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충무공 장검
[여적]충무공 장검
경향신문 자료사진
“물들일 염자가 깊사옵니다.” “그러하냐? 염은 공(工)이다. 옷감에 물을 들이듯이, 바다의 색을 바꾸는 것이다.” “바다는 너무 넓습니다.” “적 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때, 나는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염(染)하고 싶었다. 김훈 소설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이 부하에게 검명(劍銘)을 써주며 나누는 대화다.
소설에 등장하는 ‘충무공 장검’(보물 제326호) 두 자루가 충남 아산 현충사에 보존돼 있다. 칼날에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과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라고 새겨져 있다. ‘석자 되는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과 물이 떨고, 한 번 휘둘러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인다’라는 뜻이다. 소설 속 ‘물들일 염(染)’자가 거기 들어 있다.
충무공 장검은 칼자루 속에 ‘갑오년 4월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고 새겨져 있다. 선조 27년(1594) 4월 한산도 진중에서 야장들이 만들어 바친 것이다. 전란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던 해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긴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던’ 바로 그 칼이다.
길이(197㎝)와 무게(4㎏)로 볼 때 실전용보다는 의장용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충무공이 전투에서 실제 사용한 칼은 쌍룡검(雙龍劒)이라고 한다. 전문가들은 장식, 입사문양 등 조선의 뛰어난 공예문화와 제철기술, 그리고 도검 문화가 발달한 일본도 양식까지 받아들인 조선 최고의 명품 도검으로 꼽는다.
올해는 충무공 장검 제작 7주갑(周甲), 420년이 되는 해다. 주갑이란 육십갑자의 ‘갑’으로 되돌아오는 60년을 말한다. 이를 기념해 현충사에서 ‘겨레를 살린 두 자루 칼, 충무공 장검’ 특별전을 열고 있다. 그런데 장검에 칠해진 붉은색이 화학안료인 페인트로 밝혀졌다고 한다. 2011년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하고도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 비난을 받고 있다.
시민단체인 문화재제자리찾기(대표 혜문 스님)가 처음 의혹을 제기하면서 논란이 됐다. 1955년 8월3일자 경향신문은 “후손들에 의해 충무공 고택에 보관되던 이순신 장군의 녹슨 장검을 3명의 도검 관련자들이 새롭게 연마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이때 녹을 제거하면서 붉은색 페인트가 칠해진 것 같다는 게 중론이다. 현충사측이 특별전이 끝나는대로 화학안료를 제거해 원형을 찾기로 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은 일단락됐다.
과거 광화문 동상의 장검도 ‘왼손잡이 이순신’ 논란과 함께 실물과 차이가 크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뿐 아니다. 국가 표준영정과 다른 외양, 중국식에 가까운 갑옷, ‘일본해군발상기념비’와 똑같은 동상 좌대 등 전체적으로 ‘졸작’이라는 평이다. 일부에서 광화문 동상 다시 세우기 운동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다음은 충무공의 ‘한산도 야음(夜吟)’이란 시다. “수국에 가을빛 저물었는데/ 찬바람에 놀란 기러기 높이 떴구나/ 근심 가득한 마음에 잠 못 이루는 밤/ 새벽달은 무심코 활과 칼을 비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