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소외되고 내몰리는 삶 속에서 작동하는 소박하지만 생생한 예술의 꿈
그을린 예술…심보선 지음 | 민음사 | 272쪽 | 1만5000원
시인이며 사회학자인 저자 심보선이 이 시대 예술과 삶의 관계를 깊숙이 살펴본 연구서이자, 현장 르포집이다. 책은 공동체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진심과 열망을 담고 있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삶 속에서 예술을 꿈꿔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의 거대한 영향 아래 우리 삶은 피폐해졌고, 예술은 시장논리에 잠식해 죽었다고 본다. 저자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은 선언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
그는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 되살아나는 예술을 ‘그을린 예술’이라고 부른다. 그을린 예술은 전통적인 의미의 예술, 즉 ‘죽은 예술’과 대척점에 놓여 있다. 그것은 우리 삶 속에 위태롭고도 생생하게 존재하는 예술이며, 자본주의의 불길 속에서도 꿈틀거리며 살아 있는 예술이다. 그런 불길의 위협 앞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는 것이 바로 그을린 예술이다.
저자는 몇 년간 그런 그을린 예술의 당사자로 참여했고, 그 장소를 방문했고, 그 꿈을 실행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책은 그런 개인적 이력을 밑그림으로 예술의 위기와 삶의 비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한다. 소외되고 내몰리는 각박한 삶 속에서 작동하는 소박하지만 생생한 예술의 꿈을 이야기한다.
삶의 비참을 행복의 빛으로 바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은 지금 어디 있는가. 용산참사 이후 4년, 우리는 행복한가. 책은 일상의 예술, 범인(凡人)의 예술, 문맹의 예술, 공동체 속의 예술 등을 통해 행복의 가능성을 모색해나간다. 처음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 살 넘은 할머니의 시, 철거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노래,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함께하는 예술 동호회 등을 소개한다.
치열한 경쟁과 낙오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기쁨과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안정된 지위를 갖추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우정으로서의 예술, 삶을 함께 나누는 기쁨과 행복으로서의 예술, ‘누구나’의 예술을 향해 있다.
그는 보다 나은 존재로 스스로 갱신하고 고양하며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길은 타인과 삶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텅 빈 우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텅 빈 우정이란 “함께 살고 함께 존재하고 함께 지각하는 것, 그 자체가 좋고 즐겁기 때문에 맺는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말하자면 영화 <허수아비>(1973)에 나오는 두 패배자 맥스와 라이언의 우정과 같은 것이다. 심보선은 예술 역시 ‘텅 빈 우정’, 또는 ‘삶 자체의 함께-나눔’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예술이란 창작(해석)을 통해 고유한 삶의 형태를 빚어내고, 이 삶의 형태는 일종의 우정을 통해 타인과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속물과 동물 사이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길을 확보할 수 있는 경로라고 말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하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평범하고 궁색한 삶을 부정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타인과 나누는 ‘우정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인간으로서 고양되며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고 비참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2009년 용산참사 이후 ‘6·9 작가선언’에 참여했을 당시의 경험, 두리반 철거 현장에서 자발적, 자립적으로 이루어진 문화 축제의 모습 등을 통해 확인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 속에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러한 행복의 가능성은 예술을 행하는 전문가 집단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술이 되찾아야 할 마술적 힘은 오히려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예술에서 온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70대까지 문맹이었으나 나중에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 살 넘은 할머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낮에 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밤에 불을 밝히고 시를 쓰며 ‘행복한 피로’로 시간을 보내고, 시상이 자꾸만 떠올라 밭일에 몰두하지 못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할머니의 예를 통해 예술이란 “작품의 제작인 동시에 삶의 제작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한 몰두가 자아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사회질서가 자신에게 부과한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모험”이라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예술적 제작 활동을 하는 ‘누구나’ 그 순간 새로운 주체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삶이 고양된다. 그 순간을 통해 자유와 해방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누구나’의 열망과 의지와 몰두는 억압적 세계에 대항하는 투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생생한 삶을 향한 존재의 드러냄이다. 저자는 이러한 ‘그을린 예술’의 꿈을 그리며, 또한 그을린 예술이 지금 여기에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지 증언한다.
시인이며 사회학자인 저자 심보선이 이 시대 예술과 삶의 관계를 깊숙이 살펴본 연구서이자, 현장 르포집이다. 책은 공동체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진심과 열망을 담고 있다.
