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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 스님 "몸뚱이보다 잠든 영혼 깨우는 아침 되게 하라"

김석종 2014. 5. 11. 12:39

지난 주 설악산 오현 스님에 이어 충주 석종사 혜국 스님을 인터뷰했습니다. 혜국 스님에게 ‘김석종’이 ‘석종사’에 너무 늦게 왔다는 우스개 소리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혜국 스님에게는 주로 세월호 참사를 겪는 우리사회에 필요한 불교의 지혜를 물었습니다. 이번에도 다른 사람이 녹음 내용을 글로 옮겨줘서 겨우 기사 작성을 했습니다. 지난해 불교 큰스님 스물일곱분을 인터뷰한 책 <마음살림>을 펴내면서 “건강하지 못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도 업이 된다”는 동춘스님 말씀을 서문에 썼는데, 지금 또 그것을 절실히 느끼는 중입니다. 기사에 다 소화하지 못한 부분을 뒤에 붙였습니다.

 

<경향신문 5월9일자 기사>

“어렵겠지만 부모가 슬픔 떨쳐내야 망자들 광명으로 나와”

ㆍ한국불교 대표 선승 혜국 스님에게 듣는 ‘세월호 참사’
충북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67)은 오른손 검지·중지·무명지 절반이 없다. 젊어서 소지공양(손가락을 태워 공양하는 것)을 했다. 태백산 도솔암에서 홀로 생식을 하고 잠잘 때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를 하는 등 혹독하게 수행했다. 혜국 스님은 고우 스님, 무여 스님과 더불어 한국불교 간화선(화두를 들고 하는 참선수행)을 대표하는 선지식(수행의 길을 가르쳐주는 스승)으로 꼽힌다.

불교에서는 어려운 시대, 삶의 시련이 닥칠 때마다 선지식에게 길을 묻고 지혜의 등불을 얻곤 한다. 석종사로 혜국 스님을 찾아가 세월호 비극을 대하는 마음공부의 길을 물었다. 스님은 “우리 시대의 탐욕과 어리석음이 그분들을 죽였다. 많은 아이들이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됐다”고 장탄식했다.

 

 

                 혜국 스님은 돈과 권력만 따르는 우리 시대의 탐욕이 세월호 참사를 불렀다며 제도 개혁보다 우리 모두의 개과천선이

                  더 급하다고 말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 잘못된 제도 고쳐서 될 일 아냐
나만 살려고 하면 모두가 죽는다는 것 알고 내 마음부터 바꿔야 해
유가족들 다시 일어서는 것이 떠난 가족·아이들 사랑하는 일


- 지금 온 국민이 깊은 슬픔에 빠져 있다. 스님은 지금 어떤 마음입니까.

“참담하다. 날마다 세월호에서 숨진 영혼들을 위한 예불을 올리고 있다. 이 어린 학생들의 영혼을 이 나라의 희망의 등불로 삼아야 한다는 마음이 절절하다.”

- 절망에 빠져 있는 유가족들이 걱정입니다.

“지금 그분들 심정이 오죽하겠나. 하지만 망자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생각했으면 한다. 그분들은 숨길이 끊어진 순간부터 차디찬 바닷속이 아니라 부모와 가족들의 가슴속에 있다. 그 영혼과 당신의 영혼이 한 영혼이다. 참으로 어렵겠지만 부모가 슬픔을 떨쳐내고 희망을 붙잡아야 한다. 그래야 망자들이 어둠에서 해탈돼 광명으로 나올 수 있다. 슬픔으로 좌절하거나 쓰러지면 아이들이 자유로울 수 없다. 고통을 이겨내고 다시 일어서는 것만이 먼저 떠난 가족을, 아들딸을 사랑하는 일이다.”

- 부활절과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모두 한마음으로 무사귀환을 기도했지만 단 한 명도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도대체 종교가 무슨 소용입니까.

