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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픽업 아티스트

by 김석종 2014. 11. 28.

 

[여적]픽업 아티스트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사랑의 기교>는 일종의 연애지침서다. 남자가 사랑을 얻으려면 외모에 신경을 쓰고, 선물과 편지를 보내고, 달콤한 말을 속삭이는 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요즘의 구애와 다를 바 없다. 오비디우스는 헤라에게 거짓 맹세를 남발하던 제우스, 달변으로 바다의 여신들 마음을 뒤흔든 오디세우스를 ‘사랑의 기교’의 최고봉으로 칭송했다. 카사노바는 오비디우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희대의 바람둥이였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은 제목과 달리 인간 존재의 문제를 사랑으로 설명한 책이다. 프롬에게 사랑이란 상대방의 생활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 관심,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며 개성을 존중할 줄 아는 태도, 책임을 지는 의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연애에도 교육과 기술이 필요한 시대가 도래한 모양이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연애코치’를 신규 직업으로 등록했다. 이성교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조언을 해주는 직업이다.

하지만 요즘 연애코치는 아마추어에 속한다고 한다. ‘픽업 아티스트’라는 한 수 위의 전문가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전문적으로 유혹하는, 이른바 ‘작업의 고수’들을 그렇게 부른단다. 이들이 운영하는 학원도 성업 중이라고 한다. 거리에서 여성을 유혹하는 헌팅이론, 나이트클럽에서 이성을 유혹하는 클럽이론, 즉석 만남에서 잠자리까지 이르는 홈런이론 등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이미 케이블 TV 등에 출연해 스타 대접을 받거나 <유혹의 기술> <미친 연애> 등 베스트셀러 저자가 된 이들까지 나왔다.

이번에는 줄리엔 블랑이라는 유명 미국인 픽업 아티스트의 한국 방문 계획 때문에 한바탕 소동을 빚었다. 그는 여성을 협박하거나 고립시켜 통제하라는 황당한 비법을 알려주거나 성희롱하는 장면을 공개하는 등 국제적으로 비난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결국 여성단체와 누리꾼들의 반발로 입국은 취소됐다. 픽업 아티스트에게 사랑은 ‘게임’이고, 성관계는 게임의 ‘최종 미션’일 뿐이다. 문제는 이런 ‘속성 유혹법’에는 최소한의 윤리 의식이나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점이다. 이쯤되면 ‘사랑의 기술’은 커녕 인간에 대한 ‘폭력’에 더 가깝다.2014.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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