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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사진 신부

by 김석종 2014. 11. 28.

 

 

[여적]사진 신부

우리나라는 농촌 노총각과 외국 처녀 간 결혼이 늘어나면서 다문화사회가 됐다. 처음에는 중국 옌볜의 교포 처녀를 짝으로 맞아들이다가 점차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로 확대됐다. 이들을 맺어주는 전문 중매업소도 성업 중이다. 중매쟁이의 말만 믿고 속아서 한국에 온 여성들도 많다.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며 사는 다문화 여성들의 딱한 사정이 국제적인 인권문제가 되기도 했다.

이런 식의 상업 중매인이 100년 전에도 있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하와이 이민1세와 한국 처녀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사진 중매다. 당시 나이 어린 처녀들은 생면부지의 남자 사진 한 장만을 들고 태평양을 건넜다. 이렇게 결혼한 여성들을 ‘사진신부(Picture-Bride)’라고 부른다. 미국 작가 앨런 브렌너트의 <사진신부 진이>는 하와이 사진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하와이에서 만난 남편은 사진에서 본 늠름한 사람이 아니었고, 중매쟁이의 말처럼 부자도 아니었다. 부유하기는커녕 음주와 도박을 일삼았고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기까지 했다.” 하지만 소설 속 진이는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독립적이며 진취적인 여성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한다. 이런 이야기는 하와이 이민 1세들에게 흔한 사연이라고 한다.

1910년부터 1924년 사이에 하와이에 들어온 사진신부는 1000명이 넘는다. 대부분 소설 속 진이 같은 상황을 만나지만 결혼을 파기하고 귀국할 순 없었다. 모든 경비를 신랑감이 부담했으므로 신부들은 거의 무일푼이었다. 그런 사진신부 중 한 명인 천연희씨(1896~1997)의 유품이 100년 만에 고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이다.

천씨는 경남 진주 출신으로 20세인 1915년 사진신부로 미국에 건너가 농장 노동자 옷 세탁 등 온갖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렸다고 한다. 그가 자필로 남긴 자전적 기록, 자신의 삶을 구술한 녹음 테이프, 당시 여권 등 자료와 유품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기증했다는 것이다. 사진신부 스스로 삶의 흔적을 모은 귀한 자료이니 초기 한인 이민사를 세밀하게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 한국 이민 통사(痛史)와 사진신부의 애환을 아로새기는 기념물이자 연구자료가 됐으면 한다. 조국을 떠난 한인들의 슬픈 디아스포라를 잊어서는 안된다.2014.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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