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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종이 만난 사람

수도자 시인 이해인 수녀

by 김석종 2011. 4. 26.
요 몇 년 새 우리는 존경하는 ‘어른’들을 많이도 떠나보냈다. 세상에 따뜻한 마음을 전하던 이들도 여럿 세상을 떠났다. 피천득 선생,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박완서 선생, 정채봉 작가,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백, 이태석 신부….

이해인 수녀는 그들의 ‘상주(喪主)’ 노릇을 톡톡히 했다. 언론은 추모의 글을 싣고, 생전의 일화를 듣기 위해 앞다퉈 그를 찾았다. 떠난 이들이 하나같이 수녀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패밀리’였기 때문이다.

이 수녀 또한 수도자 시인답게 맑은 서정과 상처를 어루만지는 위로의 시편들로 오랫동안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았다. 그가 펴낸 시집과 산문집은 지금까지 60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최근 출간한 산문집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도 예외없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몇 달 전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자 “장례 때마다 하도 여기저기 우는 모습이 부각되어서 민망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음에는 “암투병 얘기는 그만했으면 한다”고 하면서 뜸을 들였다.

지난 16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 바닷가에 있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본원에서 마침내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를 만났다. 때마침 부활절(24일)을 1주일 앞둔 ‘사순시기’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리며 참회하고 금욕하는 기간.

땡땡땡 땡땡땡~. 새벽녘 종소리에 맞춰 미사에 참여했다.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검은색 수도복 차림의 수녀들이 한목소리로 올리는 기도소리가 너무나 청아했다. 성경의 시편을 노래하는 수녀 100여명의 합창에 이 수녀의 목소리도 섞였다. 바람이 불 때마다 성당 안으로 라일락 향기가 훅 끼쳤다.

인터뷰는 손님이 머무는 방인 ‘언덕방(言德房)’에서 시작해 그의 사무실이자 집필실인 ‘해인글방’으로 옮겨가며 이루어졌다. 언덕방은 박완서 선생, 장영희 교수, 김점선 화백이 며칠씩 묵었던 바로 그 방이다.

 

부산 금련산 자락, 광안리 바닷가에 있는 성 베네딕도 수녀회 정원을 산책하는 시인 이해인 수녀. “고통을 겪으며 내게 주어진 하루가 전 생애라고 생각하니 사람과 자연을 보는 것이 다 새로워졌다”고 말했다. (사진 서성일 기자)


- 부활절 기간입니다. 오늘 미사에서 묵상한 부활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일상의 삶에서 부활을 연습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해요. 죽음에서 희망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생활과 생각을 바꾸는 겁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못마땅하고 미운 감정이 드는 사람까지 용서하고, 사랑하고, 화해하라는 것이 예수님 부활의 가르침이죠. 그냥 활짝 웃는 것도 부활입니다.”

- 책 제목 ‘꽃이 지고나면 잎이 보이듯이’라는 말에도 부활의 뜻이 담겨 있는 건가요.

“그렇죠. 저기 창밖을 좀 보세요. 개나리, 벚꽃, 살구꽃, 목련꽃 진 자리에 푸른 잎사귀가 확 올라오고 있죠? 때로는 잎도 꽃만큼 아름답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평생 꽃의 영성을 노래했는데, 고통의 과정을 겪고 나서 잎새의 소중함, 잎의 영성을 알게 됐다고 할까.”

수녀는 암투병의 고통,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낸 아픔을 겪은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씩씩하고 쾌활했다. 별것 아닌 농담에도 깔깔 웃었다. ‘명랑수녀’로 ‘명랑투병’을 하고 있다는 ‘자랑’이 빈말이 아닌 듯했다.

수녀는 성당 안에서도 그가 ‘요술가방’이라고 부르는 헝겊 가방을 꼭 들고 다녔다. 가방에는 언제든 사람들에게 선물할 스티커와 메모지, 헝겊 주머니, 그리고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는 작은 수첩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가방은 얼마 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서울의 한 독자가 생전에 선물한 것이다.

