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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마른장마

by 김석종 2014. 7. 17.

 

짜증나는 마른장마에 ‘성군’ 탕왕의 ‘정치 단비’를 생각한다.

 

[여적]마른장마
이문구 소설 ‘우리동네 김씨’는 오랜 가뭄으로 논이 말라가자 꾀를 낸 ‘김씨’가 남의 논으로 가는 저수지 물을 몰래 퍼올리다 벌어지는 사건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과거 가뭄이 들면 농촌에서는 제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이웃 간에 욕지거리와 멱살잡이를 하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가뭄이 계속되면서 저수지 바닥이 거북등처럼 쩍쩍 갈라진 사진이 신문에 실렸다. 장마철인데도 제대로 비가 오지 않아 논밭의 작물이 다 말라죽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장마철에도 비가 오지 않는 것을 ‘마른장마’라고 한다.

 
마른장마라는 말은 ‘비 오는 달밤’이나 ‘월남 스키부대’만큼이나 모순이고 난센스다. 문학작품에서는 이런 역설이 의미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가 공선옥은 ‘비오는 달밤’이라는 단편소설을 썼고, 시인 유치환은 ‘깃발’을 두고 ‘소리없는 아우성’이라는 빼어난 절창을 남겼다.

 

기상학자들은 최근 한반도에 마른장마가 늘어난 원인을 지구온난화와 엘니뇨에서 찾는다. 이제 우리나라 여름철은 아열대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며 장마라는 용어 대신 여름철 전체를 ‘우기’로 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렇게 비가 오지 않으면 우기라는 말도 어색할 것 같다.

 

옛날에는 가뭄을 하늘이 내리는 벌로 여겨 기우제를 지내는 일이 많았다. 중국 역사에서는 은나라 탕 임금 때의 7년 가뭄과 기우제가 유명하다. 탕왕은 기우제를 통해 여섯 가지를 스스로 질문하며 통절하게 반성하고 자책했다.

 
‘정치에 절도가 없었습니까.’

‘백성을 지나치게 괴롭혔습니까.’

‘궁궐이 사치스러웠습니까.’

‘여자들의 치맛바람이 심합니까’

‘뇌물이 성행합니까.’

‘아첨하는 사람이 들끓습니까.’
 
이를 탕왕의 육사자책(六事自責)이라 한다. 그러자 구름이 몰려오고 비가 쏟아졌다고 한다. ‘7년 가뭄에 단비를 만난 기쁨(七年大旱逢甘雨)’이라는 말이 그때 생겼다. 고려 선종도 가뭄이 크게 들자 만조백관을 거느리고 탕왕과 똑같이 육사자책의 기도를 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나온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가뭄에 강바닥이 드러나면 위기지만 묵은 오물을 청소할 수 있는 기회”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참에 탕왕 같은 국가혁신 기우제를 올리면 어떨까. 마른장마에 하도 더워서 한번 해본 생각이다.                                                                        김석종 논설위원

/경향 2014.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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