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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유병언은 조폭의 손에 오래 전 타살됐다?

by 김석종 2014. 7. 29.

유병언의 시체가 발견되기 일주일 전 쯤, 지금은 은퇴한 언론계 선배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선배는 유병언이 한강에서 운행했던 세모유람선 사업과 관련해 유병언과 가깝게 지냈던 친구 사업가에게 들은 얘기를 전했다. 요지는 이렇다. "유병언이 지역 조직 폭력배들에게 감금돼 있다가 이미 죽었다. 유병언은 여야 정치인은 물론이고, 검.경.관계 실력자들과 정치자금, 후원금으로 얽혀 있다. 그가 잡혀서 입을 열면 그건 핵폭탄급이다. 그러니 살아있는 그를 붙잡는 일은 없을 거다. 유병언 시신이 폭력조직 손에 있다. 그걸 취재해봐라."

그리고 유병언 변사 뉴스 특보가 전해진 날, 선배는 또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것 봐라. 유병언은 타살된 게 틀림없다. 이미 오래 전 죽은 뒤 발견장소에 옮겨졌다. 유병언 변사는 조폭과 관계가 있다. 유병언은 도피나 밀항의 도움을 받기 위해 평소 가깝게 지내던 조폭을 찾아갔다가 당한 거다. 그리고 그 죽음은 21세기 최대의 미스터리가 될 거다. 사망원인은 앞으로도 밝혀지지 않을 게 틀림없다."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그럴 듯한 음모론이었다.

 

 

[여적]음모론

2008년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세계 10대 음모론’을 소개했다.

9·11테러 미국 정부 자작설, 미국 네바다주 비밀 공군기지의 외계인 거주설, 엘비스 프레슬리 생존설, 아폴로 11호 달착륙 연출설, 셰익스피어 가짜 인물설, 예수 결혼설, 파충류 외계인 지구지배설,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에이즈 개발설, 존 F 케네디 암살 배후설, 다이애나 사망 영국 왕실 개입설이 그것이다. 한국에서는 KAL기 테러사건과 천안함 침몰 사건을 두고 음모론이 파다했다.

음모론은 유명인의 죽음이나 대형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할 때 그 배후를 의심하면서 생겨난다. CIA, KGB 같은 국가 정보기관과 마피아, KKK단, 프리메이슨, 시오니즘단 같은 단체들이 배후로 지목되곤 한다. 시간이 지난 뒤 음모론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많다.

인간을 ‘스토리텔링 애니멀’이라고 규정한 미국 작가 조너선 갓셜은 같은 제목의 책에서 “음모론이 우리를 매혹하는 이유는 기막히게 뛰어난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모론이 문학, 영화 등의 중요한 소재가 되는 이유다. 실제로 케네디 암살사건<JFK>, 예수 결혼설<다빈치 코드>, 모차르트의 재능을 질투한 살리에리의 독살설<아마데우스> 등이 영화로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다.

세월호 사고로부터 유병언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음모론적 스토리텔링 요소를 골고루 갖췄다. 특히 사인을 알 수 없다는 유병언 시신 발견은 미스터리의 정점이다.

이미 수많은 누리꾼들이 탐정, 형사, 기자, 작가가 되어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미스터리 스릴러를 쓰고 있는 형국이다. “유병언은 이미 겨울에 숨졌다” “조희팔처럼 살아 있다” “발견된 시신은 유 회장이 아니다” “시체 발견 발표를 경찰이 일부러 늦췄다” “권력층이 입을 막기 위해 조폭을 동원해 살해했다” 등등.

시미즈 이쿠타로가 쓴 <유언비어의 사회학>은 유언비어(음모론)가 발생하는 조건으로 사실에 대한 갈증과 부족한 정보를 든다. 대형사건이 터질 때마다 음모론이 나도는 것은 대한민국이 불신사회라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김석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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