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마음 흔든 편지 한 통의 기적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해 대전교구에서 열리는 아시아청년대회에 참석하게 되면서 덩달아 뉴스메이이커가 됐다. 지난달 31일 대전교구를 찾아갔을 때도 정신없이 바빴다. 주교관에 도착했을 때 가톨릭 잡지와 한차례 인터뷰를 마친 참이었다. 인터뷰 중에도 수녀들과 외부 방문객들이 유 주교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자리를 떴다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돌아왔다. 창밖에 벚꽃, 목련꽃, 매화꽃, 앵두꽃 눈부시게 피어난 화창한 봄날이었다.
그의 미소는 주교들 사이에 유명하다. 주교들은 주교회의라는 엄숙한 공식 기구를 통해 천주교의 주요 현안과 안건을 토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린다. 천주교에서 주교회의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다. 주교들도 따로 친목 모임이 있다. '주교 꼼무뉴(친교) 영성 모임'이다. 늘 활짝 웃고 명랑쾌활한 유 주교는 이 모임에서 총무를 맡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 선종 8개월 전인 2008년 6월 유 주교가 혜화동을 찾았다. 김 추기경이 그랬다. "유 주교님을 볼 때마다 늘 웃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제가 속이 없어서 항상 웃습니다." 대전교구 주교관에는 근엄한 얼굴이 아니라 활짝 웃는 유 주교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는 이 세상을 따날 때도 활짝 웃으며 눈을 감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그래서 평소 웃는 연습을 하는 거라고 했다.
다음은 유 주교 인터뷰 기사.
“교황에게 여러 차례 편지, 그 마음 닿은 건 기적”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맞이 준비 대전교구 유흥식 주교
“가는 곳마다 기쁨을 뿌리는 귀하고 좋은 아버지가 우리에게 오십니다. 전혀 불가능해보였던 교황님 방한이 현실이 됐으니 기적이랄밖에요. 하하하.”
지난달 31일 대전 시내 천주교 대전교구청 주교관에서 만난 유흥식 주교(63·라자로)는 말끝마다 홍소(哄笑)를 터뜨렸다. ‘근엄하신 주교님’을 예상했는데, 참 유쾌한 반전이다.
유 주교는 대전교구장 겸 천주교 주교회의 청년사목위원장이다.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참가하는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를 주관하는 총책임자다. 교황은 4박5일 방한 일정 중 이틀을 대전교구 관할 지역에서 지내게 된다. 말하자면 유 주교는 교황맞이의 실질적인 호스트인 셈이다. 게다가 교황의 시복식에서 복자(福者)가 되는 순교자 124명 중 49명이 내포(內浦) 교회, 지금의 대전교구 출신이다.
교황의 방한 결정에도 유 주교 역할이 컸다. 지난해 7월 브라질 세계청년대회에서 교황을 만났다. 그가 “한국에서 온 주교”라고 인사하자 교황은 이탈리아어로 “한국교회는 강합니다”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유 주교는 교황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냈다. 한국의 순교 성지에서 개최되는 아시아청년대회를 찾아 젊은이들을 축복하고 격려해달라는 간곡한 마음을 담았다. 때마침 로마 유학시절 유 주교와 함께 공부한 교황청 고위 성직자가 편지를 발견하고 교황 눈에 잘 띄는 곳에 올려놨다.
그 성직자가 교황 방한 공식 발표 석 달 전인 지난해 말 e메일을 보내왔다. “교황께서 편지를 읽고 ‘가슴 깊은 곳에서 한국에 가야 한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 한국에 갑시다’라고 말씀해서 결국 한국 방문이 결정됐습니다. 이건 기적이에요.” 유 주교는 “하지만 방한 결정은 한국 천주교회 전체와 정부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노력한 결과다.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지금 교황님은 말씀과 행동 그 자체로 세상의 빛이고 기쁨입니다. 온몸으로 교회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판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저도 그분의 믿음과 삶을 닮아보려고 아침 스케줄을 확 바꿨어요. 기도를 끝내고 인터넷을 통해 교황님의 강론 말씀을 빠짐없이 듣고 활동에 대한 글을 읽지요. 그러다보니 항상 그분과 함께하는 것 같아요. 그분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게 가장 중요한 교황 방문 준비 아니겠어요?”
