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사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으로 불리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두 달 앞으로 다가왔다. 로마 교황청이 8월14일부터 4박5일 동안 국빈방문하는 교황의 일정을 공식 발표했다. 청와대 예방, 대전 월드컵경기장 미사, 당진 솔뫼성지 아시아청년대회 참석, 음성 꽃동네 방문, 서울 광화문 천주교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 서산 해미읍성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 명동성당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등 이미 알려진 일정에서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다만 광복절(성모승천대축일) 대전 미사에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을 초청해 직접 위로하고, 명동성당 미사 전에 7대 종단 지도자들을 만나는 계획이 새로 추가됐다.
세부 일정은 30분 단위로 빡빡하게 짜여 있다. 한국 나이로 올해 79세인 교황이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소화하기에는 결코 녹록지 않은 행보다. 이동에는 청와대에서 제공하는 전용헬기와 승용차를 이용할 것이라고 한다. 교황이 방탄차를 마다하고 일반 차량을 고집했다는 전언이다. 이처럼 소탈하고 인간미 넘치는 교황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되는 기쁨은 크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 한국에서 고통받는 이들에게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장면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뛴다.
하지만 방한 기간 교황의 동선을 보면 아쉬운 점도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을 찾는 마당에 명동성당 평화미사 외에 한반도의 화해와 고통받는 북한주민을 위한 일정이 전혀 없어서다. 평소 한반도 분단 상황과 북한 동포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온 교황으로서 어울리지 않는 대목이다.
얼어붙은 남북관계 때문에 방북은 어렵더라도 임진각 등 의미 있는 곳에서 평화미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한반도 분단을 상징하는 비무장지대 방문도 검토해볼 만하다. 일각에선 교황의 평소 행보로 볼 때 틀림없이 북한과 관련한 파격적인 비공식 일정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교황은 최근 중동 방문 때도 예정에 없이 팔레스타인 분리장벽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파격을 보여줬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한국 천주교회가 나서서 교황을 분단 현장으로 안내할 계획을 세우는 것이 교황 방한의 뜻을 제대로 살려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는 길이라고 본다. 한반도에 울려 퍼질 프란치스코 교황의 깊은 기도가 남북한에 사랑과 화해의 씨를 뿌리고, 세월호 이후 사회질서를 정의롭게 재건하는 데 귀한 주춧돌과 돌쩌귀가 되길 기대한다.
#경향신문 6월20일자
연합뉴스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설]종교계의 ‘이석기 탄원’ 논란을 보며 (0) | 2014.08.05 |
---|---|
[사설]정성근 후보자 문화장관 자격 없다 (1) | 2014.07.16 |
[사설]‘월드컵 무승’ 한국 축구의 과제 (0) | 2014.07.16 |
[사설]‘숭례문 교훈’ 비웃는 문화재 비리, 문화재청 뭐했나 (0) | 2014.07.16 |
[사설]세계유산 보존·관리 종합대책 시급하다 (0) | 2014.07.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