“오는 봄을 못 오게 하고 겨울에 당장 꽃이 피게 하는 것이 종교가 아니다.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이겨내고 아픔을 희망으로 돌리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 부처님의 자비사상이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사회에 종교가 필요하다. 아픔을 치유하고 삶의 의미를 회복하는 데 종교만 한 것이 없다. 유가족들이 불자는 부처님 앞에서, 기독교인은 교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성당에서 기도했으면 한다. 지금 부처님과 예수님이 망자들과 함께하고 있다.”

- 지금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고통을 통해 뼈저리게 배우는 게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달라지길 바라서는 이 세상이 결코 바뀌지 않는다. 나부터 달라져야 한다. 잘못된 제도만 뜯어고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은 썩은 일이 없다고 했다. 썩은 건 사람들 마음이다. 제도 탓, 남 탓 하지 말고 각자 자기 마음부터 바꿔야 한다.”

- 이런 대형 참사가 자꾸 일어나는 원인이 뭡니까.

“높아진 경제 GNP를 윤리도덕이나 책임감, 배려심 같은 정신문화 GNP가 따라가지 못한 탓이다. 모두가 돈만 돈만, 명예만 명예만, 권력만 권력만 해가면서 살지 않나. 모든 우주자연의 공덕으로 우리가 사는 거다. 공기, 물, 빛, 대지 같은 우주자연은 인간을, 일체 생명을 똑같이 완전 평등하게 떠받든다. 그 자연의 평등성을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하고 불교에서는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주자연의 평등성에 관심을 두지 않고 빈부귀천을 가르며 투쟁과 경쟁에만 몰두한다. 비극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것은 탐욕에 빠져 있는 우리 모두의 공업이고 사필귀정이다.”

- 인간의 정신세계와 세상살이의 지혜를 담당하는 종교도 손가락질 받는 일이 많습니다.

“종교가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이끌어 가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끌려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불교도 중생들에게 꿈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성직자들이 삶 자체로 진리를 보여줘야 한다. 세월호 사고를 보며 스님으로서 가슴 아픈 일이 하나 더 있다. 이번에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삼각함수를 배우고 물리를 배우고 불확정성 원리를 배웠지만 죽음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됐나. 우리가 살면서 차가운 바닷속에 빠졌을 때,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필요한 건 지혜다. 아이들이 마음공부를 했더라면 바닷속에서 덜 춥고 덜 외로웠을 거다. 지혜를 가르치는 한 성직자로 그애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 살면서 어려운 일을 겪을 때마다 헤쳐나갈 수 있는 불교의 지혜 하나를 꼽는다면.

“수처작주(隨處作主) 입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주인이 되라는 말이다.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내 마음은 나만 길들일 수 있다. 행복도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다. 삶 속에서 탐욕과 분노, 집착에 휘둘리지 않으면 그게 인격으로 쌓여서 당당한 사람이 된다. 사랑이 되고 자비가 되고 은혜가 되고 보시가 된다. 불안한 마음이 사라진다. 부처님 법으로 보면 우리가 호의호식에 목매다는 이 몸뚱이는 빌려 탄 자동차 같은 거다. 몸은 차가운 바다에 빠져도 본래의 나, 마음은 죽지 않는다. 본래 대자유한 마음은 바닷속, 땅속, 허공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다. 내가 마음의 주인이 되면 어떤 고난도 나를 쓰러뜨리거나 죽이지 못한다.”

- 부처는 누구입니까.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나 홀로 높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똑같이 존귀하다는 선언이다. 전부다 하나같이 부처다. 소중하지 않은 사람 하나도 없다. 나와 남, 그리고 삼라만상이 둘이 아니다. 이것이 우주에 가득한 부처의 진리다.”

- 과연 한국 사회에 희망은 있을까요.

“우리가 희망을 만들어야 희망이 있다. 세월호 사건 하나로 지금 우리가 얼마나 불행한가. 이웃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저 사람이 잘 살아야 나도 잘 산다. 이번 사건은 나만 살려고 하면 모두 죽는다는 걸 가르쳐줬다. 우리가 모두 한배에 타고 있다는 걸 알려줬다. 지혜로, 이치로 살아야 한다는 걸 보여줬다. 어린 학생들이 희생을 뼈아픈 교훈으로, 상생의 밑거름으로 삼는다면 희망이 있다.”

