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수맥(水脈)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현충원)의 박정희 전 대통령, 육영수 여사 묘소는 풍수전문가들의 입길에 자주 오르내린다. 풍수지리 대가로 알려진 지창룡씨와 손석우씨가 묘터를 잡았다고 한다. 국립묘지 터를 처음 잡은 당대 최고수 지관이었던 지씨는 육 여사의 묘소를 공작새가 알을 품고 있는‘공작포란형(孔雀抱卵形)’ 명당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 이곳에서 수맥(水脈)이 발견돼 수맥차단 공사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씨는 김대중 전 대통령 부모의 묘를 이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맥이란 지하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말한다. 보통 지하 20~50m, 혹은 100~200m에서 흐른다. 지표면으로 솟아 옹달샘이 되기도 한다. 물이 흘러가는 곳의 상층부 쪽은 수맥파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수맥 전문가들은 땅 속을 흐르는 수맥이 인체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수맥이 지나가는 곳에서 생활하면 피로, 뇌졸증, 암 등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수맥의 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수맥파는 비행기에서도 측정될 만큼 강력하다고도 한다. 63빌딩 지하의 수맥파가 옥상에서도 똑같이 감지됐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하지만 수맥을 정확하게 찾기란 쉽지 않다. 수맥을 측정할 때는 수맥봉(L자 모양의 금속봉), 추, 나뭇가지 등을 쓴다. 자기공명(磁氣共鳴)으로 수맥의 파장을 찾아 내는 기구다. 도로 위의 금이 가거나 갈라진 곳에서 수맥봉을 작동하면 ‘X’자로 교차한다. 수맥이 없는 곳에서는 평행선을 유지하고 미동도 하지 않는다. 추를 사용할 때도 마찬가지여서 수맥이 있는 곳에서는 요동치며 돌지만 없는 곳에서는 정지한다. 자석과 동판, 은박지는 수맥파를 차단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은 수맥차단 돌침대, 베개, 동파이프, 장판 등이 시중에 나와 있다. 아파트 건설에 수맥차단 공법을 적용하기도 한다.
동양 풍수에서도 음택(묘)에 물이 고이면 흉하다고 하지만, 정작 수맥탐사 이론은 서양에서 시작됐다. 성경에 물을 찾고, 사람을 살린 ‘하느님의 지팡이(Rod of God)’를 시작으로 본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도스가 Y자 모양의 나뭇가지로 물을 찾았다는 기록도 있다. 영국의 다우저(Dowser)라는 사람이 수맥에 정통해 수맥탐사를 다우징(Dowsing), 수맥탐사 전문가를 다우저로 부르게 됐다. 바티칸의 베드로 성당 복원에도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다우저의 도움을 받았다. 또 1620년대 영국의 다우저 후손들이 신대륙의 정착지에서 물을 찾는 것을 도왔다고 한다.
한국의 수맥탐사는 1836년 프랑스 외방선교회 신부가 들여왔다. 프랑스 출신 메르메 신부와 부르드 신부는 1900∼1930년대 우물 파기와 금광 개발 등에 큰 도움을 줬다. 이들에게 직접 배운 신인식 신부의 수맥탐사법은 임응승 신부에게 전해졌다. 그는 평생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온천수와 지하수를 찾아내는 등 국내 수맥탐사의 1인자로 꼽혔다.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발전으로 공업용수 부족을 겪을 때 임 신부가 수맥탐사로 물줄기를 찾아 공급했다. 20여년 전, 당시 노량진성당 임응승 신부가 경향신문을 찾았다가 수맥봉으로 신문사 사옥 아래 수맥이 흐른다며 곳곳에 자석을 붙여줬던 기억이 난다. 그는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20여 군데의 수맥을 찾아 한센병 환자들이 생수를 자급하도록 도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1986년 <수맥과 풍수>를 출간했으며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쳤다.
그 ‘성직자 지관’ 임응승 신부가 지난 7일 93세로 선종했다. “탐사 행위가 남을 돕는 행위로 가옥의 검사나 물을 탐색 할 때 하느님의 뜻과 보호를 받게 된다”는 가톨릭 교령(1942년)에 따라 세상에 유익한 일에만 수맥을 짚어온 임 신부를 생각하면 수맥 차단용이라며 ‘달마도’를 팔아먹는 등의 사이비 수맥 전문가들이 가소롭기만 하다.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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