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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사설]‘숭례문 교훈’ 비웃는 문화재 비리, 문화재청 뭐했나

by 김석종 2014. 7. 16.

[사설]‘숭례문 교훈’ 비웃는 문화재 비리, 문화재청 뭐했나

국보·보물급 문화재 수리·복원에 얽힌 불법과 비리가 또 드러났다. 서울광진경찰서는 자격도 없이 국보급 문화재를 수리한 대학교수와 공무원, 문화재 수리 과정에서 불법 하도급을 준 전문문화재수리업자, 문화재 수리 자격증을 불법으로 대여해준 기술자 등 모두 21명을 무더기로 적발했다고 한다.

특히 국내 서화류 수리·보존 분야에서 1인자로 꼽히는 경기 용인대 문화재학과 박모 교수는 1994년 문화재연구소를 차린 뒤 20년간 승정원일기(국보 303호), 태조 이성계 어진(국보 317호) 등 국보 239점을 하도급 받아 수리해 수십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것이 들통났다. 박 교수는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문화재의 각종 정책, 제도개선에도 활발하게 참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재 담당 5급 사무관인 공무원 차모씨도 2011년부터 따로 무등록업체를 운영했다. 차씨는 청주 보살사 영산회괘불도(보물 1258호) 등 사찰의 불교회화를 주로 수리해 수억원을 챙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문문화재수리업체에서 불법 하도급을 받고, 수리 기술자들의 자격증을 빌렸다.

이처럼 구조적으로 얽히고설킨 문화재 관련 불법·비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국보 1호 숭례문 복원 때도 ‘문화재 마피아’들의 총체적 비리가 양파껍질 벗기듯 줄줄이 밝혀졌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재 분야의 구조적이고 고질적인 비리를 반드시 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럼에도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으니 개탄할 노릇이다.

문화재 분야는 대단히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만큼 문화재청의 감독 및 검증 시스템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불법 행위를 적발한 것은 경찰이었다. 박 교수가 국내 서화류 문화재 수리를 거의 도맡다시피 하면서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데도 문화재청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의 관리·감독 책임을 단단히 져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문화재 비리의 결과를 숭례문 복원 스캔들을 통해 똑똑히 목격했다. 문화재청은 현재 종합적인 문화재 관리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한다. 차제에 문화재 수리·복원과 관련한 대책, 문화재 비리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개선책, 투명한 문화재 행정 등 문화재 보호 체계의 확실한 새 틀을 짜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숭례문 트라우마’를 겪은 국민이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경향신문 2014년 6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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