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소양강 처녀

김석종 2015. 6. 2. 18:29

[여적]소양강 처녀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반야월 작사, 이호 작곡의 흘러간 뽕짝 ‘소양강 처녀’다. 2절은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로 이어진다. 이 노래가 처음 나왔을 때 산새인 두견새가 갈대밭에서 울 리 없고, 소양강에는 동백꽃이 피지 않는다며 가사를 트집 잡기도 했다. 두견새는 그렇다 쳐도 강원도에서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부른다는 걸 모르고 하는 얘기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꽃이다.

소양강은 설악산 북천·방천, 계방산 내린천 등을 받아들여 북한강으로 흘러든 뒤 남한강과 합쳐 한강이 된다. 인제 일대 심산유곡에서 베어낸 목재를 한양으로 실어나르던 소양강 뗏목은 유명했다. 1973년 소양강댐이 세워지면서 거대한 호수로 바뀌었다. 노래는 댐이 세워지기 직전인 1970년 김태희가 불렀고, 그 후 한서경 등이 리메이크하면서 온 국민의 애창곡이 됐다. 1992년에는 노래방 인기순위 1위에 올랐다.

그간 소양강 처녀의 실제 모델을 두고 박경희씨(65)설과 윤기순씨(62)설이 팽팽했던 모양이다. 소양강변 여관집 딸이었던 17세 처녀 박경희씨는 ‘작사가 선생님’이 보름간 여관에 머물 때 노를 저어 소양강 뱃놀이를 시켜줬다고 했다. 그때 “너의 사연을 노랫말로 썼다”는 말을 들었단다. 열여덟 살 윤기순씨는 가수의 꿈을 품고 상경했다. 이 처녀가 반야월 등 노래 스승들을 소양강에 초대했는데, 이때 가사를 구상했다는 것이다. 윤씨는 밤무대를 떠돌며 ‘슬피우는 두견새’처럼 노래를 하다가 10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번에 강원도가 나서서 “두 명 모두 가사의 주인공”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반야월이 두 차례 춘천을 방문했고, 박씨와 윤씨를 모두 만난 뒤인 1969년 가사를 지은 것으로 결론을 냈다. 반야월은 생전 인터뷰에서 “1960년대 말 소양강변에 살던 모든 처녀가 가사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어찌 그들뿐이랴. 이 노래를 부르며 가슴 아픈 시대를 지나온, 한때는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순정’이었던 이 땅의 모든 누이들이 주인공 아닐까.2015.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