 

 <기사에 못다쓴 이야기들>

 혜국 스님은 새벽 2시면 일어난다. 3시에는 석종사 130여명의 대중이 법당에 모여 아침예불을 올린다. 스님은 “아침에 몸뚱이만 일어나면 깨어난 게 아니다. 번뇌망상만 일어나는 꼴이다. 잠들어있는 영혼까지 함께 깨워서 일어나야 한다. 잠들어있는 영혼을 깨우는 게 아침 예불”이라고 했다.
 혜국 스님은 지난달 중국선종사찰순례길에 세월호 사고 소식을 들었다. 스님은 순례단 50여명과 함께 중국 장시성의 백장사, 우민사, 영은사 등 참배하는 사찰마다 실종자 무사귀환과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법회를 열었다. 부처님 오신날이 코앞인데도 석종사 법당 앞에 다른 연등을 달지 않고 세월호 희생자 영가 천도를 기원하는 흰색 연등 두개만 달아두고 있었다.

 

 

-스님은 한국불교 간화선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간화선은 일반인들에겐 너무 어렵습니다.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답을 찾는 훈련이 안 돼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남의 지식을 외우기만하고 또 컴퓨터를 누르기만 하면 답을 알려주니까 체험없이 답을 알아버린다. 간화선은 철저한 체험의 세계다. 번뇌망상의 마음에 물들기 전의 본래 나는 청정하고 완벽한 존재다. 더러움이 묻기 이전의 ‘나’로 바꿔나가는 의식전환이 바로 간화선이다. 화두란 모른다는 것이다 안다, 모른다 할 때의 상대적인 것이 아니라 ‘오직 모를 뿐(only don’t know)’의 모름, 백지처럼 깨끗하고 청정한 모름이다. 그 백지 깨끗한 모름이 되기 위해 내명의 의식을 전환하고 거듭 전환하면서 자기 자신을 체험해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체험해서 맑아진 연못에도 또 찌꺼기가 낀다. 그런데 사람들은 바로 답을 원하고, 바로 깨닫기를 바라고, 바로 부처되기를 바란다. 자기 전환의 체험없이 바로 답을 원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거다.”

 

  -스님은 스승인 일타 스님처럼 소지공양을 했습니다. 장좌불와 같은 그런 혹독한 고행을 통해서 체험해야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겁니까.
 

 “아니다. 그때가 스물두살 때였는데 나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마음이 흔들렸다. 강해려려고 한 것이지 우리 스님처럼 오로지 도를 이루겠다
는 마음에서 한 게 아니다. 그 일로 오히려 성철 스님에게 많이 혼났다. 날마다 날마다 내 삶을 체험적으로 끌고간 게 아니라 너무 빨리 답을 원한 결과일 뿐이다. 직접 체험해서 마음의 고요를 얻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답만 추구했다. 그런 결과지 대단한 고행이 아니었다. 그런 거 하지 않고도 깨달은 분들이 많다. 박지성 선수가 평발인데도 공을 잘 차려고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나. 유현진 선수가 얼마나 열심히 공을 던졌나. 마음수행, 마음농사도 세상사람들이 노력하는 것처럼 단련한 만큼 좋아지는 정도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서 혜국 스님은 성철 스님의 일화를 들려줬다.
 성철:축구공같은 이 지구가 자전 공전을 한다. 그러니 결국은 지구에 거꾸로 매달린채로 천야만야한 낭떠러지에서 돌고 있다는 걸 아느냐.
 혜국:못 믿겠습니다. 저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있는데요.
 성철:바로 그거다.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 신부에서 시작해서 갈릴레이 갈릴레오만이 우리가 그 천야만야한 땅덩어리를 돌아가고 있는 걸 체험한 분이다. 우린 그분들 지식을 빌려왔을 뿐이다. 남의 지식을 빌려온 것이지 내가 체험한 게 아니다. 남이 발견하고 체험한 걸 내 것인양 착각하기 때문에 마음의 문제, 죽음의 문제 앞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못된다.

