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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쌀이, 밥이, 똥이 하늘이다.

by 김석종 2014. 9. 25.

 쌀-밥이 하늘이고 똥이 밥인 이야기 

 

 

          

 

 

   1980년대 초반 감옥에서 막 나온 김지하가 후배 민중가수 김민기에게 말했다. “밥이 하늘이다.” 김민기가 받아쳤다. “똥이 밥이다.” 그러자 김지하가 “아이고, 형님!” 하더란다.
 ‘밥이 하늘’이라는 말은 동학에서 나왔다. 지금은 도농 직거래 운동과 지역 살림 운동을 펼치는 비영리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캐치프레이즈이기도 하다. 한살림은 한국 생명운동의 대부, '원주의 예수'로 불렸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 강원도 원주의 농민들을 모아 만들었다.

 

   김지하, 김민기도 “이 시대 단 한 분의 선생님”이라며 장일순을 따랐다. 문학평론가 김종철은 그의 생명운동을 계승해 환경잡지 ‘녹색평론’을 내고 있다. 가수 홍순관도 장일순의 영향을 받아 ‘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바람과 천둥과 비와 햇살과/외로운 별빛도 그 안에 스몄네/농부의 새벽도 그 안에 숨었네.’

 

 무위당은 수운 최제우를 잇는 동학의 제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의 “만사를 안다는 것은 밥 한 그릇을 아는 데 있다”는 말을 좋아했다. 쌀이 영그는 데는 하늘과 땅과 사람, 그 천지인 삼재(三才)가 모두 참여한다. 그래서 무위당은 ‘나락 한 알 속에 우주가 들어있다’고 했다. 같은 뜻으로 스스로 아호를 ‘좁쌀 한 알’, 즉 일속자(一粟子)라 칭하고 살았다. 동학연구 붐의 진원지가 바로 무위당이었다.

 

 절의 공양간에는 이런 게송이 붙어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마음의 온갖 욕심 버리고/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 알아/보리를 이루고자 공양을 받습니다.” 불교에는 “공양받은 쌀 한 톨을 흘리면 지장보살이 지옥문 앞에서 그 쌀 한 톨이 썩을 때까지 피눈물을 흘린다”는 말이 전해진다. 공양미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의미다. 옛날 스님들은 밥풀 하나 쌀 한톨도 함부로 했다가는 불호령을 내렸다.

 

 충북 청원군에서 발굴된 구석기 시대 ‘소로리 볍씨’는 탄소측정 결과 1만5000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라고 한다. 논농사를 지은 논 유적도 많다. 물(水)을 담은 밭(田), 즉 논 답(畓)자는 중국에는 없는 한자라고 한다. 재야학자들은 동이족이 만든 한자라고 본다. 그만큼 우리나라 벼농사의 역사는 오래 됐다. 

 

 쌀은 농민의 정성으로 짓는 농사다. 쌀을 수확하기까지 여든여덟 번 농부의 손길이 간다고 한다. 한자의 ‘쌀 미(米)’자가 바로 팔십팔(八十八)을 형상화한 것이란다. 여든여덟 살을 미수(米壽)라고 하는 이유다. 쌀 한 톨의 무게가 일곱 근에 이른다는 일미칠근(一米七斤)이라는 말도 쓴다. 기운을 뜻하는 기(氣)자, 정신을 뜻하는 정(精)자에는 미(米)자가 들어있다. 기자는 쌀로 밥을 지을 때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의 형상이다. 정자는 쌀알의 푸른 빛이 감돌도록 깨끗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사람의 기운이나 정신이 모두 쌀에서 비롯된다는 뜻일까.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한다. 한국에서 쌀은 음식, 식생활 수단 이상이다. 하늘과 땅의 순환과 농사시기를 맞춘 것이 24절기다. 정월 대보름, 제사, 한가위 등 우리 세시풍속과 민속문화의 상당수가 쌀농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조상들은 쌀에도 생명과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어 신주단지 속에도 쌀을 모셨다. 만석꾼, 천석꾼 등 쌀생산량은 부의 기준이었다. 농가에서 쓰는 각종 도구도 볏짚을 써서 만들었다.

 

 절에서 끼니때마다 쌀이 흘러나왔는데 스님이 욕심을 내 구멍을 쑤셨더니 쌀이 끊겼다는 전설은 전국에 퍼져 있다. 욕심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은 겸손을 가르친다.

 

 ‘농업은 생명창고’라는 말은 처음 쓴 이는 매헌 윤봉길이다. 윤 의사는 <농민독본>에서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은 결단코 묵은 문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억만년이 가고 또 가도 변할 수 없는 대진리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요즘은 식량안보, 식량주권이라는 말도 쓴다.

 

 우리 민족은 오랫동안 배고픔에 시달려왔다. 춘궁기 보릿고개는 그 상징이기도 했다. 조정은 춘궁기에 관청에서 쌀을 꿔주고 가을에 돌려 받는 빈민 구제책을 폈다. 반대로 탐관오리의 쌀 수탈은 민란으로 이어졌다. 동학농민운동이 대표적이다. 그러고보니 올해가 동학농민운동 100주년이기도 하다.

 

   1963년 신상옥 감독이 만든 <쌀>은 충남 금산 오지 농민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다. 산골 청년들이 온갖 난관 속에 바위산을 뚫어 금강물을 끌어다가 벼농사를 짓는 줄거리다. 1971년 나온 통일벼는 단군 이래 최대의 숙원이었던 식량부족을 해결했다는 평을 듣는다. 지금은 그 후손 종자들이 개발되어 우리의 밥상을 지키고 있다.

 

   그럼에도 ‘이밥에 고깃국’이 소원인 가난한 이들은 있기 마련이다. 젊은날을 궁핍의 시인으로 살았던 함민복은 ‘긍정적인 밥’에서 이렇게 썼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너무 박하다 싶다가도/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금방 따뜻한 밥이 된다.’ 북한은 아직도 쌀이 부족해 사람이 굶어 죽는다고 한다.


 들판은 지금 황금색 벼이삭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하지만 농민의 땀방울로 키워낸 쌀이 천덕꾸러기가 된 지 오래다. 풍년가를 불러야 할 농민들은 쌀시장 개방 때문에 분노에 차 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농심은 천심’이라는 말이 결코 ‘묵은 문자’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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