저자는 책의 프롤로그에서 우리가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삶 속에서 예술을 꿈꿔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체제의 거대한 영향 아래 우리 삶은 피폐해졌고, 예술은 시장논리에 잠식해 죽었다고 본다. 저자는 이 책이 다음과 같은 선언이 되기를 소망한다고 했다. “예술은 죽었다. 예술은 다른 곳에서 되살아날 것이다. 삶 속에서, 삶의 불길에 그을린 채.”
저자는 몇 년간 그런 그을린 예술의 당사자로 참여했고, 그 장소를 방문했고, 그 꿈을 실행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책은 그런 개인적 이력을 밑그림으로 예술의 위기와 삶의 비참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한다. 소외되고 내몰리는 각박한 삶 속에서 작동하는 소박하지만 생생한 예술의 꿈을 이야기한다.
삶의 비참을 행복의 빛으로 바꾸는 꿈으로서의 예술은 지금 어디 있는가. 용산참사 이후 4년, 우리는 행복한가. 책은 일상의 예술, 범인(凡人)의 예술, 문맹의 예술, 공동체 속의 예술 등을 통해 행복의 가능성을 모색해나간다. 처음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 살 넘은 할머니의 시, 철거 공간에서 울려퍼지는 노래, “살고 싶어서, 죽기 싫어서” 함께하는 예술 동호회 등을 소개한다.
치열한 경쟁과 낙오의 불안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삶의 기쁨과 행복을 말하는 것은 안정된 지위를 갖추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들에게만 가능한 일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우정으로서의 예술, 삶을 함께 나누는 기쁨과 행복으로서의 예술, ‘누구나’의 예술을 향해 있다.
그는 보다 나은 존재로 스스로 갱신하고 고양하며 삶의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길은 타인과 삶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텅 빈 우정’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텅 빈 우정이란 “함께 살고 함께 존재하고 함께 지각하는 것, 그 자체가 좋고 즐겁기 때문에 맺는 타인과의 관계”를 말한다.
말하자면 영화 <허수아비>(1973)에 나오는 두 패배자 맥스와 라이언의 우정과 같은 것이다. 심보선은 예술 역시 ‘텅 빈 우정’, 또는 ‘삶 자체의 함께-나눔’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 예술이란 창작(해석)을 통해 고유한 삶의 형태를 빚어내고, 이 삶의 형태는 일종의 우정을 통해 타인과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속물과 동물 사이에서 가까스로 자신의 길을 확보할 수 있는 경로라고 말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을 창작과 해석, 친구-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지각하고 나눌 때, 인간은 비범하고 위대해진다. 평범한 비범함, 궁색한 위대함이야말로 ‘우정으로서의 예술’이 밝히는 인간적 실존이다.”
평범하고 궁색한 삶을 부정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해석하고 타인과 나누는 ‘우정으로서의 예술’을 통해 인간으로서 고양되며 가까스로 자유를 되찾고 비참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2009년 용산참사 이후 ‘6·9 작가선언’에 참여했을 당시의 경험, 두리반 철거 현장에서 자발적, 자립적으로 이루어진 문화 축제의 모습 등을 통해 확인한다.
삶의 평범함과 궁색함 속에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이러한 행복의 가능성은 예술을 행하는 전문가 집단에 속한 것이 아니다. 예술이 되찾아야 할 마술적 힘은 오히려 ‘누구나’ 행할 수 있는 예술에서 온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70대까지 문맹이었으나 나중에 글을 배워 시를 쓰기 시작한 여든 살 넘은 할머니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낮에 농사를 짓는 할머니는 밤에 불을 밝히고 시를 쓰며 ‘행복한 피로’로 시간을 보내고, 시상이 자꾸만 떠올라 밭일에 몰두하지 못하기도 한다.
저자는 이 할머니의 예를 통해 예술이란 “작품의 제작인 동시에 삶의 제작이기도 하다는 것, 그러한 몰두가 자아에 대한 배려인 동시에 사회질서가 자신에게 부과한 정체성으로부터 해방되려는 모험”이라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프로이든 아마추어이든 예술적 제작 활동을 하는 ‘누구나’ 그 순간 새로운 주체로 다시 태어나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고, 삶이 고양된다. 그 순간을 통해 자유와 해방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을 행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그 모든 ‘누구나’의 열망과 의지와 몰두는 억압적 세계에 대항하는 투사가 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좀 더 생생한 삶을 향한 존재의 드러냄이다. 저자는 이러한 ‘그을린 예술’의 꿈을 그리며, 또한 그을린 예술이 지금 여기에 어떻게 존재하고 작동하는지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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