 한번은 혜국 스님이 성철 스님에게 불려갔다. 성철 스님이 느닷없이 죽비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이거 뵈나?” “예 보입니다.” “뭐로 보노?” “눈으로 봅니다.” “눈이 어데 있노?” “여기 이마에 있습니다.” 성철 스님이 갑자기 불을 확 꺼버렸다. “이거 들었나, 안들었나?” “모르겠습니다.” “아까 본다는 눈은 어디갔노?” “그냥 이마에 있습니다.” “그럼 왜 안보이노?” “깜깜해서 안보이는 것 아닙니까.” “고양이나 올빼미는 깜감할수록 더 잘 보는데 넌 고양이 눈깔만도 못하냐. 이노무 자석아. 눈으로 보는 게 아냐!” “고양이나 올빼미는 깜깜한 데서 보도록 습관이 돼 있는 거 아닙니까.” “낮에 보도록 안구의 습관을 만든 너는 누구냐. 그 습관, 감정을 일으키는 주인은 누구냐?”

 

 

 -그렇다면 스님은 이제 깨달았습니까.
 

 “깨달았다고 하는 마음이 남아있으면 개달음이 아니다. 성철 스님은 누가 깨달았다고 찾아가면 억! 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소리가 몇근이냐 하고 묻는다. 또 한 손바닥에서 나는 소리를 일러라, 그런다. 있는 소리와 없는 소리를 아는 놈은 본래 하나이고 공이다. 그것은 똑같은 자리다. 깨달은 세계는 텅빈 허공성이라 깨달은 사람만이 볼 수가 있다.”

 

 -일타 스님과 성철 스님을 스승으로 모셨습니다. 평생을 해인사에서 함게 살았던 두 스님은 어떤 분들이었습니까.

 

 “성철 스님을 5~6년 모시고 공부했다. 그분은 항상 근본에서 가르쳤다. 평생 가야산을 내려오지 않고 자연과 하나되는 삶을 살았다. 성철 스님이 현실참여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삶 자체로 중생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나. 검소하게 생활하고 뿌리만을, 근본만을 보여주면서 중생들과 하나가 되어 사셨다. 일타 스님은 자비 그 자체였다. 단 한 사람도 마은 아픈 꼴을 못보셨다. 성철 스님이 바위같고 사자같은 분이라면, 일타 스님은 비둘기같고 노루같은 분이다. 성철 스님은 일타 스님이 계셨기에 그 용맹이 더 빛났고, 일타 스님은 성철 스님이 계셨기에 자비의 상징처럼 살았다. 두분이 그렇게 하나의 삶을 살았다.”

 

 

  -한국 선불교가 그렇게 훌륭하다면 왜 달라이라마나 틱낫한과 견줄 만한 스님이 나오지 않는 겁니까.

 

  “내가 중국선종사찰순례를 자주 한다. 당나라에 유학했던 혜초, 원측, 의상, 도의 등 신라승들은 동방의 최고 지식인들이었다. 내가 달라이라마를 세 번 만났다. 그분은 가장 좋아하는 불교 경전으로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를 꼽았다. 유식학의 명저인 그 책을 원측 스님이 썼다. 근래에도 국제화·세계화가 됐으면 성철 스님 같은 분이 세계적인 스승이 됐을 거다. 이제 한국불교 간화선이 외국에 알려지면 한국에서 인류의 큰 스승도 나오게 될 것이다.”

 

