ㆍ“내년 스콜세계총회 유치… 관광한국 알릴 절호의 기회”
“위하여!” 그가 술잔 부딪치는 시늉을 했다. 에릭 스완슨(Eric M. Swanson·53) 밀레니엄 서울힐튼호텔 총지배인. 최근 세계 최대 민간관광기구인 ‘스콜(SKAL)’의 서울클럽 회장을 맡았다. 한국은 2012년 스콜세계총회(SKAL World Congress) 개최국이다.
그래서 그에게 “스콜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던 것인데, 그의 대답이 좀 느닷없었다. 통역을 겸해 자리를 함께한 이 호텔 김정기 상무가 “스콜은 행복, 건강, 우정을 뜻하는 스칸디나비아어로 북유럽에서 즐겨 쓰는 건배 구호”라고 설명해줬다. 스콜 모임에서는 항상 “스콜!”을 외치며 축배를 든다고 한다. 그의 유머와 과장된 제스처 때문에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그를 만난 이유는 또 있다. 푸른 눈에 서양인 얼굴이지만 한국계 미국인이다. 어머니는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학예관을 지낸 고(故) 조창수 여사(1925~2009). 고종과 순종 옥새 등 국보급 문화재의 한국 반환을 이끌어낸 유명한 민속학자다. 탈북 귀환 국군포로 1호 조창호 예비역 중위(2006년 별세)는 그의 외삼촌이다. 인터뷰는 서울 남대문로 힐튼호텔 1층, 집무실에서 이루어졌다.
성공한 ‘호텔리어’인 한국계 미국인 에릭 스완슨. 어머니는 유명한 민속학자인 조창수, 외삼촌은 탈북 국군포로 1호인 조창호씨다. 그는 “나머지 인생 동안 한국 관광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 스콜은 일반인에게는 생소하다. 어떤 단체인가.
“스콜(‘SKAL’이라고 쓰고 ‘스콜’로 읽는다)클럽은 1934년에 설립돼 7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90여개국에 500개 클럽, 2만5000여명의 회원이 있다. 회원은 전 세계 유수의 항공사, 호텔, 여행사, 리조트의 임원 등 모두 관광업계 실력자들이다. 기본적으로 친목 모임이지만 관광산업의 공통 현안이나 주제에 대해 토론하고 실행한다. 국내에는 69년 시작된 서울클럽과 인천클럽이 있고, 현재 123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스콜세계총회 유치는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고 한다. 한국은 2년 전부터 스콜 회원들과 한국관광공사, 인천관광공사(인천시), 서울관광마케팅(서울시) 등이 힘을 합쳐 조직적인 유치활동을 펼쳤다. 작년 10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개최지 최종 결정 투표에서 서울·인천은 아일랜드 ‘칼라니(Kallarney)’를 137 대 77로 눌렀다. 그는 “지난해까지 서울클럽 부회장 겸 세계총회 유치위원장으로 유치활동에 열심히 기여했다”고 했다.
- 그렇지만 제주도 세계7대자연경관 신청 투표 같은 행사만큼 관심을 끌지 못하는 것 같다. 스콜세계총회의 한국 유치가 어떤 의미가 있나.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이나 동계올림픽 유치 못지않게 뜻깊은 행사다. 총회에는 세계 관광업계 리더 1000~1500명이 참가한다. 세계적으로 연결돼 있는 관광업계에서 그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그들에게 관광과 문화 등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세일즈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참가자들이 행사 전후로 한국의 여러 곳을 관광하기 때문에 경제적 부가가치도 높다.”
- 어떤 행사를 준비하고 있나.
