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여적]굿바이 박지성

김석종 2014. 7. 26. 17:48

 

                                                                    신부 김민지 아나운서의 이니셜을 새긴 박지성 운동화/경향신문 자료

 

 

 

한국축구의 영웅 박지성이 24년 축구인생을 마감했다. 어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K리그 올스타 경기에서 공식적으로 마지막 축구선수 유니폼을 벗었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산소 탱크’ ‘한국축구의 영원한 캡틴 박’의 맹렬한 질주본능은 이제 추억의 장면으로 남게 됐다.

박지성은 자타공인, 명실상부, 가장 성공한 한국의 축구선수였다. 그는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이면서 지난 10년 동안 한국축구 대표팀의 가장 확실한 중심이었다. 한국을 넘어 프리미어리그에 진출한 첫번째 한국인이기도 하다. 영국의 명문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00경기 넘게 출전한 아시아 최초의 선수, 맨유 역사상 92번째 선수인 슈퍼스타였다.

박지성의 축구인생이 대역전극이라는 점도 돋보인다. 그는 축구 명문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엘리트 코스도 밟지 못했다. 게다가 그의 발은 축구선수로는 치명적인 평발이었다. 그는 이런 단점들을 피나는 노력으로 극복해냈다. 그가 세계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하는 과정 역시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동양인으로서 야유와 조롱을 받았지만 실력으로 이겨냈다. 이제는 그가 거쳐 간 일본, 네덜란드, 영국 리그에서 한결같이 그를 그리워한다.

그것은 박지성이 경기장 안팎에서 보여준 꾸준한 노력과 성실함 때문이다. 그는 술수나 잔꾀를 몰랐고 언제나 희생과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게다가 넓은 행동 반경과 많은 활동량,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스태미나에서 박지성은 최고였다.

그렇게 한국축구 100년사에 누구도 이루지 못한 경험과 경기력을 쌓은 박지성이다. 홍명보호가 브라질 월드컵에서 크게 흔들린 것에서도 그의 공백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어떻게 제2의 박지성을 키워낼 것인지가 이제 한국축구의 다급한 숙제로 남았다.

박지성은 누구보다 훌륭하게 축구의 여정을 마쳤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축구에서는 이제 전반전이 끝났을 뿐이다. 온 청춘을 축구에 바친 그는 은퇴에 맞춰 내일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는 베켄바워나 플라티니 같은 축구 행정가를 꿈꾼다고 한다. 박지성의 인생 후반전 새출발에 아낌없는 기립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