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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수상 거부

by 김석종 2015. 2. 3.

[여적]수상 거부

모든 칭찬 중에서도 최고는 상(賞)일 것이다. 하지만 대단히 권위있는 상조차 서슴없이 걷어차는 이들도 꽤 많다. 때로는 주례사처럼 뻔한 수상 소감보다 수상 거부 소감이 더 가슴을 친다. 말런 브랜도는 영화 <대부>로 1973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그는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원주민을 인종차별적으로 묘사한다”며 인디언 공주를 대신 시상식장에 보내 수상 거부 연설문을 읽게 했다. “우리는 200년 동안 그들에게 거짓말을 했으며, 그들을 속여 그들의 땅에서 쫓아냈고….” 평론가들은 이를 “모든 사람을 흔든 브랜도의 명연기”라고 평했다.

사르트르는 노벨문학상을 거부하면서 노벨상의 서양 편중과 작가의 독립성 침해를 이유로 들었다. 베트남 전쟁 종결 당시 총리였던 레둑토는 “조국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며 노벨평화상을 거부했다. 자메이카계 영국시인 벤저민 제파니아는 “제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화가 난다”면서 대영제국훈장을 외면했다. 러시아 천재 수학자 그레고리 페렐만은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필즈상 수상을 거부했다.

상과 훈장을 두고 늘 뒷말과 잡음이 나오는 우리나라에서도 신념을 지키기 위해 수상을 거절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는 5공화국 인사와 함께 훈장을 받을 수 없다며 거절했다. 감사원 비리를 고발한 이문옥씨는 정부 훈장을 받지 않았다. 미얀마 출신 이주노동자 소모뚜는 “우리가 원하는 건 상이 아니라 인권”이라며 인권상을 버렸다.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은 동인문학상 후보가 되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요즘 프랑스 경제학자 피케티의 훈장 거부와 배우 최민수의 연기상 수상 거부가 화제다. 피케티는 “누가 존경할 만한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게 정부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프랑스 최고 권위의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거부했다. 그는 친구였던 올랑드가 부유세 등 대선 공약을 줄줄이 후퇴시키자 등을 돌렸다. 최민수는 MBC 연예대상 황금연기상 수상을 거부하면서 “아직도 차가운 바닷속에 갇혀 있는 양심과 희망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며 세월호를 언급했다고 한다. ‘괴짜’ 소리를 듣는 최민수의 수상 거부 소감이 거의 말런 브랜도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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