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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소나무 시인

by 김석종 2015. 6. 2.

 여적/ 소나무 시인

 우리나라는 소나무 나라다. 이 땅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데다, 민족의 삶과 정신세계와 뗄 수 없는 인연을 맺고 있어서다. “나라꽃은 있는데 나라나무가 없는 게 말이 되나.” 소나무를 나라나무(國木)로 지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시인이 있었다. 소나무를 끔찍히 사랑해서 말년에는 오로지 소나무 시만 썼던 박희진 시인이다.
 “잘 생긴 소나무에는 풍류를 즐기는 도인과 같은 기품이 있어. 소나무를 사랑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영성과 얼을 되살리는 일이지.” 얼굴 가득 수염을 하얗게 길러 그야말로 고결한 도인 풍모를 풍기던 여든 다섯살의 그가 지난달 31일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동인지 운동과 시낭송 운동의 선구자, <실내악> <청동시대> 등 35권의 시집을 낸 순수 서정시인이라는 부음기사가 실렸다. 그럼에도 그의 자부심이었던 ‘소나무 사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건 유감이다.
 평생 독신을 고수했던 시인은 소나무를 가족으로 여겼고, 늘 소나무처럼 살기를 원했다. 소나무 박사 전영우 교수와 함께 소나무를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동호회 ‘솔바람 모임’을 10년 넘게 이끌었다. 소나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려는 뜻이었다. 아름다운 솔숲과 명품 소나무를 찾아다니며 시상을 가다듬고 소나무 예찬을 쏟아냈다. 젊은 사람이 무색할 정도의 열정으로 우렁차게 소나무 시를 낭송했다. ‘소나무 아래 정자에선 녹차 한 잔 들게나/바쁜 세상일수록 마음을 비우고/솔바람 소리 듣는 법도 배워야지/차 맛은 길지만, 인생은 짧다네.’ 시집 <소나무 만다라>에 실린 ‘그대 벗이여…’ 전문이다.
 2005년 재선충병으로 소나무가 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죽어가는 소나무를 살리기 위한 문화예술인 100인 선언’으로 지지부진하던 ‘재선충병방제특별법안’의 국회 통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더구나 금강 소나무 정토/각별히 키 크고 알찬 강송미림이 있어/그 안에 들어서면 넋을 잃는다네/빛과 고요의 벼락 세례 받기 때문.’(‘소광리 금강소나무 정토’에서) 뒷동산 늘푸른 소나무처럼 향긋한 솔냄새가 느껴지던 시인. 이제 송홧가루 노랗게 날리는 계절이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마음 속에 서늘한 솔바람 소리를 들였으면 한다. 김석종 논설위원 20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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