“자투리 헝겊들로 크고 작은 가방과 주머니를 만들어 한 번에 100개씩 보내왔어요. 아주 기쁘게 선물을 하면서도 투병 중이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차 한잔하기로 했는데, 끝내 얼굴도 못 봤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따님의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받고 기도했어요. 주머니에 책, 초콜릿, 사탕, CD 같은 것들을 담아 선물하면, 그 사람이 또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담아서 선물하죠. 말하자면 선물이 새끼를 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주머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애틋해요.”

- 정말 마음이 담긴 선물이 계속 이어지는 것을 상상만 해도 흐뭇하네요. 수녀님 선물 품목은 여전히 조개껍질, 스티커 같은 겁니까.

“이 조가비, 돌멩이 참 예쁘지 않아요? 바닷가에 가면 흔하지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훌륭한 선물이 되죠. 받는 사람은 보석이나 되는 것처럼 목걸이를 하고 휴대폰 고리로 쓰기도 해요. 진정한 선물은 돈이 얼마인가보다 따뜻한 마음 한 조각이 깃들어져 있어야 합니다.”

기자에게도 ‘기쁨’이라는 글씨와 예쁜 꽃그림이 그려진 조개껍질, 들꽃으로 곱게 묶어 만든 허브향, 그리고 갖가지 문양의 스티커 책갈피를 선물했다.

- 암치료를 받은 지 3년째인데 건강은 어떤가요.

“항암치료는 다 끝났고, 경과도 좋다고 해요. 3개월에 한 번씩 서울에 가서 검진을 받아요. 제가 이번에 책을 내니까 신문에서 무슨 유서라도 쓴 것처럼 표현하고, 자꾸 암투병만 부각시키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아요. 더 중요한 것은 투병생활을 겪고 세상의 아픈 사람들과 더 깊게 소통하고, 희망을 전할 수 있게 됐다는 건데….”

- 투병 이후에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나 하늘을 보고, 가족을 보고, 풀과 나무와 꽃을 보는 것이 다 새로워졌어요.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암투병으로 ‘고통의 학교’에서 수련받으면서 아픔의 묵상을 통해 얻은 게 참 많아요. 고통이 진주를 만든다는 말을 절감하지요. 전에는 ‘고통도 축복’이라는 말을 추상적으로 했지만 지금은 훨씬 더 공감대가 크죠. 수도자로서 아픈 이들을 절실하게 위로할 수 있어 기쁩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나, 내가 아니면 누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지금, 여기’서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이 중요해요. 다음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어요.”

창밖 수녀원 뜰에서 잡초를 뽑는 수녀들의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수녀가 속한 성 베네딕도 수녀원의 모토는 ‘기도하고 일하라’. 수녀들은 오전 5시에 일어나 하루 다섯 차례씩 성당에 모여 공동기도를 하고 틈틈이 공동작업을 한다. 올해는 한국에 성 베네딕도 수녀원이 문을 연 지 80년이 되는 해다. 이 수녀는 전국의 분원까지 포함한 500명 회원 중에서 원로에 속한다.

-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었던 처음의 결심은 잘 지켜졌나요.

“나는 이웃을 위해서 선한 일을 하고, 맑은 삶을 살겠다는 생각으로 수녀가 됐어요. 그런 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에 스스로 대견하고 항상 감사하죠. 나이가 들고 아픔을 겪은 후에는 수도자로 살아온 기쁨을 더 많이 바라보고 있어요. 수도생활을 쓸쓸하고 경직되고 어두운 중세적 이미지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죠. 그렇지만 꽃들이 피어 있는 것처럼 수녀원의 삶도 기쁘고 따뜻하고 밝고 아름다워요.”

- 먼저 떠난 분들에 대한 슬픔은 많이 가셨나요.

