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 기울어진 운동장

김석종 2015. 3. 30. 16:53

 여적/ 기울어진 운동장

 이솝 우화 ‘토끼와 거북이’에서 낮잠을 잔 토끼는 꾸준히 기어온 거북이에게 지고 만다. 그러나 이 경주는 처음부터 발빠른 토끼에게 유리한 불공정한 게임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에서도 열차 안의 세상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가득한 꼬리칸의 젊은 지도자가 폭동을 일으켜 선택된 권력자들이 탄 머리칸으로 돌진한다. 현대 사회에 대한 상징과 은유를 담은 영화다.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인기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가 쓴 <생각노트>는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적 통념을 뒤집는 글들이 많다. 예컨대 아이들에게 ‘하면 된다’고 하지만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란다. 그는 능력이 안 되는 아이들에겐 빨리 포기하는 법을 가르쳐야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 (…) 그런 말을 하면 아이가 위축되지 않겠느냐고? 위축되지만 않으면 운동 신경 둔한 녀석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나?”
 중세 이전의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 바다 멀리 수평선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리스토텔레스가 지구가 둥글다고 주장했고, 과학과 항해술의 발달로 그것이 증명됐다. 미국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이 쓴 <지구는 평평하다>는 교통과 인터넷의 발달로 전 지구가 장벽 없는 경기장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제는 전세계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지구가 평평해졌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이 땅에서는 양극화와 ‘갑질’ 논란 등 불평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마치 한쪽으로 급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심판의 편파 판정을 감수하며 축구경기를 하는 것 같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지난 대선 때 야당에서 나온 말이다. 한국사회가 너무 보수적이기 때문에 정권교체가 어렵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야당(새정치민주연합)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이 기울어진 운동장론을 반박하는 보고서를 냈다고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없다. 진보 세력 위기의 핵심은 지지기반이 아니라 리더십의 부재다.” 한마디로 ‘운동장’ 핑계 대지 말란 얘기다. 하긴 정치 운동장 탓하지 말고 한국사회에 널려있는 기울어진 운동장부터 뜯어고칠 일이다. 아니면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도 이길 만큼 체력을 키우든가. 김석종 논설위원2015.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