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절구통 수좌
김석종
2015. 2. 3. 16:57
[여적]절구통 수좌
‘이 시대 마지막 도인’이라는 법전 스님이 오늘 가야산 해인사 다비장 장작불로 육신을 남김없이 활활 태우고 적멸(寂滅)로 돌아간다. 이로써 한국불교의 한 세대가 완전히 저물었다. 스님은 1947년 ‘한국불교 르네상스’이자 참선수행의 진풍경으로 두고두고 회자되는 ‘봉암사 3년 결사’의 마지막 생존자. 당시 성철·청담·향곡·자운·혜암 등 기라성 같은 선승들과 함께 ‘부처님 법대로’를 외치며 일제에 훼손된 한국불교 선풍을 복원한 주역이었다.
지난 세기 한국 선불교 종갓집인 해인사 ‘고승 열전’도 전설로만 남게 됐다. 툭하면 후학들에게 “밥값 내놔라”고 고함치던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 한국불교의 계율을 곧추세운 ‘무애도인’ 자운 스님, 손가락 몽땅 소지공양한 ‘자비보살’ 일타 스님, “공부하다 죽어라”고 벼락치던 ‘해인사 대쪽’ 혜암 스님…. 이번에는 80년 세월을 오로지 수행으로 일관한 ‘가야산 선인’ 법전 스님까지 열반의 길을 따라갔다. 이제 누가 있어 이 어른들의 불같았던 선풍과 기상을 되살리고 지리멸렬한 이 세상을 흔들어 깨울 것인가.
법전 스님은 늘 과묵하고 고요했다. 한번 참선을 시작하면 절구통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로도 불렸다. 실제로 엉덩이가 짓물러서 방석이 떨어지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한다. 언젠가 참선을 마치고 보니 먹다 남은 순두부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피었더란다. 하루 찬밥 한 덩이로 한겨울을 버티기도 했다. 굶어죽을 각오로 홀로 태백산에 들어가 10년 두문불출한 일화도 유명하다. 인간 본능인 잠까지 물리친 초극의 경지다. 스승인 성철도 노상 “법전 발뒤꿈치만큼이라도 따라가라”며 애정과 믿음을 보였다.
“설령 바다가 마른다고 해도 그 바닥을 볼 수 있건만, 사람들은 죽도록 그 마음바닥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스님이 임종을 앞두고 남긴 선시는 세속의 탐욕과 명리에 취해 내면(마음바닥)을 돌보지 않는 중생을 향한 따끔한 죽비소리다. 생전에 제자들의 간청으로 펴낸 자서전 제목이 <누구 없는가>였다. 스님 평생을 요약한 그 화두가 오늘 다비장의 연기가 되어 가야산을 넘어가는 노스님의 사자후처럼 다시 가슴을 친다.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르게 이끌 사람, “누구 없는가”.
지난 세기 한국 선불교 종갓집인 해인사 ‘고승 열전’도 전설로만 남게 됐다. 툭하면 후학들에게 “밥값 내놔라”고 고함치던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 한국불교의 계율을 곧추세운 ‘무애도인’ 자운 스님, 손가락 몽땅 소지공양한 ‘자비보살’ 일타 스님, “공부하다 죽어라”고 벼락치던 ‘해인사 대쪽’ 혜암 스님…. 이번에는 80년 세월을 오로지 수행으로 일관한 ‘가야산 선인’ 법전 스님까지 열반의 길을 따라갔다. 이제 누가 있어 이 어른들의 불같았던 선풍과 기상을 되살리고 지리멸렬한 이 세상을 흔들어 깨울 것인가.
법전 스님은 늘 과묵하고 고요했다. 한번 참선을 시작하면 절구통처럼 꿈쩍도 하지 않아 ‘절구통 수좌’로도 불렸다. 실제로 엉덩이가 짓물러서 방석이 떨어지지 않은 적도 있다고 한다. 언젠가 참선을 마치고 보니 먹다 남은 순두부에 곰팡이가 새까맣게 피었더란다. 하루 찬밥 한 덩이로 한겨울을 버티기도 했다. 굶어죽을 각오로 홀로 태백산에 들어가 10년 두문불출한 일화도 유명하다. 인간 본능인 잠까지 물리친 초극의 경지다. 스승인 성철도 노상 “법전 발뒤꿈치만큼이라도 따라가라”며 애정과 믿음을 보였다.
“설령 바다가 마른다고 해도 그 바닥을 볼 수 있건만, 사람들은 죽도록 그 마음바닥을 알려고 하지 않는구나.” 스님이 임종을 앞두고 남긴 선시는 세속의 탐욕과 명리에 취해 내면(마음바닥)을 돌보지 않는 중생을 향한 따끔한 죽비소리다. 생전에 제자들의 간청으로 펴낸 자서전 제목이 <누구 없는가>였다. 스님 평생을 요약한 그 화두가 오늘 다비장의 연기가 되어 가야산을 넘어가는 노스님의 사자후처럼 다시 가슴을 친다. 비뚤어진 이 시대를 바르게 이끌 사람, “누구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