“추억과 그리움은 날마다 새롭지요. 지혜를 구하고 싶어도 그분들이 안 계시니 문득문득 놀라지요. 그동안 떠난 분들의 안식도 빌었지만 저를 위한 기도를 더 많이 한 것 같아요. 가톨릭에는 ‘전구한다’는 말이 있고, ‘성인들의 통공’이라는 말도 있어요. 성인들이 지상에 남은 사람을 위해서 빌어준다는 겁니다. 추기경님께는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서 겸손하고 성실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해요. 어찌보면 우리는 하늘나라를 앞당겨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겁니다. 죽음이 어둡고 칙칙하다고만 생각하지 않아요. 이쪽 강에서 저쪽 강으로 배를 타고 건너는 것, 이 세상과는 다른 정거장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죽음이 밝게 묵상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프기는 하지만, 앞서 간 사람들과 합류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지죠.”

- 훗날 어떤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요.

“떠날 때는 미련없이, 흔연하게, 기쁘게, 동백꽃이 탁 떨어지듯이…. 제가 ‘여정’이라는 시에 썼어요. ‘행복했다고, 고마웠다고, 아름다웠다고…’ 제가 ‘명랑수녀’인데 깔끔하고 쿨하게 가야죠. 하하하.”

- 내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됐으니 벌어들인 인세만도 엄청날 것 같은데요.

“1976년부터 35년 동안 많은 책을 냈고, 독자들이 좋아해주니 그렇겠죠. 그렇지만 수입은 모두 수녀원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나는 통장을 본 일도 없어요. 수녀원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체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나들이를 할 때도 결재를 받아 출장비를 타가요. 수도자로서 물질은 물론 개인의 명예까지도 하느님 몫이니까요.”

- 그야말로 진정한 무소유네요.

“그럼요. 저는 아직까지 신용카드 한 장 없어요. 가진 것이라고는 책과 선물받은 미술품뿐이죠. 그것도 제가 떠나면 모두 공동체에 귀속됩니다. 그러니까 자유롭고 떳떳하죠. 사실은 그런 가난조차도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저는 유명세가 수도생활을 방해할까봐 갈등하고 괴로워했어요. 책이 팔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했다니까요.”

해인글방에는 방을 둘러싼 책장 주변에 신영복 선생이 쓴 ‘평상심(平常心)’ 액자, 김점선 화백의 그림, 이 수녀의 사진들, 그리고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질과 꽃, 크고 작은 선물품, 장식품, 메모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어지럽다. 답장을 써야 할 편지도 수북하다. 해인글방 한편에 있는 편지창고에는 지금까지 받은 수십만통의 편지로 발디딜 틈이 없다.

- 수녀님이 담당하고 있는 ‘문서선교’는 주로 편지 주고받는 일을 하나요.

“초등학생부터 재소자, 장애인, 주부 등 다양한 사람들이 편지로, e메일로 온갖 사연을 보내옵니다. 아픈 사연이 가장 많죠. 그들이 사랑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가능하면 일일이 답장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안 하십니까.

“내가 원칙을 딱 정해놓은 것이 있어요. e메일과 문자 메시지까지. 채팅을 하면 시간을 많이 뺏기고 구도의 길에 방해가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거기에도 절제가 필요하더라고요. 아무리 인터넷 시대라지만 사람들이 편지와 일기를 더 많이 썼으면 좋겠어요. 채팅에 시간 뺏기고, 악플을 달아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안타까워요.”

이해인 수녀는 절망에서 희망으로, 슬픔에서 기쁨으로 생활과 생각을 바꾸는 것도 일상 안에서의 부활이라고 한다 (사진 서성일 기자)

- 요즘 카이스트 학생 등 젊은이들의 자살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어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먼저 모두가 욕심을 줄여야 해요. 최고의 인재를 키우겠다고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것도 욕심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혼자만의 기쁨이나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갖지 못하면 실망하고 절망하죠. 종교가 없더라도 자기 자신을 조용하게 만날 수 있는 명상과 묵상이 필요합니다. <논어> <채근담> <명심보감>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좋아요. 젊은이들이 충동성을 줄이고 영성을 키우도록 국가, 사회가 이끌어야 합니다. 내면의 뜰을 가꾸면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일은 하지 않아요.”

