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주 좋아하는 경구가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교의 경전 주석서인 <미드라쉬(Midrash)> 편에서 솔로몬이 ‘다윗 왕의 반지’에 새겨넣었다는 말, "이 또한 지나가리라." 또 하나는 오대산 한암 스님이 죽음을 앞두고 써서 남긴 '일생패궐(一生敗闕)'입니다. 풀이하면, "이번 생은 다 망쳤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이취(泥醉)의 밤마다 이 말을 떠들고 다녔습니다. 참 통쾌했습니다. 온갖 세상잡사와 나날들이 같잖아지는 이 통쾌함!
만해 한용운의 오도송도 내 단골 레퍼토리였지요.
남아도처시고향(男兒到處是故鄕) 사나이 가는 곳이 곧 고향이거늘
기인장재객수중(幾人長在客愁中) 그 몇이나 나그네 시름 속에 오래 머물렀던가.
일성갈파삼천계(一聲喝破三千界) 한소리 크게 내질러 세상을 깨뜨리니
설리도화편편홍(雪裏桃花片片紅) 눈속에 복사 꽃 꽃잎마다 붉도다
1984년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딱 30년을 채웠습니다.
저 유명한 58년 개띠(태어나자마자 죽을 고비를 넘긴 통에 주민등록상에는 59년생으로 돼 있습니다. 그 덕에 그나마 정년퇴직 1년을 벌었습니다만).
'조직의 쓴맛만 보고 개인의 단맛은 못본 세대'로 살면서 직업으로 기자 말고는 해본 게 없습니다.
그 30년을 추억(자축은 못하겠고!)하고, 이제 슬슬 떠날 준비를 하는 마음으로 그간 써온 기사들을 하나씩 챙겨서 취재 뒷얘기를 곁들여 올려보려고 합니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취재 인터뷰), 참 많은 곳을 쏘다녔고(여행). 참 열심히 퍼마셨지요. 술동네서는 인사동파 주당으로도 조금 이름을 떨쳤으니 그 술집들 이야기도 섞어보려고 합니다.
이런저런 인연을 맺은 사람들 가운데 벌써 세상을 떠나신 분들이 참 많습니다. 꽃이 져도 향기는 그대로인, 이 세상에 없는 그이들이 그립습니다. 하긴 우리 모두기 언젠가 이 세상을 비워줘야 할 존재들이지요.
인물 조각을 할 때 코는 될수록 크게 하고,
눈은 될수록 작게 새기라고 합니다.
실패했을 때 고칠 여지를 남겨두라는 거지요.
이래저래 이번 생은 크게 망쳤으니….
새해 벽두에 겨우 이런 말이나 중얼거립니다.
새벽처럼 깨어 길떠나는 이여
나와 그대는 한그루 나무다.
일생에 단 한그루 꽃나무다.
가도가도 길 없는 길.
가는 곳마다 만나는 이여.
그대는 곧 나다.
잘 못자란 나무다.
그리운 적 없어? 기다린 적 없어? 떠난 적 없어?
안 운 적 없어!
그대 얼굴 꽃 한송이 불 한송이
아홉번 잊고, 단 한번 못잊으리.
바람 말고 누가 또 쏜살같이,
앞서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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