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신화 벗겨낸 ‘세속 불교도’
스티븐 배철러 지음·김옥진 옮김 | 궁리 | 408쪽 | 1만8000원
영국 출신 스티븐 배철러는 19세 때인 1974년 인도 다람살라에서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을 따르는 티베트 불교 승려가 된다. 그러나 티베트 불교 명상 형태의 수행에서 ‘자유’를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선 수행법을 찾아 한국에 온다. 1980년 한국 송광사에서 구산 스님의 제자로 법천이라는 법명을 받고 한국 선불교 전통의 ‘이뭣고’ 화두에 몰두한다. 하지만 송광사에서 만난 프랑스인 비구니 성일 스님과 함께 1984년 환속하고 말았다.

저자는 10년 동안 성일 스님으로 살았던 아내 마르틴과 함께 프랑스에 정착했다. 그렇다고 티베트와 한국 불교 스승들의 가르침과 영영 결별한 건 아니었다. 다만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이를 행하는 방식이 붓다의 실제 가르침과는 어긋난다는 의심을 품고 더욱더 절박하게 질문을 던졌다. 싯다르타 고타마라는 사람, 붓다는 과연 누구였나? 그는 팔리 경전에서 발견되는 붓다의 초기 가르침에 점점 더 집중했다. 다시 인도를 찾아가 붓다가 살고 가르쳤던 현장을 답사했다. 붓다가 살았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붓다의 위치를 살폈다.
책은 이 서양인 불교도의 드라마틱한 자서전이면서 그 여정을 통해 재구성해낸 역사적인 인간 붓다의 이야기다. 스스로 ‘불교의 실패자’라고 고백하는 저자의 관점은 분명하다. 붓다는 근본적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인간의 삶을 봤을 뿐 업과 내세 개념과는 상관없다는 거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최대 관심사였던 붓다가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신의 위치로 격상됐다. 붓다의 가르침과 한참 거리가 먼 지나친 종교성이 문제라는 얘기다.
저자가 제목으로 내세운 ‘불교무신론자’란, 기독교 무신론자가 초월적인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을 거부하듯 환생과 업의 불교 교리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베스트셀러 <붓다는 없다>와 <선과 악의 얼굴>에서도 똑같은 주장으로 논쟁을 불렀던 저자는 이 책에서 좀 더 대담하게 붓다를 둘러싼 신화의 층을 벗겨낸다. 불교 성직자들이 재가 수행자들에게 행사하는 무조건적 권위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에게 불교는 행동과 책임의 철학이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불교 철학과 명상을 가르치면서 ‘세속 불교도’를 자처하는 저자는 말한다. “세속 불교도로서 나의 수행은 이 세상, 이 시대에서 삶의 고통에 최대한 진실되고 긴급하게 반응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불교 수행의 목적이 니르바나를 얻는 것이라기보다는 이곳 지상에서 팔정도라는 윤리적 틀 안에서 매 순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본다.”
이전과 다른 환경과 경험 속에 사는 현대인들에게 불교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 점이 크게 와 닿는 책이다. 또 석 달짜리 안거를 일곱 번 행한 저자의 송광사 시절은 한국 독자들에게 눈길을 끌 만한 대목이다. 궁금증도 생긴다. 한국 불교는 과연 21세기에 걸맞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재창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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