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보

청도 몰래길 ‘산골 양장점’의 월드스타 디자이너 최복호

김석종 2014. 11. 11. 17:59

 

 /“노는 것이 힘이다” 청도 몰래길 ‘산골 양장점’의 월드스타 디자이너 최복호/

 

 

 


 가을이 깊다. “단풍들고 감 붉어지는 게 바로 자연의 가을 패션이다.” 사방천지를 물들인 가을색을 두고 ‘패션’이라고 말하는 이 사람, 경북 ‘감고을’ 청도땅 비슬산 산골짜기에 사는 패션디자이너 최복호(66)다.


 그동안 만인보(漫人譜)’가 세상에 별 사람 다 있다 싶게 남다른 인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최복호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괴짜다. 화려한 도시의 세련된 옷맵시를 도맡는 패션디자이너가 유행과는 동떨어진 산중에 아지트를 마련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거기에 ‘최복호 패션문화연구소’라는 문패를 달았다. 최복호가 말했다. “이름만 거창하지 그냥 숲속 양장점이다.”


 하고 다니는 외양도 퍽 전위적이다. 이번에 만났을 때는 붉은색 자잘한 꽃무니 자켓에 밑단이 짧은 자주색 쫄바지를 입었다. 하얗게 센 꽁지머리에 동그란 빵모자나 패도라 중절모 눌러 쓰는 걸 빼놓지 않는 그다. 거기에 김구 선생처럼 똥그란 나무테 안경을 걸친 모습이 희안하고 멋지다. 사진 찍을 때 “복코” 하면서 손을 코에 대고 환하게 웃는 ‘백발 소년’. 어찌보면 컬러플한 찰리 채플린 같기도 하다.

 

 

 

 


 양장점(연구소) 옆으로 카페 겸 공연장인 ‘펀앤락’(FUN & 樂), 갤러리, 아트숍이 붙어있다. 펀앤락은 일종의 놀이터다. “재미있게 놀고 즐겁게 살아야 행복하다. 나는 시(詩)·주(酒)·색(色)의 놀이에 끌리고 꽂히고 꼴려서 청도로 왔다.” 이런 최복호식 풍류의 중심무대가 펀앤락이다. 이곳에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전유성 잡담쇼’를 연다. 그 출연진이 빵빵하다. 며칠 전에는 가수 민해경이 가을 콘서트를 열었다. 그간 유익종, 남궁옥분, 홍민, 전영록, 이정선, 임창제, 양희은, 이동원, 홍진희, 권인하, 이홍렬, 김도향, 최백호, 박미선 등등이 줄줄이 유쾌한 잡담과 콘서트 무대를 꾸몄다. 물론 연예계 대표 마당발 전유성의 힘이다.


 전유성과 최복호는 비슷한 시기에 별다른 연고도 없는 청도에 들어왔다.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해 말 그대로 아삼육, 요즘 말로 ‘절친’이 된 사이다. 둘이서 청도 오지를 순식간에 시끌벅적한 난장(亂場)으로 바꿔놨다. ‘구라’ 고수 전유성은 전국 어디든, 논이든 밭이든 웃음을 짜장면처럼 배달하겠다며 중국집 철가방 모양의 코미디 전용 ‘철가방 극장’을 열었다. 애완견과 함께 하는 ‘개나 소나 콘서트’도 만들어 청도 소싸움보다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

 

 

 


 그 전유성을 따라가 처음 최복호를 만난 게 5년전 쯤이었을 거다. 산 속으로 구불구불 이어진 '몰래길'을 따라가니 거기 최복호 연구소가 있었다. 코미디 극장에서 ‘산골 양장점’까지 이어지는, 걸어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숲길이 바로 청도 명물로 떠오른 ‘몰래길’이다. 전유성이 ‘올레길’을 패러디(전유성은 '남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해 이름 짓고 최복호가 길을 다듬었다. 거기서 최복호가 그랬다. “나는 음식의 간을 맞추듯이 문화와 문화, 패션과 섬유, 사람과 사람, 그리고 자연과 사람의 간(間)을 맞추는 문화디자이너다. 도시를 떠나 청도로 피난 온 문화독립군이다."


 몰래길의 멋진 가을 풍경을 보러 가겠다고 전화했더니, 이 독립군이 한발 먼저 서울에 올라와 있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2015년 봄·여름(S/S) 패션쇼를 연다고 했다. 그 패션쇼를 봤다. 패션 문외한이 보기에도 한지에 먹물 번지듯 가벼운 흑백톤, 넘실대는 푸른바다가 떠오르는 블루톤, 잘 익은 홍시감 같은 레드톤으로 물들인 수채화 실루엣의 의상들이 참 신선했다. 1000명 넘게 모인(패션쇼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몰리는 건 드문 일이란다) 관객들에게 “자연을 모방한 의상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원본’을 옮겨놓은 또 하나의 자연”이라는 최복호의 ‘자연주의’ 약발은 제대로 먹힌 것 같았다.