“세계총회는 내년 10월2일부터 7일까지 6일간 서울과 인천에서 열린다. 호텔, 컨벤션센터, 그리고 경복궁 등에서 회의와 문화행사, 파티 등을 연다. 정부와 지자체, 회원들이 힘을 합쳐 역대 스콜총회 중 가장 많은 회원이 참가하는 기록을 세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스완슨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주한미대사관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1년6개월 만에 한국을 떠나 워싱턴에서 자랐다. 평양이 고향인 어머니는 경기여고와 일본여대를 졸업하고 1948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워싱턴주립대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5살 연하의 스웨덴계 미국인 대학교수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가까워졌다. 1954년 결혼해 1남1녀를 낳았다. 부모는 그가 태어날 무렵 이혼했다.
- 한국과의 인연에 비해 한국어가 서툰 것 같다.
“ ‘조금 알아요.’ 어머니에게 배워서 글은 읽을 수 있고, 생활에 필요한 쉬운 말은 알아듣는다. 인터뷰 질문이나 뉴스는 아직 좀 어렵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가 “부탁드립니다, 잘 지냈어요, 식사했어요, 보고 싶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피곤해요, 배불러요, 정확해요, 골프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날씨가 좋아요”라고 한국말을 쏟아냈다.
- 어릴 때 어떤 아이였나.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착한 아이도 아니었다. 어머니는 한국식으로 엄하게 가정교육을 시켰다. 집에서는 항상 영어로 대화했는데, 화가 나면 한국말로 ‘얘가 참~’ 하면서 휘초리로 ‘짝, 짝, 짝’ 때리셨다(웃음). 어머니는 학교 성적이 나쁜 것은 용서해도 거짓말하면 용서하지 않으셨다.”
스완슨은 고교 졸업 후 미국해안경비대에 입대해 4년 동안 군생활을 했다. 제대 후인 86년 호텔에 근무하던 누나의 추천으로 미국 워싱턴의 리츠칼튼호텔에서 일했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본격적으로 ‘호텔리어’가 됐다.
그는 미국 버지니아 맥린 리츠칼튼, 이집트 샴엘세이크, 미국 플로리다 마이애미 코코넛 글로브 리츠칼튼, 인도 리라 팰리스 켐핀스키, 베이징 마르코폴로 파크사이드 호텔 등 국제적 호텔체인에서 부총지배인, 총지배인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았다. 96년부터 3년 동안 서울리츠칼튼호텔 부총지배인으로 근무했다. 2006년 7월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밀레니엄힐튼호텔의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성공한 호텔리어인 그를 ‘호텔업계의 하인스 워드(혼혈 미식축구 선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성장기에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세계 각국의 호텔에서 근무하면서부터는 오히려 동서양의 정서에 대한 이해와 인간관계가 비즈니스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 당신에게 한국은 어떤 나라인가.
“고향이다. 미국에서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지만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의 음식과 문화, 한국인의 정서까지도 낯설지 않고 친숙하다. 내 몸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 당신이 느끼는 한국의 매력은 무엇인가.
“음식문화, 음주문화다. 친구들과 함께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상추에 삼겹살과 함께 된장, 고추, 마늘을 싸먹으면서 마음과 마음, ‘정’을 나누는 문화가 특이하고 매력적이다. ‘평양냉면’ ‘된장찌개’ ‘갈비탕’ ‘매운탕’ ‘감자탕’ ‘닭도리탕’ ‘잡채’…. 다 좋아한다. 못먹는 것을 대는 것이 빠르다. ‘족발’ ‘보신탕’ 그리고 ‘홍어’는 냄새가 심해서 못먹는다.”
그가 코를 감싸쥐는 시늉을 했다. 주량은 소주 두세병쯤. 예전에는 ‘폭탄주’도 잘 마셨는데 요즘은 끊었다고 한다. 그는 “일도 열심히, 술도 열심히, 주거니 받거니…”라고 말하면서 신이 났다. 직원들과 노래방에도 자주 간다고 했다. “18번은 ‘장녹수’….” 김 상무가 “기타를 잘 치고 노래실력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자 흥얼흥얼 노래를 시작했다. “가는 세월 바람 타고 흘러가는 저 구름아….” 그의 익살에 또 한 차례 웃음이 터졌다.
- 성격이 굉장히 낙천적인 것 같다.