- 종교인들끼리도 싸우는데요.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님이나 법정 스님 같은 어른들이 아쉽죠. 믿음은 달라도 종교가 추구하는 건 똑같습니다. 제 주변에는 다른 종교와 평화롭게 지내는 분들이 훨씬 많아요.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와 얽혀서 종교 간에 싸우는 부분이 더 부각되는 것 같아요.”

수녀는 시 낭송을 아주 좋아한다. 몇 년 전 노영심씨와 함께 CD를 내기도 했다. 전날 밤에는 부산가톨릭회관 소강당에서 열린 가수 김정식씨의 노래공연에 찬조출연해 시를 낭송했다. 김씨는 이 수녀의 시 여러 편을 노래로 만든 성가가수다.

그래서 “시 낭송 목소리가 소녀처럼 맑고 낭랑하다”고 했더니 “내가 낭송을 하면 책 속에 있는 언어들이 막 뛰어나와서 품에 안기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자랑하며 또 까르르 웃었다. 듣던 대로 ‘만년소녀’였다.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시 낭송을 해주는 것도 수녀의 ‘선물 목록’에 들어간다.

- 어떤 마음으로 시를 씁니까.

“한 수도자가 순례의 길 위에서 보고 겪고 느낀 것들을 표현한 상징언어의 기도라고 할까. 항상 이웃에게 작은 위로를 전하는 아름다운 러브레터가 됐으면 해요. 마음을 비우고 절제한다는 점에서 시와 수도생활은 공통점이 있어요. 내 시를 읽고 마음이 정화됐다거나 아름답고 선하게 살고 싶은 열망을 갖게 됐다는 고백을 들으면 아주 기쁘죠. 내 시가 날개를 달고 치유와 위로의 천사 역할을 하는구나 생각해요.”

수녀원 뜰에 벚꽃, 목련꽃이 하얗게 지고 있었다. 꽃 진 자리에 잎새가 피어나고, 산과 들은 이미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수녀는 “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봄날이 통째로 부활의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 이해인 수녀는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소속의 수녀이자 시인이다. 1945년 강원 양구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 3일 만에 받은 세례명이 ‘벨라뎃다’. 서울 창경초, 풍문여중, 성의여고를 졸업했다.

64년 19세 때 수녀원에 입회했다. 68년 첫 서원 때 받은 수도명은 ‘클라우디아’다. 76년 종신서원을 했다. 본명은 이명숙. 가톨릭 잡지에 시를 투고하면서 ‘해인(海仁)’이란 필명을 썼다. 바다(海)와 <논어>에 나오는 인(仁)자를 좋아해서 스스로 지은 이름이다.

4년 전 별세한 어머니는 평생 수도자만큼이나 독실한 신앙생활을 했다. 4남매 중 두 딸이 수녀가 됐다. 열세 살 위인 언니 이인숙 수녀는 경남 밀양의 가르멜 봉쇄수도원에서 엄격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오빠는 이인구 전 서울예대 광고창작과 교수. 항공사, 화장품, 맥주, 음료수 광고 등 숱한 대표작을 남긴 유명 광고인이다. 어머니와 함께 살았던 여동생 경숙씨는 서울 길음동성당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모임인 ‘빈첸시오회’ 활동에 열심이다. 이 수녀는 서울에 갈 때마다 동생집에 있는 어머니의 빈방에 머물며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표지에 ‘좋은 말씀’이라는 글씨가 붙어 있는 주황색 낡은 수첩은 이 수녀의 ‘보물 1호’. 처음 수녀원에 들어갔을 때 언니 수녀가 “착한 수녀가 돼라”며 선물한 조그만 수첩이다. 동생의 수도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글귀들이 수첩 한권에 빽빽이 적혀 있다.

이 수녀는 76년 첫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시작으로 <내 혼에 불을 놓아>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작은 위로> <작은 기쁨> <엄마> <희망은 깨어있네> 등의 시집과 <두레박> <꽃삽> <사랑할 땐 별이 되고>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 <풀꽃 단상> 등 산문집을 냈다. 필리핀 세인트 루이스 대학 영문학과,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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