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김석종
2014. 1. 4. 20:27
요리책 아닙니다, 전 세계 요리사 17명이 차린 ‘남다른 인생 이야기’
날것의 인생 매혹의 요리사 후안 모레노 지음·장혜경 옮김 | 반비 | 330쪽 | 2만원
이 책은 스타 요리사의 성공담이 아니다. 레시피가 들어 있기는 하지만 요리책도 아니다. 세계 방방곡곡의 요리사 17명의 흥미롭고 기이한 인생 역정에 대한 이야기다.
독일 시사 주간지 ‘슈피겔’의 기자인 저자 후안 모레노는 세상에서 가장 독특한 이야기를 간직한 개성 넘치는 요리사들을 찾아다녔다. 미국,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나이지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에서 저자가 인터뷰한 요리사의 리스트는 다채롭다. 하지만 저자의 관심은 음식과 요리 솜씨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음식의 질이 아니라 이야기의 질이었다.” 따라서 여기에 평범한 주방은 하나도 없다.
좌파 행동주의자인 독일인 밤 카트는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 ‘레인보 워리어’ 등 수십년간 시위 현장만 찾아다니며 시위자들이 먹을 음식을 요리한다. “모두가 피델 카스트로가 될 수는 없어요. 감자 껍질을 벗길 사람도 있어야죠.” ‘밥이 없으면 혁명도 없다’는 그는 반핵 시위대 사이에서 최고의 요리사다.이탈리아 출신 요리사 프랭크 펠레그리노가 운영하는 뉴욕의 레스토랑 ‘라오스’는 마피아의 추억이 가득 서려 있는 곳이다. 예약자들이 테이블을 유산으로 상속하는 통에 단골이 아니면 몇십년 동안 자리를 잡을 수 없다. 마돈나도, 빌 클린턴도 그의 식당에서 테이블을 얻지 못했다.
브라이언 프라이스는 미국 텍사스 교도소에서 강간죄로 복역하면서 200명이 넘는 사형수들에게 마지막 쪽지를 넘겨받아 ‘최후의 식사’를 만들어주었다. 우간다의 오톤데 오데라는 독재자 이디 아민의 전속 요리사였다. 독신의 스위스 할머니 오타비아 파서는 7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알프스 두메산골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한다.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정작 파서의 삶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해 평생 거기 머물면서 옛날 방식 그대로 요리할 뿐이다.
케냐의 아기 엄마 페이스 무토니는 나이로비 최대의 쓰레기장인 단도라 쓰레기 집하장 안에 간판도 없는 천막식당을 열었다.
유럽 밀항을 꿈꾸며 난민 캠프에서 살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요리사 이매뉴얼 존도 캠프의 어느 공터에서 요리를 한다. 독일 요리사 제라르도 아데소는 유명한 셰프였지만 마약 거래 혐의로 수감되어 지금은 감옥에서 요리한다. 스페인 식당 주인 토리비오 안타는 투우 경기 중에 죽은 소꼬리로 요리를 만들어 판다. 맛은 별로 없지만 기상천외한 아이디어 하나로 단숨에 스타가 됐다.
이들의 뜨거운 주방에서는 남다른 사연, 다양한 역정의 날것 인생이 지글지글 익어간다. 저자는 이 특별한 요리사들이 쏟아내는 요리 철학과 인생 이야기를 탁월한 유머 감각의 소스에 버무려 그야말로 잘 차려진 밥상을 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