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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 스님 탄생 100주년, 달빛 같은 가르침 되새긴다

김석종 2014. 3. 23. 16:36

월하 스님 탄생 100주년, 달빛 같은 가르침 되새긴다

 

 

 

ㆍ25일 통도사서 추모제 등 열려
“내가 고단해야 남이 수월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대 종정을 지낸 노천당 월하(月下·1915∼2003·사진) 스님이 생전 제자들에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올해는 경남 양산 영축총림 통도사의 정신적 지주이자 현대 한국 불교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월하 스님 탄생 100주년이다. 그의 제자들로 구성된 통도사 노천문도회는 오는 25일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 추모제와 스님의 일대기인 <영축산에 달 뜨거든> 봉정식, 스님의 사상과 발자취를 재조명하는 학술세미나, 특별전시회 등 다양한 추모 행사를 연다. 현 종정인 진제 스님, 통도사 방장 원명 스님 등이 참석할 예정이다.

월하 스님은 18세 때인 1933년 강원도 유점사에서 출가했다. 근현대 들어 경봉 스님과 함께 통도사의 선풍(禪風)을 떨쳤던 구하 스님의 수제자다. 1954년 동산 스님, 청담 스님, 효봉 스님, 금오 스님과 함께 사찰에서 대처승을 내보내는 불교정화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한국 불교의 정통성을 회복하고 오늘날 조계종의 기틀을 세웠다. 정화운동이 끝난 뒤 불국사 주지를 맡기려고 했지만 끝내 고사했다.

이번 학술 세미나는 계율을 강조하며 불교계 정화에 앞장섰던 스님의 사상에 맞춰 ‘계율을 통한 수행의 재조명’을 주제로 통도사 해장보각(도서관)에서 열린다. 동국대 홍광표 교수, 조계종 원로의원 월탄 스님 등이 기조강연, 주제발표, 토론에 나선다.

월하 스님은 평생의 대부분을 통도사에 머물며 제자들을 키워내면서 조계종 중앙종회 의장, 통도사 주지·조실, 조계종 총무원장, 조계종 개혁회의 의장, 영축총림 방장 등을 지냈다. 1956년 통도사 주지로 취임한 후 강원과 선원을 복원하며 통도사에 총림(선원,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사찰)을 설치했다. 1994년 조계종단 개혁운동 당시 개혁회의 의장을 맡았으며, 같은 해 성철 스님, 서암 스님에 이어 조계종의 큰어른인 종정에 취임했다.

“위로는 머리를 덮을 한 조각 기와도 없고, 아래로는 발붙일 한 뼘의 땅도 없도다. 비록 나와 같이 태어났더라도 나와 더불어 함께 죽지 않겠노라.”

월하 스님이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종정 추대식에서 남긴 법어다. 스님은 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사람들을 대했다. 젊은 사람에게도 존칭을 쓰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스님의 근검절약과 솔선수범은 유명했다. 통도사 조실이 된 뒤에도 시중을 드는 시자를 두지 않고 방 청소와 빨래를 직접 했다.

월하 스님이 남몰래 자비행을 베푼 일화들도 많다. 19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나눔의집 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돼 성금을 모은다는 소식을 듣고 1억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한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이 일이 언론에 보도됐다. 스님은 제자들을 크게 꾸짖은 뒤 언론에는 “누가 내 이름으로 돈을 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국 불교 사상 최초의 사회복지법인 통도사 자비원, 사찰 최초의 박물관인 통도사 성보박물관도 설립했다. 월하 스님에게 직접 법을 전해받은 상좌는 60여명, 손상좌는 200여명에 이른다. 정우 스님은 1980년대 초반 월하 스님의 뜻에 따라 서울 강남 구룡사를 우리나라 대표적인 도심 포교 사찰로 키워냈다. 통도사에서 열린 스님의 다비식에는 8만여명의 인파가 몰려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이런 내용을 담은 월하 스님 일대기는 불교 작가 윤청광씨가 소설 형식으로 썼다.

월하 스님은 시·서·화에도 능했다. “문 안까지 들어온 산 그림자는 아무리 밀쳐내도 나가지 않고(山影入門押不出)/땅 덮은 달빛이 아무리 먼지를 쓸어내도 지워지지 않네(月光鋪地掃不塵).” 통도사 성보박물관 2층에서 3개월 동안 열리는 기념특별전에는 스님의 서화 작품과 발우, 가사, 장삼, 안경, 경전 등 손때 묻은 유품들이 전시된다. “한 물건이 이 육신을 벗어나니/우주만물이 법신을 드러내네/가고 머묾을 논하지 말라/곳곳이 나의 집이니라.” 월하 스님이 입적 직전에 쓴 임종게다.

노천문도회 대표를 맡고 있는 제자 성파 스님은 일대기 발간사에서 “월하 스님은 불교의 정체성이 모호하던 시절 비구를 대표해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며 “마지막까지 청정 비구로 살다가 원적에 드신 스님의 은은한 달빛 같은 가르침이 많은 이들의 마음에 비추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