 -한국불교가 앞으로 인류문명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이제 선불교는 중국에도 없고 한국에만 살아있다. 선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어둠이란 없다는 것이다. 어제 밤도 깜깜했는데 왜 어둠이 없느냐. 본질로 따지면, 태양광명 쪽에서 보면 태양은 어디 움직인 일이 없다. 밤에도 그 자리에서 대낮의 광명을 비추고 있다. 다만 지구가 등을 돌려서 어둠이다. 부처님은 우리 스스로 마음광명에 등을 돌려서 어둠이지 어둠은 없다고 했다. 내 마음광명은 어둠 속에서도 항상 태양광처럼 빛나고 있다. 부처님은 죄란 없다고 했다. 내가 내 마음광명에 등을 돌려서 어둠을 만들고, 어둠이 불평불만을 만들고, 불행을 만들고, 죄를 만들 뿐이다. 내 마음광명은 어둠 속에서도 항상 태양광처럼 빛나고 있다. 내 마음은 어둠과 밝음이 없고 영원한 광명이다. 내가 광명 쪽으로 돌아서기만 하면 어둠에서 벗어난다. 이게 인류에 대단한 희망이다. 토인비는 20세기 최대의 사건이 석가모니 가르침인 불교가 서양에 전해진 것이라고 했다. 이제 한국 선불교가 불교의 더 깊은 가르침을 전할 수 있다. 나와 남이 하나이기에 내가 소중한 만큼 상대도 똑같이 소중하다. 그 영혼과 내 영혼은 한 영혼이고 한 허공이니까 내 것은 옳고 네 것은 그른 게 있을 수 없다. 내가 옳다고 고집하면 아집이다. 기독교든 이슬람이든 똑같이 존중한다. 인류가 그 법을 배우면 전쟁은 끊어진다. 불교가 세계평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나만 옳다는 생각, 나만 잘살고 보자는 생각, 상대방을 이겨야겠다는 생각이 이번에도 참사로 이어진 게 안타깝다.”

 

 

 -어떤 스님은 스님들의 깨달음병, 수행의 신비화가 한국불교의 가장 큰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홀로 깨닫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문제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이 마치 내 몸안에 내가 따로 있다는 걸로 착각한다면 그건 깨달음병이다. 나와 남이 둘이 아니고 우주가 둘이 아니라는 것이 전제가 돼야 한다. 내 마음을 비우고 비워서 그 하나가 되어버리는 체험을 위주로 하지 않고 달음 지상주의가 돼서 중생의 아픔을 모르고 내가 빨리 깨닫겠다고 한다면 깨달음병이다. 그러나 중생들의 아픔과 꼭같이 가기 위한 깨달음은 반드시 있어야 할 깨달음이다. 깨달음과 실천, 삶과 수행은 하나다.”

 

 -살면서 후회가 되는 일이 무엇입니까.

 

 “날마다 내 자신을 후회한다. 나는 날마다 내 오늘 하루 점수가 몇점인가, 오늘 하루 인생 점수가 몇점인가 따져본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돌아올 오늘이니까 항상 오늘이고 영원한 오늘이다. 오늘 하루 내 인생점수가 흡족하지 못하면 낭비다. 인생은 낭비할 정도로 넉넉한 시간이 아니다. 최선을 다할 때 하나를 이룰 수 있을 만큼만 시간을 가지고 왔다. 큰 계획을 세워서 잘 하려고 하지 말고 오늘에 최선을 다할 때 인생의 점수가 올라간다. 내가 손가락을 태우고 수행을 하겠다고 태백산 도솔암에 들어가 2년7개월을 살았다. 생쌀, 생콩, 솔잎만 먹고 살았다. 그런데도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은 나에게 다시 안 올 시간인데. 엄청난 보배를 놓쳤다는 게 후회가 된다.”

 

 -평생 수행하신 분이 그러면 일반인들은 어떻게 합니까.

 

 

 “마음이 맑아본 사람은 오늘 하루 잠깐잠간 놓친 시간이 아까워서 후회를 한다. 하지만 내가 내 주인이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내가 만든 감정이란 놈, 습관이란 놈이 내 주인이 돼서 진짜 주인을 끌고 다닌다는 것조차 모르고 산다. 후회할 줄도 모르고 사는 거다.

 

 

▲ 혜국 스님
1947년 제주 출생. 13세 때 해인사에서 출가했다. 당대의 고승인 성철 스님, 경봉 스님, 구산 스님 등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1989년 고향 제주에 남국선원을 열고 무문관을 만들었다. 2004년부터 폐사지나 다름없던 석종사를 복원하고 금봉선원을 개원했다. 2005년 조계종 간화선 수행지침서인 <간화선> 편찬위원장을 했다. 선방 수좌들의 모임인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지냈다. 지금은 남국선원과 금봉선원의 선원장을 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