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마지막 도인’ 떠나다
갓쓰고 도포자락 휘날리던 ‘우리시대의 도인’ 떠나다
-'한국종교계의 큰어른'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별세에 부쳐
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이 아흔 넷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민족종교인 갱정유도(更定儒道)의 제5대 도정(道正, 최고지도자). ‘청학동 도인들‘로 널리 알려진 갱정유도교는 유·불·선과 동·서학을 아우르며 종래의 유교를 갱신하고자 하는 민족종교다. 1945년 강대성이 전북 순창 회문산에서 창종했다고 한다. 지금도 일부 교도들이 전북 남원과 지리산 청학동 등에 은둔해 옛 복식을 고수하며 은둔과 수양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한 회장은 종교행사 등 어떤 자리에서든 늘 흰 수염에 검은 갓을 쓰고 도포자락을 휘날리는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작은 종교의 수장이었지만 해방공간과 한국전쟁, 4.19, 5.16 등 한국 현대사의 한복판에서 활동했다. 그런만큼 각계각층에 결쳐 특별한 인맥을 쌓은 마당발이기도 했다.
십수년 전부터 가끔씩 한 회장을 만나 종교계와 정·재계의 생생한 야사를 듣곤 했다. 그는 18세 때 갱정유도에 입교해 남원 일대에서 종교 공동체 생활을 했다. 1950년대 서울에 올라온 그는 한결같이 검은 갓에 흰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일세를 풍미했다.
상경 초기에는 유교의 심산 김창숙 선생(성균관대 설립자)의 비서를 지냈다. 당시 조병옥, 장택상 같은 당대 정치인들과 어울렸다. 주역에도 능통했다. 통일교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에게 직접 주역을 가르치기도 했다. 불교의 경봉·효봉 스님, 개신교의 한경직 목사 등 존경받는 타종교의 어른들과도 교분이 깊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과도 친분을 쌓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생전에 직접 전화를 해 종종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한 회장은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총기가 빼어났다. 목소리는 쩌렁쩌렁 기운찼다. 그는 언제나 호탕한 웃음과 재치있는 유머로 좌중을 압도하곤 했다. 갱정유도 특유의 정신 수행과 영선도인법이라는 도인체조로 젊은이 못지않게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도 그는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설립을 주도하고 30여 년간 이끌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는 일제 치하 독립운동에 앞장서면서 쇠락한 민족종교들의 위상을 되살리기 위해 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갱정유도, 수운교, 태극도 등 민족종교 33개 교단이 모여 만든 단체다. 그는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대표,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한국전통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 등을 맡기도 했다. 교세가 허약한 민족종교를 국내 5대종단의 반열에 올려놓는 게 한 회장의 공이다. 그는 종단 지도자들의 모임에서도 늘 중심을 잡았다.
갱정유도 도인들이 1965년 6월6일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당시 조선일보 사진. 갱정유도 제공
지난해 6월4일, 서울 광화문 도심에서 도포 차림에 갓 쓰고 고무신을 신은 갱정유도 도인 100여명이 모이는 이색적인 집회를 열기도 했다. 갱정유도 평화통일선언 50주년 기념대회라고 했다.
1965년 현충일에 갱정유도 도인 500여명이 총본산인 남원에서 상경해 서울 시내에서 평화통일선언문이 담긴 유인물 30만장을 시민들에게 배포했다고 한다. 마침 국립묘지 참배를 마치고 돌아오던 박정희 대통령이 상투 틀고 갓 쓴 이들의 기이한 집회를 목격했단다.
‘원미소용(遠美蘇慂)하고 화남북민(和南北民)하자’는 내용의 전단배포를 주도한 한 도정은 청와대에 끌려갔다. 박 대통령은 전단에 들어있는 ‘원미소용’을 문제 삼았다. 한문 띄어 읽기의 차이가 화근이었다. ‘원, 미소용’, 즉 ‘미국과 소련의 꾐(종용)을 멀리하자’는 뜻인데, 이를 ‘원미, 소용’으로 읽고 ‘미국을 멀리하고 소련의 종용을 받자’로 풀이한 것이다. 결국 반공법 위반으로 92일 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다. 당시 집회는 경향신문의 ‘갓 쓰고 데모’를 비롯해 ‘장안에 난데없는 청포(靑袍) 데모’ ‘기괴한 난동’ 등으로 일간지에 보도돼 화제가 됐다.
2015년 6월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갱정유도 통일과 평화를 위한 민족선언
50주년 기념대회'/연합뉴스
지난해 집회에서 한 도정은 “당시 외세의 힘으로 해방되는 바람에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인식에서 민족도의(民族道義)의 우리 힘으로 통일독립을 이루자고 주장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미·일·중·러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탄식했다. 5000년 동안 전해진 우리 사상, 우리 힘으로 상극의 시대를 물리치고 상생의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회장은 3년 전 택시에서 내리다가 손가방이 문에 낀 채로 땅바닥에 끌려가 고관절이 부서지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고령의 나이에 의식불명에 빠져 병원에서도 치료를 포기할 정도였지만 3개월만에 훌훌 털고 일어나 현역에 복귀했다. 그때 “다시는 세상 구경 못하는 줄 알았어. 그래도 도인체조 덕분에 살아났지”라면서 껄껄껄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던 모습이 어제 일 같다. 고인이 말년에 주력했던 것은 도덕성과 민족얼 회복 운동이었다.
갓과 도포, 흰 수염으로 도인의 포스와 매력을 뽐냈며 장안을 활보했던 ‘한국 종교계의 큰어른’ 한양원 회장. 그가 떠나는 날의 대한민국에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100만 촛불이 타올랐다. 이런 때에, 특별히 고인의 이 한마디를 마음에 새겨야할 것같다. “물질만능이 아니라 도덕만능에 길이 있다.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듯이 물질문명이 극에 달했으니 정신과 도덕의 시대가 온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기다린다고 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