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라디오의 부활

김석종 2014. 11. 28. 15:04

 

 [여적]라디오의 부활

 

 ‘동심초’ ‘이 생명 다하도록’ 아낌없이 주련다’ ‘떠날 때는 말없이’ ‘총각선생님’ ‘능금이 익어갈 때’ ‘저 눈밭에 사슴이’…. 과거 라디오에서 인기를 누렸던 연속극 제목이다. 당시 성우들은 목소리와 효과음만으로 희로애락을 연기하며 청취자들을 울리고 웃겼다. “태권동자 마루치 정의의 주먹에 파란 해골 13호 납작코가 되었네…” 아이들은 ‘태권동자 마루치’에 빠져 지냈다. ‘전설따라 삼천리’ ‘오발탄’ ‘김삿갓 북한방랑기’ ‘정계야화’는 아버지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재치문답’에는 한국남 안의섭 등이 단골 재치박사로 나왔다. 결정적인 순간에 잡음이 심한 것이 흠이었다.
 

진공관 라디오가 퇴조하고 성능 좋은 트랜지스터가 나오면서 라디오를 들로 산으로 들고 다닐 수도 있게 됐다. 이미자·패티김·펄시스터즈·김추자·바니걸스·남진·나훈아의 노래를 배우고 따라부른 것도 라디오 덕이었다. FM방송이 시작되자 DJ 임국희·최동욱·피세영·이종환·박원웅·김기덕이 진행하는 심야음악 방송이 인기였다. “오늘은 왠지”의 이종환과 최장수 ‘별밤지기’ 이문세가 진행한 ‘별이 빛나는 밤에’, 폴 모리아의 ‘이사도라’로 시작되는 ‘밤의 플랫폼’, 그리고 ‘밤을 잊은 그대에게’ ‘0시의 다이얼’ 같은 프로그램은 전국의 수많은 청소년들을 라디오 키드로 만들었다. 듣고 싶은 노래를 관제엽서에 적어 신청하는 일은 그 시절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통과의례였다.

 텔레비전 시대가 도래하면서 라디오는 위기를 맞는다. 1979년 영국의 2인조 그룹 버글스가 불러 우리나라에서도 히트한 ‘Video killed the radio star(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였어)’는 한물간 라디오의 처지를 상징한다. 한국에서도 컬러TV 방송이 시작되고 인터넷까지 등장하면서 라디오가 종말을 맞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최근들어 라디오가 제2의 부흥기를 맞고 있다는 소식이다. 라디오의 건재는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넷의 발달 때문이라고 한다. 듣는 라디오에서 참여하는 라디오로 변한 것이 큰 힘이 된 모양이다. 청취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사연을 보내는 것이 과거 엽서 사연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역시 라디오에는 보는 것으로 채울 수 없는 따스한 감성과 아름다운 상상의 매력이 있는 듯하다. 2014.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