“내가 외모는 좀 딱딱해보이지만 성격은 반대다. 유머 감각이 개그맨 수준이다. 나중에 개그 프로그램에 한번 출연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일에 대해서는 매우 진지하다.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주중에는 꽉 짜인 스케줄에 따라 움직인다.”
그는 호텔의 방 하나를 아파트로 개조해 살고 있다. 매일 새벽 호텔 헬스클럽에서 1시간 이상 땀을 흘린다. 겨울에는 스키를 즐긴다. 골프도 좋아하는데 잘 치지는 못한다고 했다. 그는 “영남이형(가수 조영남)이 ‘너처럼 멀리건(mulligan) 많이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했다”며 깔깔 웃었다. ‘영남이형’과는 20년 전부터 가족끼리도 잘 알고 지내는 사이다.
- 한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인가.
“호텔이 있는 남산이 나의 산책코스다. 틈날 때마다 남산에 올라가 멋진 서울시내를 내려다본다. 남산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면 머리가 맑아진다. 제주도에서 골프를 치고 ‘똥돼지’나 ‘전복’ 등 해산물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는 것도 즐겁다.”
그는 최근 몇년 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2007년엔 누나, 2009년에는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서울리츠칼튼호텔 근무 시절 결혼한 한국인 아내와는 지난해 헤어졌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패션사진작가인 아내와 일 때문에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 탓이 컸다고 한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 현대미술, ‘역술’에도 관심이 많다.
“해마다 ‘토정비결’을 보고, 점쟁이도 찾아간다. 굉장히 정확하다. 올해 애정운은 ‘왔다, 갔다’…. 건강은 좋고 일은 ‘운수대통’이라고 했다. 사실 올해는 좋은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 혼자 지내려면 외롭기도 할 것 같다.
“ ‘괜찮아요.’ 아주 능력있는 ‘돌싱’이라고 써주기 바란다. 때로는 중고가 새 것보다 낫다고…. 키 182㎝, 몸무게 77㎏, 이 정도면 에이 플러스 아닌가. 그런데 ‘대머리’여서 좀 아쉽다(웃음). 자기 일에 충실하고, 서로의 노후를 돌봐 줄 수 있는 한국 여성을 만나고 싶다. 돈이나 성공보다 가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당신에게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자식을 위해 사셨다. 올바른 지침을 주고,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신 내 인생의 멘토다. 어머니는 내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호텔에서 성공한 모습을 자랑스러워하셨다. 무엇보다도 어머니는 한국 문화재를 사랑하고 아끼셨다.”
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2년 동안 서울에서 함께 지냈다. 매일 대화 상대가 돼주고, 목욕도 시켜줬다고 한다. 그는 “마지막을 편안하게 모셨기 때문에 불효했다는 미련을 갖지 않아서 다행”이라며 “나는 마마보이”라고 쓸쓸하게 웃었다.
- 조창호 외삼촌의 마지막은 어땠나.
“알려졌는지 모르겠는데, 삼촌이 탈북할 때 어머니가 금전적인 것을 포함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어머니는 동생을 항상 잊지 못했고, 탈북 후에도 많은 사랑을 베풀었다. 나도 삼촌을 미국과 한국에서 자주 만났다. 삼촌은 결혼하고, 미의회에서 증언하는 등 활동을 하다가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이모들이 많이 슬퍼했다.”
- 어머니 친척들은 자주 만나나.
“이모 네 분이 서울과 일산에 살고 있다. 어머니 제사와 명절에 모인다. 그분들은 나를 한국 이름으로 ‘조장군’이라고 부른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 친척들이 있어서 내가 늘 미안하다.”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은 그가 총지배인으로 취임한 뒤 매년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고 한다. 지난해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900억원을 달성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내년 말까지 2년 더 계약을 연장했다.
- 호텔리어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가.
