. “결국 커피맛은 제대로 된 생두를 고르고, 보존하고, 볶는 모든 의식에서 가공되기 전 오리지널의 맛과 향을 복원하는 것으로 실력이 갈린다.” 그러므로 자신은 ‘커피 중독자를 위한 커피’를 내놓는 ‘커피 중독자’일 뿐이란다. 커피 중독은 치명적이고 매력적이라고 했다. 커피야말로 영혼까지 평화롭게 만들어주는 훌륭하고 아름다운 묘약이라는 말도 했다(내 후배 양선희 시인이 쓴 <힐링 커피>는 그런 커피와 커피집을 찾아다니는 커피 순례자의 에세이다. 커피맛처럼 글맛이 깊고 은은하고 향기롭다).
클럽 에스프레소의 인테리어가 모두 마은식의 머리와 손끝에서 나왔다. 벽과 진열대, 탁자, 의자까지 하나하나 직접 만들었다. 이런 목공은 마은식이 커피 다음으로 정성을 쏟는 작업이다. 작년에는 경기 가평 설악면 널찍한 땅에 클럽 에스프레소 커피공장을 세웠다. 앞으로 마은식의 커피열정과 꿈을 펼칠 새로운 전진기지다. 이곳도 모든 건물의 콘셉트와 실내외 목공작업까지 그의 손으로 다 해냈다.
십수년 전 발해 1300호 추모제에서 마은식을 처음 봤다. 1997년 말, 발해시대의 뗏목을 복원해 옛 발해땅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부산으로 향하다가 목숨을 잃은 장철수·이덕영·이용호·임현규 추모제 말이다. 해마다 1월23일에 인사동 문화인들이 추모제를 여는데, 그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올해 18주기 추모제는 전적으로 마은식이 주관해 가평 클럽 에스프레소에서 열렸다. 그 추모제가 끝난 뒤 커피공장을 둘러보니 한마디로 대단했다. 생두를 과학적으로 보존하는 저온창고, 커피숍과 커피연구소, 여느 제재소 못지않게 전문적인 목공기계를 갖춘 목공소, 온갖 건축장비가 있는 창고가 늘어섰다.
커피업계 리더로도 한몫한다. 1995년 한국커피문화협회를 만들어 총무를 했다. 지금은 한국스페셜티커피협회(SCAK) 고문이다. 요즘 국내 커피 트렌드가 스페셜티 커피라고 한다. 세계협회가 원두의 생산, 유통, 소비의 전 과정을 인증하기에 지역만의 특색과 순도가 살아있는 커피다. “일단 자연친화적이다. 생산지 고유의 과일향과 꽃향기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요즘 생두 산지의 공기와 물과 흙과 비와 바람냄새까지 되살리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런 커피향을 위해 성지순례하듯 아프리카로, 남미로 커피농장을 찾아다닌다. 인생이 자연을 알아가는 과정 아니냐며, 그에게 커피는 자연으로 가는 통로라고 했다. 강원도 홍천의 숲은 은신처다. 거기서 홀로 야영을 하며 가장 좋아하는 커피인 에티오피아 예가체프나 예멘 모카사나니를 마신다. 사막의 고독한 베드윈족이 북극성 아래 오아시스에서 원두를 절구로 찧어 모닥불에 진하게 커피를 끓이고, 그 커피향이 모래언덕으로 퍼져나가는 상상을 한단다. “그게 내가 만들고 싶은 궁극의 커피다.”
밤 늦은 시간, 서울 북촌에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진짜 커피만 고집하는 그는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마은식이 우리에게 제안하는 커피 잘 마시는 방법은 또 영 딴판이다. 최대한 느긋하게, 음악과 독서와 예술의 분위기 속에서, 자기 앞의 생의 고독도 깊이 들여다보면서, 진한 사랑과 안타까운 이별로 가슴이 터질 때, 그리고 자기를 사랑하고 위로하고 싶을 때 마시는 커피야말로 인생의 커피다. 그렇게만 한다면 다방 커피면 어떻고, 자판기 커피면 어떤가. 아무리 대단한 솜씨로 커피를 내린들 그게 무슨 대수인가. 마은식이 그렇게 말했다.
'만인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무애도인' 오현 스님, 적멸의 길로 가다 (0) | 2018.05.30 |
---|---|
‘우리시대의 마지막 도인’ 떠나다 (0) | 2016.11.14 |
재야 기타 최고수 ‘와이키키 브라더스’ 최훈 (0) | 2015.04.18 |
나전칠기 첨단 디자인 미술가 김영준 (0) | 2015.04.18 |
마음으로 찍는 사진계 선승, 육명심 (0) | 2015.02.0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