 

 

 

 “패션은 몸에서 시작해 삶으로 확대되는 퍼포먼스이고 연출이고 철학이다. 옷은 인간의 모자람을 채워주는 아량 같은 것인데, 그게 우리의 기를 살리고 힐링도 해준다. 그러니 내가 만족하고 남들이 보기좋게 입어야 한다.” 과연 내가 입는 옷도 그러한지 한번쯤 살펴볼 일이다.


 최복호는 경북 구미 선산의 산골에서 나고 자랐다. 어려서는 목사가 되려고 했단다. 계명대 철학과를 다니다 말았다. 교회 목사님이 권해서 패션디자이너에 입문했다. 한국패션계의 대모라는 말을 듣던 최경자가 앙드레 김을 키워낸 서울국제패션디자인학원에서 배웠다. 군에서 제대한 해인 1973년 패션쇼에 내놓은 첫번째 옷이 ‘의처증 환자의 작품D’와 ‘공해 오염 분해기 의상’이었다니, 참 별종이다. 사회의식을 담은 이 특이한 옷이 최경자의 눈에 띄어 그의 연구소 문하생이 되는 기회를 잡았다. 뒤늦게 경일대학교 섬유공학과를 나왔다.

 

 

 


 1975년 대구 동성로에 최복호 패션을 열어 독립했다. 대구가 왕년의 섬유산업 도시이긴 해도 서울에서 보면 패션의 변방일 터다. 그럼에도 대구패션협회 회장, 대구패션조합 이사장, 대구 경일대 교수, 한국패션협회 부회장, 한국패션협회 이사 등의 이력을 쌓았다. 대구 패션계의 좌장이면서 한국 패션계 중심의 무게감을 지녔다. 현재의 명함은 대구에 본사를 둔 패션업체 (주)씨앤보코(C&BOKO)의 대표이사다(이 과정에서 겪은 숱한 어려움은 생략하고 넘어간다).


 최복호는 자기 이름인 ‘CHOIBOKO’를 브랜드로 내세우고 있다. 최복호 패션이 전국구를 넘어 세계를 무대로 삼은 지는 벌써 오래 됐다. 1980년부터 독일, 미국, 프랑스 등 세계 각국에서 100여차례나 패션쇼와 전시회를 가졌다. 이제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중국 CHIC 차이나 패션위크, 텍스타일 USA 등 세계 주요 패션 박람회에서도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확 떴다. 영화배우 우피골드버그가 그의 옷을 입고 토크쇼를 진행할 정도란다. 7개국 24개 매장에서 그의 옷이 팔린다.


 한국 고유 섬유 소재를 즐겨 쓴다. 외국에서 ‘아이스 실크’로 불리는 경북 영주 특산 명주인 풍기인견을 파리 패션무대에 제대로 알린 것도 그였다. 감, 옻 같은 신토불이 재료는 물론 키토산, 한약재 같은 독특한 천연염색을 좋아한다. 단청과 탱화를 현대적 감각으로 변형시킨 문양을 내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을 종합해 동양적이고 고전적이면서도 모던하고 아방가드르한, 그리하여 상식과는 거리가 먼 콘셉트의 최복호 패션을 뽑아낸다.

 

 

 

 


 “쉽게 말하면 ‘비빔밥 패션’이다. 결국은 새 아이디어와 차별성에서 패션의 승부가 난다. 똑같으면 누가 사겠나. 나는 옷이 아니라 색을 판다.” 이 자연주의 패션디자이너가 또 말했다. “현장감이 떨어지면 끝이다. 본질로 가지 못하고 근처에서만 서성대면 쪽팔리는 거다. 모든 일, 인생의 성패도 결국은 거기서 갈린다고 본다”


 얼마 전 펀앤락 널찍한 마당에 캠핑형 게스트하우스를 또 추가했다. 요즘 유행하는 고급캠핑, ‘글램핑’을 표방한다. 몽골식 게르 5채와 오토캠핑 캐러밴 2대를 들였다. 별을 보면서 하룻밤 묵어가겠다는 이들이 하도 많아서 아예 여행자 숙소를 만든 거였다. 그의 놀이터는 이제 숙소가지 갖춘 하나의 테마파크가 된 셈이다. “몰래길을 걷다보면 물과 바람과 새소리와 들꽃과 단풍과 억새가 술 한 잔 하고 가라고 붙잡는다. 자연에 취하면 그게 최고의 행복이다. 그 힘으로 세상을 빡시게, 그리고 재미있게 살다 갈 거다.”

 

 

 

 

    최복호 자신이 여행광이다. “모든 여행은 실패가 없다. 책상에서 배운 건 인생이 되지 않는다.” 최복호가 사람들에게 늘 하는 충고가 있다.  "나이 들면 후배들에게 폼나게 밀리는 법도 공부 해야 한다. 걱정할 거 없다. 놀이와 여행, 친구만 있으면 더 젊게 늙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최복호는 곧장 중국으로 날아갔다. 지금 중국 산둥성 칭다오에서 패션쇼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