“공장에서는 한 가지 제품만 찍어내면 된다. ‘똑같애, 똑같애, 똑같애요.’ 그런데 호텔에서는 커피 한 잔도 ‘진하게, 약하게, 프림 넣고, 설탕 빼고’ 하는 식으로 다 취향이 다르다. 호텔은 사람들이 비즈니스로, 또는 개인적인 여흥을 위해 찾는 곳이다. 날마다 열리는 색다른 문화 이벤트, 파티, 식사, 프로모션의 세세한 부분에 적응하고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 특급호텔 총지배인은 호텔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꿈이다. 호텔 경영자로 성공한 남다른 비결이 있나.
“일에 대한 열정과 강력한 추진력이다. 항상 능력을 100% 발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방향이 정해지면 머뭇대지 않는다. 빠르게 생각하고 빠르게 결정한다. 그러면 당연히 결과가 좋다. 나는 총지배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스스로 중간 간부나 임원 레벨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업무에 대한 성과를 인정받고, 총지배인으로 발탁됐다.”
- 당신이 생각하는 CEO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나는 다섯가지를 호텔경영의 핵심가치(Core Value)로 정리해두고 있다. 이기고자 하는 의지(Will to Win), 고객과 직원 중심(Customer & Employee Focus), 혁신과 창의성(Innovation and Creativity), 의사소통의 개방성(Openness in communication), 팀워크(Teanwork)다.”(길게 설명했지만 생략한다.)
- 관광 전문가로서 한국에 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은 지금 그대로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다. 그런데 너무 ‘개발’에 매달린다. 또 ‘브랜드 코리아’의 스토리가 부족하고 정책에 일관성이 없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다. 관광객 수에만 연연하는 것도 문제다.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질과 가치에 집중했으면 한다.”
- 한식세계화를 말하는데, 한식이 국제 경쟁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오리지널(original)과 어센틱(authentic)이 중요하다. 외국인 입맛에 맞추겠다고 고유의 맛과 조리법을 바꾸면 실패한다. ‘삼계탕’은 삼계탕만의 재료와 전통과 맛이 있다.”
-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호텔 커리어를 한국에서 마치고 싶다. 은퇴 후에는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학생들에게 호텔경영과 관광분야를 가르치고 싶다. 나의 나머지 인생을 한국에서 마치길 원한다. 어머니가 문화재를 통해 한국 사랑을 실천했던 것처럼 나도 스콜세계총회를 계기로 한국 관광의 위상을 높이는 민간 외교관 역할을 하고 싶다.”
그는 스콜 서울클럽 회장으로서 관광업계의 젊은 인재들을 회원으로 유치하기 위해 ‘영 스콜(Young SKAL)’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 스완슨 어머니 故 조창수 여사는
탈북 국군포로 1호 조창호씨 누나
스미스소니언박물관 학예관 지내
국보급 문화재 국내 반환 큰 기여
에릭 스완슨은 2년 전 서울시장에게 받은 ‘서울시 명예시민증’과 지난해 3월 어머니 대신 그가 수상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장’을 집무실의 책장 맨 윗자리에 자랑스럽게 ‘모셔두고’ 있다.
어머니 조창수 여사는 1965년부터 44년 동안 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아시아 담당 학예관으로 근무했다. 학술자료집 <한국 인류학에 관한 문헌 목록> <은둔의 나라 민족지학>을 발표하는 등 민속학자로도 활동했다. 이 박물관에 소장된 대한제국 초기 수집품들을 소개한 해설서 <근대 한국민속·예술품 도록> 등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특히 87년 미국에 밀반출된 옥새 등 93점의 국보급 문화재의 국내 반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97년부터 세 차례의 한국전시회를 주선했으며, 2007년 스미스소니언 ‘한국관’ 개관에도 앞장섰다. 스미스소니언은 한국 관련 유물 4000여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국실은 이 박물관 최초의 국가단위 상설 독립관이다. 그는 또 평생 모은 돈 4억원을 박물관 아시아프로그램 기금으로 기부했다.
스완슨은 “한국을 위해 큰일을 하신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며 “앞으로 어머니의 업적을 알리는 기념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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