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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오디세이

차 이야기1-추운 겨울 건너는 따뜻 향긋한 작설차 한 잔!

by 김석종 2014. 1. 10.

 

 

 

당대 제일 '괴각승' 통도사 극락암 명정 스님의 골때리는 차 맛.

 

 

 

 

                                                                                        명정스님/경향신문 자료사진

 

 오늘은 차(茶) 얘길 해보련다. 마침 ‘전설의 차인(茶人)’ 효당 최범술 스님의 사상과 일대기, 업적을 집대성한 <효당 최범술 문집>(전 3권·민족사)이 도착했다. 창밖에는 강추위가 며칠 째 쨍쨍하다. 이런 날 효당의 책을 받고보니 산사의 고담(古淡) 소쇄한 차 한 잔이 그립다.

 

 내 살아온 날의 석양이 더 길어지면 초야에 묻혀서 차 한 잔 마셔보겠다고 모아둔 차가 꽤 된다. 절에 갈 때마다 스님들이 가부좌로 따라주는 작설차를 공손히 받아마셨고, 당대의 재야 차인들과도 어지간한 우정을 나누고 살았다.

 

 그 중에서도 통도사 극락암에 사는 ‘당대의 괴각승’ 명정 스님을 잊을 수가 없다. 그이는 경봉-효당의 맥을 이은 선차(禪茶)의 대가로 불린다. 차와 함께 육두문자로 펼쳐내는 활선구(活口禪)로 호가 난 이다. 곡차도 서슴없이 마신다.

 

 1982년 열반을 앞둔 경봉 스님에게 제자 명정 스님이 물었다. “스님, 가신 뒤에도 뵙고 싶습니다. 어떤 것이 스님의 참모습입니까?” “야반삼경에 대문 빗장을 만져보거라.” 경봉 스님이 이런 멋진 임종게를 남기고 열반에 든 삼소굴 옆 원광재에서 명정 스님을 만났다.

 

 ‘산중 기인’ 명정 스님은 찻자리에 가부좌 널찍하게 틀고 앉아 능숙한 손놀림으로 차를 우려내면서 소리소리 질었다. 
 
“야, 이놈아! 입 닥치고 차나 마셔!” 다관이 꽉 차도록 찻잎을 듬뿍 넣은 스님의 차 맛은 소태처럼 썼다. 그냥 차 엑기스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스님은 “남들이 독할 정도로 짜다고 하지. 이게 제대로야” 하면서 껄껄 웃었다. 그 차맛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여운이 생생하다.  

 

 “스님은 어찌 출가했습니까?” “버스타고 왔다.” 이런 의외의 답에 폭소가 터졌다.  

 명정 스님은 삼소굴에서 경봉 스님을 시봉하며 차 심부름을 했다. 노스님이 “염다래(拈茶來) 하거라(차 달여 와라)” 하면 풍로에 숯불을 피워 차를 달이면서 선차를 익혔다. “염다래 하라”는 조주 선사의 유명한 화두 “차나 한 잔 하게(喫茶去)”를 경봉 스님이 재창조한 선어(禪語)다. 

 

 효당은 일제강점기에 끊긴 한국 차도(茶道)의 명맥을 다시 살려낸 일등 공신이다. 당시 다솔사에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차인들의 발길로 일주문 문턱이 닳았다. 만년에는 다솔사에 차밭을 일구고 차 연구에만 전념했다. 효당을 따랐던 제자들이 지금 한국 차문화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효당은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가 등 다양한 모습으로 일생을 살았지만 대처승이었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효당의 옛 제자들인 목정배 교수, 김상현 교수, 전보삼 교수, 오윤덕 변호사, 서도가 변창헌 등이 효당사상연구회 결성해 펴낸 책이 이번에 나온 <효당 최범술 문집>이다. 제1권은 원효 스님 등에 관한 학술논문과 신문·잡지 등에 쓴 기고문, 국제신보에 연재했던 자서전 등을 모았다. 제2권은 불교를 쉽게 풀이한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차도의 역사와 특징을 설명한 ‘한국차생활사’ ‘한국의 차도’ 등 생전에 간행했던 단행본을 수록했다. 제3권은 효당 일대기와 제자들의 추모 글을 실었다.


 명정 스님은 1970년 전후 다솔사에 묵으면서 효당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그때 다솔사에는 효당이 직접 심어놓은 편백나무와 차나무가 무성했다고 한다. 명정 스님은 다도를 엄격하게 지키는 효당에게 “바쁜데 뭐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 했다가, “바쁘기는 뭐가 바빠. 공연히 바쁠 것이 없는데 지가 만들어서 바쁜 것이지” 하는 핀잔만 들었단다. 차를 앞에두고 내놓는 말 한마디가 그대로 선문답이다. 명정 스님은 부산의 효당, 육천, 금당, 향파라는 호를 쓰는 국내 최고 노다선(老茶仙)들이 서예가 청남 오제봉 선생의 서실에서 연 차모임을 가장 아름다운 차회(茶會)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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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종 책 <마음살림> 

'전설의 차인' 효당 최범술 

 


 

 “차는 우리 몸을 축이는 게 아니라 영혼에 점화하는 것”이라는 명정 스님은 운수객으로 선방을 다닐 때는 걸망 속에 작은 차관(茶罐)과 찻잔을 꼭 챙겨 넣었다고 한다. 고은 시인은 “그 헌헌장부의 운수행각에도 감히 따를 자 드물거늘 하물며 그의 벼랑 끝에 나앉은 차 한 잔의 위엄이 능히 천 리 밖에 닿아 있다”며 명정 스님을 “다걸(茶傑)”로 추켜세웠다.

 

 “나는 공부한 게 없어. 좌복에 앉아 몇 날 며칠 잠도 안자고 ‘요거’ 생각만 하고, ‘요거’ 공부만 했어.” 스님은 세속에서 ‘여자 친구’를 속되게 이를 때 쓰는 것처럼 새끼손가락을 펴들었다. 하지만 그 손가락에 속으면 안된다. 불교 전문용어로 '격외의 함정'일 수 있다.

 
 20년 넘는 세월 동안 경봉 스님을 곁에서 모신 명정 스님은, 또 다시 30년을 삼소굴 곁 원광재(원광은 경봉 스님 법호)를 지키고 있다.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쓰디 쓴 차를 따라주며 욕설과 홍소가 난무하는 무애행으로 상식으로 가득찬 머리통을 사정없이 두들겨팬다.


(이 이야기는 명정 스님이 차와 선은 한 가지 맛(茶禪一味)이라는 깊은 뜻을 전하기 위해 펴낸 에세이집 <차 이야기 선이야기>와 지난해 내가 쓴 <마음살림>에도 일부 들어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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