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뻐꾸기

김석종 2015. 2. 3. 16:56

[여적]뻐꾸기

봄부터 여름까지 산과 들에서 “뻐꾹, 뻐꾹” 울어쌓던 뻐꾸기는 봄날의 서정과 그리운 고향의 상징이었다.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고향땅’),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오빠생각’)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동요다. 정지용은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이라고 ‘고향’을 읊었다.

‘뻐꾹새 우는 주막’ ‘꽃잎편지’ ‘뻐꾹새 우는 마을’ 등 가요에도 뻐꾹새는 빠지지 않는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는 1980년대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 ‘새타령’은 “이 산으로 가면 뻐꾹뻐꾹/ 저 산으로 가면 뻐뻐꾹 뻐꾹~”이 절창이다. 민간 설화에서 뻐꾸기는 며느리의 넋이다. 방언인 떡국새, 쑥국새는 떡국, 쑥국 등에 얽힌 며느리의 한을 울음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뻐꾸기는 뱁새·솔새·개개비·딱새 등 작은 새의 둥지에 몰래 알을 낳아 키우는 탁란조(托卵鳥)다. 뱁새를 대리모 삼아 ‘탁란’을 하는 습성이 있다. 뻐꾸기 알은 뱁새보다 부화가 빠르다. 뻐꾸기는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뱁새 알을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이른바 의붓어미의 먹이를 독차지한다. 이 때문에 패륜아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다. 유럽에서 ‘부정한 남편’을 뻐꾸기라고 하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는 교도소와 정신병동 이야기다.

요즘은 농촌에서도 뻐꾸기 소리를 듣기 어렵다고 한다. 벽에 걸린 ‘뻐꾸기 시계’로나 뻐꾸기 소리를 듣는다. 이번에는 뻐꾸기가 난데없이 정치의 장에 날아들었다. 헌법재판관들이 통합진보당을 뻐꾸기로, 국민들을 뱁새로, 한국 사회를 뱁새 둥지로 비유해서다. 하지만 오랫동안 뻐꾸기를 관찰한 행동생태학자 니콜라스 데이비스는 뱁새가 뻐꾸기를 품는 게 공생을 위한 자연의 섭리라고 설명한다. 뻐꾸기는 이동이 빨라서 둥지를 만들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반면 뱁새는 번식력이 강해서 뻐꾸기가 떠나면 또 알을 낳는다. 이처럼 자연생태계 균형 유지를 위한 상호 의존적 관계라는 것이다. 뭔가를 과장되게 말할 때 속된 말로 “뻐꾸기 날린다”고 한다. 뻐꾸기 입장에서는 헌재 재판관들의 ‘뻐꾸기론’이 그럴 것 같다. 어쨌든 자연이 늘 사람을 가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