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오시. 고레카라가 쇼부다!(좋아. 지금부터가 승부다).” 영화 <역도산>에서 한국 출신 일본 프로레슬러 역도산은 이렇게 외친다. 하지만 곧바로 도쿄 도심의 나이트클럽에서 사소한 말다툼 끝에 야쿠자의 칼에 맞아 허망하게 숨진다. 1963년, 역도산의 나이 40세 때였다.
박치기 왕 김일, 왕주걱턱 안토니오 이노키, 그리고 괴력의 거구 자이언트 바바는 ‘역도산 3대 제자’로 불렸다. 이들은 흑백 텔레비전 시대인 1970년대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명승부를 펼쳐 인기를 끌었다. 한국 경기에서 승자는 늘 김일이었다. 이노키는 김일의 박치기를 맞고도 끈질기게 일어나는 징글징글한 ‘악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나중에 턱수염 레슬러 장영철이 “프로레슬링은 쇼”라고 폭로하면서 한국에서 레슬링의 인기는 순식간에 끝장났다.
이노키는 일본에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와 대단한 쇼맨십으로 전성기를 이어갔다. 이노키라면 많은 사람들이 1976년 프로복싱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 벌인 이종격투기를 떠올릴 것이다. ‘세기의 대결’이라고 떠들썩했던 경기는 이노키가 누운 채 방어만 하면서 ‘세기의 졸전’이 됐다.
하지만 알리와 이노키의 쇼맨십만은 탁월했다. 알리 왈, “누워서 돈 버는 놈은 창녀하고 이노키밖에 없다.” 그러자 이노키는 “누워있는 창녀 앞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놈”이라고 응수했다. 이 경기에서 엔터테이너 이노키를 보여주는 일화가 더 있다. 경기를 앞두고 사진을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할 때는 느닷없이 진짜 연수베기(엔즈이기리)를 날려 알리를 쓰러뜨린 것이다.
연수는 척수 윗부분 뒷목에 있는 급소. 뒤통수를 발차기로 공격하는 연수베기는 이노키가 직접 개발해낸 필살의 주특기다. 연수베기와 팔 십자꺾기 등으로 진심으로 죽일듯이 살벌하게 퍼붓는 공격은 이노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요즘 종합격투기 선수들에게 “프로레슬링은 진짜 승부다”라는 이노키의 투혼은 ‘이노키즘’으로 불린다.
브라질 이민 가정 출신의 이노키는 프로레슬링을 통해 부와 명예를 얻었고, 이를 발판으로 1989년에는 스포츠평화당을 창당해 참의원(국회의원)이 됐다. 그러나 자신이 설립한 신일본프로레슬링 횡령사건, 정치자금법위반, 세금미납, 여성문제 등 갖은 추문에 휘말리며 재선에 실패했다. 그는 ‘괴짜가족’등 일본의 만화에서도 주로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 안가리는 비정한 캐릭터로 등장한다.
정계를 떠난 이노키는 “스승 역도산이 말한 ‘승부’, 그 마지막 꿈이 고향에서의 경기였다”며 북한으로 눈을 돌렸다. 역도산의 고향은 함경남도. 김일성은 '력도산은 민족의 영웅’이라고 추켜세웠다. 런 배경 덕에 역도산의 딸 김영숙은 북한 내 체육계 유력인사가 됐다.
이노키는 1995년 평양에서 미국의 유명 격투기 선수 릭 플레어와 경기를 성사시켰다. 그 후 30여차례나 북한을 방문했다. 지난해 원조 극우 정치인이자 ‘위안부 망언’ 주인공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이끄는 일본유신회 소속으로 참의원 의원에 당선됐다.
이노키는 대북활동을 꾸준히 펼쳐온 일본 내 대표적인 친북 인사다. 지난해말 참의원 회기중 무단으로 방북해 참의원에서 등원 정지 징계를 받기도 했다. 최근 납북 일본인 문제 등 북·일관계가 급격하게 호전된 데는 이노키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그 이노키가 또 북한을 방문 중이다. 오는 8월에는 평양에서 국제 프로레슬링 페스티벌을 개최할 예정이란다. 이제 ‘악역’ 이노키의 '뒤통수 공격'을 박치기 한 방으로 때려눕히던 김일은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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