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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여적]비인간적 인격체

by 김석종 2015. 2. 3.

[여적]비인간적 인격체

팔이 길고 꼬리가 없는 원숭이류를 ‘유인원’이라고 부른다. 오랑우탄·침팬지·고릴라·보노보 등 인간과(科)에 속하지만 사람은 아니다. 특히 오랑우탄과 참팬지는 인간의 유전자 구조와 98% 이상 일치한다. 올해 초 개봉한 <혹성탈출-반격의 서막>은 진화한 유인원 종족과 멸종위기에 처한 인류의 대결을 가상한 영화다. 카리스마 넘치는 침팬지 리더 시저가 유인원 무리를 이끈다. 실제로도 유인원은 지도자를 중심으로 공동체를 꾸린다고 한다. 도구를 사용하고 몸짓으로 다양한 의사소통을 한다. 3년 전의 일을 기억할 정도로 지능이 높다. 오랑우탄은 비가 오면 넓은 잎을 꺾어 우산처럼 사용한다.

유인원은 또 ‘감정의 동물’이기도 하다. 침팬지와 오랑우탄들의 사회에도 선악(善惡)이 존재하고 갈등과 반목도 있다. 무리 안에서 일어나는 충돌을 원만히 해결하는 일종의 ‘경찰 조직’도 갖췄다. 키스하고, 껴안는 행위는 영장류만의 공통된 감정 표현 방식이다. 심지어 물물교환 형태의 성매매가 존재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인간의 진화에 대한 잃어버린 고리를 찾기 위한 연구대상, 실험용으로도 자주 선택된다. 의사소통, 문화, 인지력, 나아가 웃음까지 연구대상이 된다. 엘리자베스 헤스의 <님 침스키>는 ‘언어 실험’ 대상이 됐던 침팬지의 실화를 다룬 책이다. 님 침스키는 대저택에 입양돼 인간 아이처럼 가족과 함께 살면서 옷을 입고, 침대에서 자고, 커피를 마시고, 미국식 수화를 배웠다. 하지만 ‘인간으로 길러진 침팬지’는 입양 가족들의 외면으로 다시 동물원으로 돌아가 고통 속에 죽었다. 이런 침팬지가 동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최근 아르헨티나 법원이 20년 동안 동물원에 갇혀 살던 29살짜리 오랑우탄에게 “불법적으로 구금되지 않을 ‘법적 권리’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는 아니더라도 철학적 의미에서 하나의 인격체”라는 변호인 측 주장을 받아들여 오랑우탄을 ‘비인간적 인격체(Non-Human Person)’로 규정했다. 참 절묘한 표현이다. 이제 이 오랑우탄은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이송돼 자유의 몸이 된다. 침팬지보다 ‘인격’이 떨어지는 ‘털 없는 원숭이’는 또 얼마나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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