그는 “교황님이 주교들에게 신자들 앞에서 걷고, 중간에서 걷고, 맨 뒤에서 걸으며 하느님의 양떼를 돌보라고 한 당부를 날마다 새기고 있다”고 했다. 짧게 깎은 하얀 머리와 햇빛에 검게 그은 얼굴, 로만칼라의 성직자 옷차림만 아니라면 그냥 맘씨 좋은 농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은 푸근한 인상이다. “어제 도보성지순례를 했더니 얼굴이 이 모양이 됐다”며 그가 또 껄껄껄 웃었다.
유흥식 주교는 “남북, 지역, 세대, 빈부로 심하게 갈라져 있는 한국 사회가 교황 방한을 계기로 욕심을 내려놓고
약자를 더 많이 배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 아시아청년대회 총책임자 교황 방한에 결정적 역할
미사·성지 방문·청년과 만남… 이동·숙박 등 행사준비 착착
- 아시아청년대회에서 교황의 일정은 확정됐나요.
“입국 다음날인 8월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김대건 신부의 탄생지인 당진 솔뫼성지를 찾아갑니다. 그곳에서 두 시간 정도 젊은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식사도 함께합니다. 17일에는 서산 해미읍성성지에서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를 직접 주재하고 청년들을 위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그 준비는 잘되고 있습니까.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갑니다. 청년들의 만남과 이동, 숙박 등 행사준비는 차질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행사 자체만으로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더 중요한 게 마음의 준비지요. 무엇보다도 우리가 교황님의 믿음과 삶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프란치스코’가 돼야 해요.”
- 아시아청년대회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교황님이 청년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큰 희망을 걸고 있기에 이곳에 오십니다. 청년들이 새롭게 변화돼서 서로 한결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세상 곳곳에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누룩이 되길 바랍니다.”
대전교구 관할인 옛 내포 지방(지금의 당진, 예산, 홍성, 서산 등)은 국내에서 천주교를 가장 먼저 받아들인 곳으로 ‘한국 천주교의 못자리’로 불린다. 순교와 관련된 성지만 20여곳에 이른다. 유 주교는 ‘내포의 사도’ 이존창의 성지인 예산 여사울, 생매장당한 신자가 3000명에서 1만명에 이른다는 서산 해미읍성, 외국인 선교사들의 순교지 보령 갈매못과 마을 사람들이 몰살당해 ‘조선의 카타콤바’로 불리는 당진 신리성지 등 내포 지역 순교역사를 줄줄 설명했다. 유 주교 자신이 젊은 시절 솔뫼성지 신부로 4년을 지냈다.
유 주교는 2008년부터 이 천주교 성지들을 순례코스로 연결하고 정기적으로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이 참가하는 도보순례를 진행해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 성지순례 붐을 일으켰다. 하루 전에는 보령 완장 포구에서 서짓골 성지까지 10㎞를 신자 600여명과 함께 걸었다. 그는 “신앙의 터전이면서 순교 현장인 내포 순례길은 산티아고 순례길 못지않다”며 “이번 아시아청년대회에서 젊은이들이 도보성지순례를 통해 믿음과 삶이 하나로 일치된 순교자들의 영성을 몸과 마음에 새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교황 방한이 한국사회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한국사회는 남북, 지역, 세대, 빈부로 심하게 갈라져 있습니다. 교황은 모든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사회적 약자를 위하는 분입니다. 우리들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더 키우고, 가진 이와 힘 있는 이들이 약자를 위해 더 많이 내놓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청년대회에 북한 청년을 초청하고 자리를 비워놨습니다. 아직까지 신청이 없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겠습니다. 혹시 압니까. 교황님의 평화 기도로 남북이 극적으로 화해하는 기적이 일어날지….” 김석종 선임기자 sjkim@kyunghyang.com
▲ 유흥식 주교는
1951년 충남 논산 출생. 1979년 사제 서품(로마). 1983년 로마 라테란대학교 신학박사. 대전교구 대흥동 주교좌 본당 수석 보좌신부. 1984년 솔뫼성지 피정의 집 관장. 1998년 대전 가톨릭대 총장. 2003년 주교 서품. 대전교구 부교구장. 2005년 천주교 대전교구장 착좌. 2007년 교황청 사회복지평의회 위원. 2005~2009년 4차례 북한 방문. 2012년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장. 2013 브라질 세계청년대회 참가. 주교 사목표어 ‘나는 세상의 빛이다(Lux Mundi)’.
※경향신문 2014년 4월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