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복식의 영광과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시복식의 영광과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
‘하나님의 사랑이 영원히 함께하리/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에게/순교자의 삶을 사는 이에게….’ 가톨릭 성가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삶’의 한 귀절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에서 100만명의 군중이 모인 가운데 조선시대 순교자 124명을 복자(성인의 전단계)로 추대하고 선포하는 시복식을 집전했다. 참 장엄하고 숭고하며 은혜가 넘치는 자리였다. 이로써 한국은 이미 시성된 103명의 성인을 포함해 227명의 성인·복자를 배출한 ‘순교자의 땅’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사게 됐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그 영광이 어떻게 우리에게 왔는가. 한국천주교의 초기 100년은 실로 끔찍한 박해와 순교의 역사였다. 이 때 천주교 신자는 대략 8000명에서 1만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교황의 또다른 방문목적이 된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고 있는 충남 내포 지역은 한국 순교역사에서도 가장 처절한 순교의 땅이었다. 교황이 찾았던 솔뫼성지는 한국최초의 사제 김대건 성인 탄생지다. 이 집안에서만 김대건 신부와 증조부 김진후, 작은 할아버지 김종한, 아버지 김제준 등 4대에 걸쳐 11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솔뫼성지 가까운 곳에 ‘조선의 카타콤바’(로마시대 비밀교회)로 불리는 신리성지(당진 합덕읍)가 있다. 400여 명의 신자들이 신앙공동체인 교우촌을 형성하고 살았던 곳이다. 성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 등 신부들은 이곳과 아산의 공세리성당에서 등창 등으로 고생하는 주민들에게 고약을 만들어 나눠줬다. 이것이 나중에 서민 가정의 상비약이 된 ‘이명래고약’이다. 신리 교우촌의 신자들과 프랑스인 사제들은 1866년 병인박해와 1868년 무진박해를 겪으며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몰살당했다.
서산 해미성지에서 벌어진 박해는 더 끔찍했다. 이 지역에서만 3000여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당했다. 교수,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 처형방법도 잔인했다. 해미읍성에는 ‘천주학쟁이’ 죄인들의 손발과 머리채를 철삿줄로 묶어 매달아 고문하고 처형한 회화나무(호야나무)가 지금도 그대로 서 있다. 산채로 둠벙의 물 속에 빠뜨려 죽인 둠벙(웅덩이의 충청도 사투리)은 '진둠벙’이다. '죄인 둠벙'에서 비롯된 지명이다.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교인들이 울부짖으면 ‘예수, 마리아’를 외쳤던 ‘여숫골’, 신자들을 오랏줄로 묶어 죽을 때까지 곡식 타작(자리개)하듯 짓찧었다는 돌다리 ‘자리개 돌’도 남아있다.
군졸 들은 천주학 신도들을 성문 밖으로 끌어내면서 십자가와 묵주를 놓아 두고 밟고 가도록 강요했다고 한다. 이 일대는 버려진 시신들이 산더미를 이루고 냇물은 그 피로 물들었다. 한마디로 예수가 마지막 걸었던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 못지 않은 고난의 행로였다. 이처럼 혹독한 시련의 불가마와 끔찍한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한국 천주교의 십자가가 세워진 것이다. 실제로 교도들을 고문했던 해미읍성부터 처형장인 진둠벙까지 예루살렘 ‘비아 돌로로사’를 본 뜬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교황은 해미읍성에서 열리는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 집전에 앞서 해미 성지 십자가의 길 방문해 순교자 묘를 참배하고 기도했다. 교황은 방한 내내 한국 순교역사를 칭송하고 순교자 영성을 강조했다.
따지고 보면 순교자들은 조선의 봉건·계급사회의 억압을 뚫어내고 모든 이의 평등을 꿈꿨던 개혁가, 자유사상가들로서 순교했다. 조선 조정도 이들을 불온한 정치·사상범으로 다루고 처형했다. 독재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반(反)로마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못박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조선 순교자들이 인감존엄을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것은 오늘의 한국사회에도 의미심장하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 십자가는 어디 있는가. 한국교회는, 그리고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걷고, ‘순교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골고다를 향해 가는 예수에게 차갑게 등을 돌리고 야유와 조롱을 퍼붓는 데 동참하는 군중들은 아닌가. 세월호 유가족들이 또 하나의 비아 돌로로사를 걸어 들쳐메고 온 ‘세월호 십자가’가 그걸 묻고 있다. 십자가에 담긴 그들의 아픔과 통곡소리가 가슴을 후벼 판다. 사랑을 전하던 예수가 처형 직전 했던 기도가 그 울음소리와 겹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타니(주님 저를 버리시나이까).”
오늘 복자가 된 이땅의 순교자의 영광을 칭송하려면 유가족들이 홀로 외로운 길을 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버지들이 ‘죽어간 아이들의 눈물’의 상징으로 담아온 맹골수로 바닷물은 교황에게 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먼저 그 눈물부터 씻어줘야 한다. 모든 사람의 삶에 세월호 십자가를 얹어놓아야 한다. 순교자들의 수난을 묵상하고, 세월호의 죽음들을 생각하고,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