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외인구단 손병호의 재림(再臨) 김성근,
그리고 고양 원더스의 좌절
한국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이현세의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프로야구단에서 방출된 선수, 외팔이 코치 등 야구계에서 소외된 인물들이 외딴 섬에서 지옥훈련을 통해 프로야구 사상 무패의 최강팀으로 거듭 태어난다는 줄거리다.
“강한 것은 아름답다.” 만화에서 처절하고도 냉혹한 조련으로 최강팀을 만들어낸 손병호 감독이 한 말이다. 까치 오혜성, 백두산, 나경도, 하극상, 최관, 조상구, 배도협 등은 지옥훈련을 떠나기 전 감독에게 묻는다. “우리가 살아서 돌아오면 무엇을 줄 수 있습니까.” “최소한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고 살게 해주겠다.”
현실 속 공포의 외인구단으로 불리는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가 2011년 12월 출범했다. 그 중심에 ‘괴짜 청년 재벌’ 허민 구단주와 ‘조련의 명수’로 불리는 ‘야신(野神)’ 김성근 감독이 있다. 김 감독은 비주류의 고단함과 냉정한 승부사 기질, 그리고 절대 굽히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에서 만화 속 손병호 감독을 빼닮았다.
‘마초’ 손병호 감독은 재일교포 신분으로 일본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다가 한국에 온다. 기자는 “외인구단 선수들은 짐승이며 손감독은 사육사”라는 글을 쓴다. 손 감독은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다음 시즌부턴 외인구단 선수들이 각자 다른 팀으로 흩어져 한국 야구계를 발전시켜 달라”는 말을 한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김성근 감독도 재일교포 출신이다. 1982년 OB 베어스의 창단 투수 코치를 시작으로 OB, 태평양, 삼성, 쌍방울, LG 등의 감독을 거쳤다. 한겨울 오대산 극기훈련을 통해 만년 꼴찌팀 태평양과 쌍방울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던 것은 외인구단의 무인도 지옥훈련을 떠올리게 한다. 쌍방울 시절에는 모기업이 재정난에 시달리자 선수들의 숙식 등을 위해 본인의 사비까지 쓰며 노력했다. SK 지휘봉을 잡은 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세 차례의 우승을 이끌었지만 일본식 야구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하지만 손병호 감독처럼 평생 비주류로 냉대를 받으면서도 야인(野人) 기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대한민국 프로 구단에서 가장 많이 쫓겨난 야구 감독으로 불린다. 6개 구단을 거치며 12번을 쫓겨났다. 그럼에도 구단측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선수들의 편에 서서 일관되고 거침없는 행보를 보여준 것도 유명하다.그런 김 감독이 국내 유수의 프로팀을 마다하고 고양 원더스라는, 독립구단의 사령탑을 맡은 것부터 극적이었다. 그야말로 손병호 감독의 재림(再臨) 같았다고 할까.
허 구단주의 인생도 드라마틱하다. 어린 시절 야구선수를 꿈꿨지만 부상으로 야구를 접었다. 그가 서울대에 진학한 것은 선수 출신이 아니어도 야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학교였기 때문이란다. 서울대 야구부에서 뛰면서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졸업 후 친구들과 ‘네오플’이란 벤처회사를 차렸다. 20개 가까운 게임이 줄줄이 망하면서 29세 나이에 30억 원의 빚더미에 올랐다. 2005년 온라인게임 ‘던전 앤 파이터’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인생 대역전 홈런을 터뜨린다.
하지만 돈을 번 뒤에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회사를 3800억 원에 넥슨에 매각하고 돌연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생활 동안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너클볼 투수 필 니크로에게 수백 통의 이메일을 보낸 끝에 너클볼을 배운 것은 유명한 일화다. 지난해에는 미국 독립리그 구단 락랜드 볼더스에 입단, 첫 승을 따내기도 했다.
고양 원더스의 캐치프레이즈는 ‘열정에게 기회를’이다. 프로구단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거나 방출된 선수들이 모였다. 김 감독은 “감독은 아버지다. 늘 강인해야 한다”는 철학대로 선수들을 혹독하게 조련했다. 그는 야구선수 ‘루저’들에게 “피칭머신이 고장 나는지 우리가 먼저 쓰러지는지 어디 한번 해보자”며 꼭두새벽부터 야심한 밤중까지 특유의 지옥훈련으로 선수들을 담금질했다. 열정의 사나이 허 구단주는 매년 30억원이 넘는 돈을 투자해 선수들을 도왔다.
마침내 기적(Wonder)은 일어났다. 선수들이 KBO 퓨처스 팀과의 교류 경기에서 통산 90승25무61패(승률 0.596)의 놀라운 성적을 냈다. 실패의 설움과 재기의 절실함이 그들을 달리게 한 것이다. 물론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지는 못한다. KBO에서 번외경기로 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과연 김성근이었다. 원더스 선수 가운데 무려 22명이 프로구단에 진출했고 1명이 올해 프로지명을 받아 만화 못지않은 놀랍고 짜릿한 반전 스토리를 썼다. 이들은 고양 원더스 홈페이지의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원더스 출신 중 안태영(넥센) 황목치승(LG) 송주호(한화)가 현재 1군에서 활약 중이다. 기적의 야구사관학교에는 ‘도전’ 그 자체의 야구 인생을 살아온 마흔 세 살 최고령 최향남, 일본 히로시마에서 뛰다 방출된 신성현, 미국 등 외국 출신 선수들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 땀을 흘리고 있다.
이처럼 패자부활전의 강렬한 감동을 남긴 고양 원더스가 출범 후 3년 만에 전격 해체를 선언했다. KBO가 성격이 다른 독립구단의 퓨처스리그 정식 편입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 구단들이 허민 구단주와 김성근 감독의 인기에 반감을 가지고 원더스의 열정과 가치를 폄하한 것도 야구단을 해체로 몰고간 이유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야구계의 기득권 세력들이 원더스를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푸대접한 건 사실인듯하다.
허민 구단주와 김 감독의 실험은 ‘절반의 성공’으로 일단 끝났다. 원더스의 느닷없는 해체 결정 소식을 듣고 단장, 코치, 선수들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고양 원더스를 통해 한국 사회에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던 독하디 독한 김 감독도 눈시울을 붉혔단다. 그러면서도 김 감독은 “여기가 끝이 아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기회를 찾아보자. 우리, 좌절하지 말자”라고 끝까지 제자들을 다독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노감독이 <리더는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라는 책에 썼던 한마디가 생각난다. “난, 함께 울어주는 사람이다.” KBO와 고양시, 원더스가 함께 노력해 한국사회에 ‘패자도 다시 설 수 있다’는 희망을 던진 원더스의 해체가 번복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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